[뉴스&뷰] 전달체계 부재한 상태서 보장성 강화는 의료왜곡만 심화시켜
의료기관종별 역할 정립·적정 수가체계 마련 시급

 [라포르시안] 올해 들어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이 본격화하고 있다. 올해 1월부터 선택진료가 완전 폐지된데 이어 지난 4월부터 상복부 초음파의 건강보험 적용이 시작됐다. 오는 7월부터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 2~3인실에도 보험 적용을 앞두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또 오는 9월부터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 로드맵에 따라 뇌혈관 MRI 검사에 대해서도 오는 9월부터 건강보험 적용을 계획 중이다.

보장성 강화가 본격화하면서 대형병원으로의 환자 쏠림 현상이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개원가에서는 '동네의원 말살 정책'이라는 우려마저 제기한다.

대한의원협회는 지난 9일 성명을 내고 "7월부터 종합병원과 상급종합병원 2인실과 3인실은 건강보험이 적용이 되어 의원급과 중소병원의 입원료보다 오히려 싸지는 현상이 예상된다"며 "2019년 수가협상에서 의원급 의료기관에 대해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수가인상률을 제시하여 협상결렬을 유도했던 정부가 이제는 입원료마저 역전시켜 의원급 의료기관 말살을 시도하고 있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복지부 계획에 따라 오는 7월부터 상급병실 급여화가 시행되면 상급종합병원의 경우 간호등급 2등급(42개소 중 32개소가 해당)을 기준으로 2인실은 평균 15만4,000원에서 8만1,000원으로, 3인실은 평균 9만2,000원에서 4만9,000원으로 줄어든다.

상급종합병원 간호등급 1등급(6개소)의 경우 2인실은 평균 23만8,000원에서 8만9,000원(14만9,000원 경감), 3인실은 평균 15만2,000원에서 5만3,000원(9만9,000원 경감)으로 감소한다.

종합병원은 간호 3등급(302개소 중 67개소)을 기준으로 2인실은 평균 9만6,000원에서 4만9,000원으로, 3인실은 평균 6만5,000원에서 2만9,000원으로 입원료 부담이 줄어든다.

이렇게 되면 상급종합병원이나 종합병원 2~3인실 입원료가 중소병원급과 의원급 의료기관보다 더 낮아지는 역전 현상이 빚어진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는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 2~3인실에만 건강보험을 적용하면서 중소병원과 종합병원간의 입원료 역전 현상이 발생하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졌다"며 "이로 인해 그동안 비용 문제 때문에 주저했던 수도권 대형병원으로의 환자 쏠림 현상이 심화될 게 자명하다"고 지적했다.

복지부는 대형병원으로의 환자 쏠림을 막기 위해서 의뢰·회송 시범사업을 강화하고 경증외래질환 원외처방 약제비 차등화 제도 등을 확대할 방침이다.

하지만 환자 의뢰·회송 시범사업은 아직까지 시작단계에 머물고 있으며, 당뇨병 52개 경증질환을 대상으로 한 원외처방 약제비 본인부담 차등화는 대형병원으로 환자쏠림을 개선하는 효과가 미미한 편이다.

그나마 지금까지 대형병원으로의 환자 쏠림을 억제하는 장치가 바로 의료기관 종별로 건강보험 진료비 본인부담을 차등화하는 것이었다.

보장성 확대 정책으로 종합병원급 이상 대형병원의 입원료와 검사비 등 비급여 진료비 부담이 크게 낮아지면서 본인부담 차등화를 통한 불필요한 의료이용을 억제하는 방법마저 통하지 않게 된다.

요양기관종별 요양급여비용. 표 출처: 건강보험심사평가원 '2017년 진료비 통계지료'
요양기관종별 요양급여비용. 표 출처: 건강보험심사평가원 '2017년 진료비 통계지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대형병원 중심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은 환자 쏠림을 심화시키고 경쟁력을 잃은 중소병원과 동네의원의 경영난을 가속화할 것이라 우려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

이대로 문재인 케어가 추진되면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완화한다는 본래 목적을 달성하기보다는 의료이용 왜곡을 더 부추기는 쪽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환자와 의료자원 쏠림이 심화되고 지역간 의료자원과 의료이용 불평등을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불필요한 의료이용 확대로 건강보험 재정 부담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커질 게 자명하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의 본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의료전달체계 확립이 전제돼야 한다. 그러나 대한의사협회가 올해 2월 복지부의 ‘의료전달체계 개선 권고’를 거부하면서 문제가 꼬이고 말았다.

앞서 복지부는 2015년 메르스 사태를 겪은 후 2016년 1월부터 의료공급자와 수요자,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의료전달체계 개선협의체를 구성해 본격적인 논의에 착수했다.

이를 통해 작년 말 '의료전달체계 개선 권고문(안)'이 나왔다. 개선협의체에서 마련한 권고문은 ▲기능 중심 의료기관 역할 정립 ▲의료기관 기능 강화 ▲환자 중심 의료를 위한 기관 간 협력-정보제공 강화 ▲의료기관 간 기능 정립을 위한 의료자원 관리체계 합리화 ▲의료전달체계 개선을 위한 상시적 추진체계 마련 등 5가지 정책 권고를 담고, 이를 위해 세부과제를 제시했다.

그러나 외과계 의원의 입원실 허용 문제를 두고 의협과 병협이 의견차이를 좁히지 못하면서 의료전달체계 개선 권고문 채택은 무위에 그쳤다.

지금과 같은 상태에서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가 추진되면 동네의원과 대학병원이 경증질환 환자 유치 경쟁을 벌이고, 환자들이 큰 병을 치료하러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원정진료를 다니느라 연간 수조원을 지출하는 현상이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대형병원들은 끊임없이 병상을 확충하면서 몸집을 부풀리는 방식의 성장을 지속하게 될 것이다.

의료전달체계가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의료계가 주장하는 수가 정상화도 무의미하다.

대형병원과 중소병원, 동네의원이 외래환자를 유치하기 위해 경쟁을 벌이는 구조에서 수가가 오른다고 동네의원의 경영이 개선되기 힘들다. 의료전달체계가 거의 망가진 상황에서 환자들은 질병의 경중에 상관없이 대형병원으로 몰릴 수밖에 없고, 동네의원은 환자 감소로 인한 경영난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

지금도 병상 공급과잉이 심각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형병원 중심으로 병상확충 경쟁을 벌이는 상황을 방치한 채 적정수가 보장 논의를 하는 것이 가능한지도 의문이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의료전달체계 확립을 전제로 한 수가 적정화 논의가 불가피하다. 의료전달체계 부재한 가운데 요양기관종별로 공급과잉과 과잉경쟁으로 인한 의료자원 낭비가 심한 상태에서 수가 정상화를 통한 의료기관의 경영정상화와 적정진료는 요원하다.

의료기관 종별로 기능에 적합한 역할을 수행하면서 기관 운영이 가능하도록 적정 수가체계를 마련해 역할 정립을 유도하는 것이 시급하다. 의사협회가 다시 의료전달체계 개선 논의에 적극 나서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민단체인 사회진보연대는 "대형병원을 규제하지 않는다면 개원의들에게 미래는 없다"며 "의협이 지금 복지부에게 요구해야 할 것은 수가 인상이 아니라 의료전달체계 개혁이다. 왜곡된 의료전달체계로 인해 환자, 개원의, 건강보험 모두가 고통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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