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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대한민국 의료를 자멸로 몰고가는 대학병원들
  • 김상기 편집부국장
  • 승인 2014.10.23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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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포르시안]  "학회 참석이나 개인적인 이유로 정해진 요일에 진료가 어려운 경우 반드시 휴진일 전후로 추가진료를 시행해 달라. 직급에 상관없이 토요진료를 추가 개설한다면 환자와 병원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신환 진료를 위한 시간을 따로 할애해 배정하고, 수시로 확인과 점검을 하는 등 더욱 신경써 달라"

이른바 '빅5'에 속하는 어느 대학병원장이 임직원에게 보낸 '경영서신'을 통해 이런 당부를 했다고 한다. 짧게 요약하면 이렇다. '더 많은 환자를 유치하고, 더 많은 환자를 진료하라'. 경영난에 직면한 대학병원장이 의료진에게 강력한 시그널을 보낸 것이다. '더 많이 일하라'고.

일반 기업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병원은 달라야 한다. 진료수입을 확대하기 위해서 더 많은 환자를 유치하고 진료하라는 것은 정석이 아니다. 문제는 그게 아니다. 현재 대한민국 병원들이 위기에 직면한 것은 환자가 줄어서도, 의사들이 진료를 게을리 해서도 아니다. 이미 대한민국 의사들은 너무 많은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올해 발간된  'OECD 헬스데이터'에 따르면 2012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국민 1인이 연간 외래진료 횟수는 14.3회로 OECD 회원국 중 1위다. 환자 1인당 평균병원재원일수는 16.1일로 OECD 평균(8.4일)보다 약 2배가 더 길다. 일본에 이어 2위다.

안타깝게도 이미 오래 전부터 대한민국 병원들은 '박리다매'로 먹고 살아왔다. '1시간 대기 5분 진료'란 말이 왜 생겼겠나. 저수가와 과잉공급된 의료기관이 짧은 시간에 더 많은 환자를 진료함으로써 생존이 가능한 구조를 만들었다. 진료시스템의 속도전이 치열하다. 어떻게 하면 환자를 더 빨리 진료하고, 입원기간을 줄일 수 있을까 골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영 사정은 나아지지 않는다. 왜 그럴까. 대학병원에서 토요 진료를 하면 사정이 나아지려나. 교수들이 학회보다 외래진료에 더 시간을 할애하면 경영이 좋아질까.

환자를 더 많이 진료해 진료수입을 높임으로써 경영을 개선하겠다는 것은 단기적으로 효과가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나쁜 선택이다. 흡사 스테로이드 처방을 남발하는 것과 비슷하다. 금방 눈에 띄는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진짜 병증은 그대로이거나 더 악화된다. 그런데 지금 '빅5'로 꼽히는 병원들이 다 이런 식의 경영에 빠졌다. 

대형병원들이 생존을 위해 해외환자 유치에 나서고, 외국에 병원을 세우고, 또 정부에 영리사업 추진을 위한 각종 규제완화를 요구한다. 그래야 살 수 있다며. 과연 그럴까. 대형병원의 이런 행위는 오히려 왜곡된 의료시스템과 의료공급체계의 난맥상을 더욱 부추길게 뻔하다. 더 많은 환자를 진료하고, 신환을 창출하려면 결국 경증환자도 가릴 것 없이 다 진료해야 한다는 거다. 가뜩이나 부실한 의료전달체계를 흔적조차 없이 괴멸시키겠다고 작정한 셈이다. 

대형병원의 환자쏠림 현상을 막고 의료전달체계를 바로잡기 위해 ‘경증 외래환자 약국 본인부담 차등제’를 도입했지만 효과가 없었다는 지적이 이번 국정감사에 나왔다.  알고보니 대형병원들이 원외처방전을 발급하면서 경증외래환자 코드 표시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대학병원이 경증환자 진료에 매달릴만큼 상황이 절박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정부의 투자활성화 대책에 따라 병원들이 영리자회사를 운영하고 각종 부대사업으로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치자. 또 의료관광객 유치로 외화벌이를 한다고 치자. 그다음은 어쩔 건가. 계속 그런 식으로 병원을 운영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병원의 본질적인 기능을 왜곡하고, 환자를 상대로 곁가지 부대사업으로 경영이 호전된다고 지속가능성이 있을까 의문이다. 오히려 정부에 잘못된 신호를 보내 더욱 왜곡된 의료정책을 남발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병원은 본질적 기능에서 더욱 멀어진다. 대학병원장의 임기 중 치적으로 높은 병상가동률과 급증한 의료수익을 제시한다니 서글픈 노릇이다.

병원들이 추구해야 할 유토피아는 그런 게 아니다. 환자에게 양질의 적정진료를 제공하면서 생존할 수 있는 의료환경이 병원의 이상향이 돼야 한다. 자꾸 이런 식으로 '더 많이, 더 빨리, 더 비싸게' 진료를 하는 쪽으로 의사를 내몰고, 곁가지 부대사업에만 골몰하면 그 끝은 자멸이다. 물론 소수의 병원은 살아남을 거다. 아마 대부분은 자신들이 최후의 생존자가 될 것으로 여기나 보다.

그보다는 다 함께 사는 길을 찾는게 낫다. 확률적으로 그렇고. 어느 초등학교 가을운동회에서 4명의 학생이 몸이 불편한 친구를 위해 잠시 멈추고, 5명이 다 함께 손을 잡고 결승선을 향해 달리는 사진이 큰 감동을 줬다. 다 함께 1등을 할 것인지, 혼자 살아남아 피폐해진 대한민국 의료생태계의 황소개구리가 될지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한다.

김상기 편집부국장  bus19@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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