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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숫자놀음 통치'를 벗어나려면...[시민건강연구소 서리풀 논평] 개혁 - 소외된 ‘숫자’로부터 사람에 대한 ‘성과’로

[라포르시안] 기어코 청와대 경제팀이 바뀌었다. 소득 불평등 심화와 일자리 성과 부족이 도화선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번 참에 경제 기조를 바꾸는 것이 아닌가 하는 시각도 상당수다. 결과와 경과는 두고 볼 일이나, 일찌감치 관료에 ‘포획당하는’ 경로로 들어선 노무현 정부의 경험에서 교훈을 얻기 바란다.

오늘 우리의 관심은 경제 정책이나 소득주도성장보다는 정책을 뒷받침하는 틀 또는 그 하나로서의 ‘통치 이데올로기’에 대한 것이다. 그중에서도 숫자의 통치와 사람의 소외를 문제로 삼고자 한다.

첫째, 숫자의 문제

“구원수 증가에 따른 소득 증가 효과를 배제한 '균등화 처분가능소득'을 이용한 5분위 배율(소득 상위 20%의 소득을 하위 20%의 소득으로 나눈 값)은 5.95로 역대 최고다.”

“지난 5월 취업자 수는 작년 같은 달에 비해 7만2천명 늘어나는 데 그쳤다. 취업자 증가 인원은 지난 2월부터 3개월 연속 10만명대로 주저앉은 것도 가히 충격적인데 지난달에는 7만명 수준으로 떨어졌다.”         

“4대 중증질환을 제외하면 보장률은 전년보다 1.1%p 감소한 57.4%까지 떨어진다. 이는 5년 전인 2011년 60.1%보다 낮은 수치로, 시간이 갈수록 중증질환 제외 질환에 대한 보장성은 되레 후퇴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저기 언론 기사에서 따왔으나 굳이 출처를 밝히지 않는다. 매일 쏟아지는 소식, 특히 정부가 무얼 했다는 정책 내용의 상당수는 이런 형식이다. 숫자의 정확한 의미도 그리 중요하지 않다. 여기서 숫자는 최고, 충격, 후퇴 같은 말을 뒷받침하는 과학적 근거로 소비된다. 

통계(statistics, statistiques, Statistik, estadística,...)라는 말의 어원이 ‘국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진작부터 통계는 국정과 통치의 핵심 수단이었다. 이제는 객관성, 투명성, 신뢰, 과학성, 정당성, 권위를 담보하는 수준을 넘어 초월적 지위를 얻었는지도 모른다.     

초월은 한편 괴리를 뜻한다. 통치술로서의 숫자는 사람들의 삶을 추상화하고 대표하되, 구체적으로 드러내지 못한다. 과학인 것처럼 보이지만 삶의 구체성을 드러내는 데는 실패하기 쉽다. 소득 5분위 배율이 5.9에 이르고 건보 보장률이 전년보다 1.1% 포인트 줄었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이 숫자들은 어떤 삶이 어떻게 좋아지고 나빠졌는지, 특히 왜 그렇게 되었는지, 아무런 힌트도 주지 않는다. 숫자는 죽었고 내 삶과는 멀리 떨어져 소외되었다. 더 나쁜 것은 숫자의 의미를 생각하지 못하게 한다는 점이다. 과학적이고 객관적이니 당연히 그대로 믿는다. 우리는 잘 모르고 그들은 알 터이니, 전문가 손에 맡긴 최고, 충격, 후퇴라는 판단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때 숫자는 권력이고 정치다. 당연히 가치 중립도 아니다. 소득 자료 또는 보장률 수치를 둘러싼 논란을 보고도 숫자와 통계는 ‘스스로 말한다’ 할 수 있을까? 프랑스의 법학자 알랭 쉬피오가 이를 숫자놀음 통치‘라고 말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관련 기사 바로 가기).  

둘째, 사람이 배제된 성과/결과.

숫자에 매몰되면 성과/결과는 숫자로 잴 수 있고 통계로 낼 수 있는 것으로 한정된다. 숫자로 파악할 수 없는 가치는 사라지고, 측정할 수 없는 결과는 아예 결과로 치지 않는다. 민주주의 강화, 인권 신장, 평화, 사회 연대 등이 구호 이상이 되기 어려운 이유다.

관심을 두는 성과/결과가 좁아지는 것도 문제지만, 수단과 목표가 뒤바뀌는 일이 더 심각하다. 소득 불평등 지표가 가난한 사람들의 실제 소득보다, 소득 수준이 각 사람의 물질적 조건과 삶의 질보다 중요할 수는 없다. 숫자와 통계는 필연적으로 집단에 대한 것이니, 각 개인은, 특히 불리하고 사정이 나쁜 개인은 ‘평균’과 ‘범위’ 등의 지표 속으로 사라진다.

형식만 남은 숫자를 결과로 전치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마저 평가하기 어려워 아예 결과와 성과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 더 나쁘다. 관료와 관료체제가 스스로 성과라 부르는 것들은 정작 그 성과가 필요한 사람 시각에서는 ‘투입’과 ‘노력’에 지나지 않는다.   

"중소·중견기업과 청년, 고용위기지역 주민들이 지원 정책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홍보하고 7월까지 추경예산의 70% 이상을 신속하게 집행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해 달라" (관련 기사 바로 가기)

몇 개의 일자리 창출이라는 목표가 있으니 이 정도도 괜찮을까? 한국 평균은 넘지만 이것만으로는 이루고자 하는 가치를 드러낼 수 없다. 일자리 또한 궁극적 목표가 아니라 수단이니 정책 목표와 평가는 여기서 더 나가야 한다. 어떤 일자리인지, 그 일자리로 나와 우리 가족의 소득이 얼마나 달라지는지, 예산 지출과 일자리 증가, 소득이 차례로 이어져야 마땅하다.

사회정책에서는 성과/결과에 무관심한 정도가 더 심하다. 성과를 명확하게 규정하기도 어렵지만, 그런 성과가 나타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현 정부가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치매국가책임제도 마찬가지다.

“전국 252개 보건소에 치매안심센터가 설치되어, 치매어르신과 가족들이 1:1 맞춤형 상담, 검진, 관리, 서비스 연결까지 통합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된다....이상행동증상(BPSD)이 심해서 시설이나 가정에서 돌보기 어려운 중증환자는 앞으로 전국적으로 확충될 치매안심요양병원을 통해 단기 집중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정책브리핑 바로 가기)

여기에 ‘사람’은 어디에 있는가? 사람(국민)들에게 정부가 치매국가책임제를 위한 ‘시스템’을 갖추고 이를 위한 예산을 쓰는 것은 두 번째다. 정부의 투자와 노력으로, 그래서(!) 무엇이 어떻게 바뀌는지, 우리 가족과 지역사회는 어떻게 달라지는지가 중요하다.

사람 중심의 성과와 결과란 무엇인가? 다른 것이 아니라, 나와 우리의 요구가 해결되고 필요가 충족되는 것, 생활 조건이 나아지고 삶의 질이 개선되는 것, 그리고 안심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상태를 가장 앞에 두는 것을 뜻한다. 이 관점에서 돈을 얼마나 쓰고 시설을 어떻게 했는지, 또는 체계를 어떻고 고치고 정비할지는 성과를 달성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 글을 숫자와 성과를 버리자는 주장으로 해석하지는 않을 것으로 믿는다. 숫자와 성과에 대한 관심은 근대적 현상이자 ‘도구적 이성’의 구현으로, 사회학자 이기홍의 말을 빌리면 “근대성과 계몽주의의 해방적 잠재력의 유력한 한 가지 표출방식”이다(관련 논문 링크 바로 가기). 진보이면서 해방적인 것, 버릴 수 없다. 

그러면서도 도구적 이성은 억압적이다. 합리성과 과학의 이름으로 사람, 특히 비전문가를 배제하며, 끊임없이 목적과 도덕적 평가를 분리하려 한다. 국가권력은 새로운 지식권력을 바탕으로 통치를 효율화하는 것이다. 

이런 ‘숫자놀음 통치’를 벗어나려면 도구적 이성과 더불어 해방적 이성과 역사적 이성에 의존해야 한다. 앞서 인용한 이기홍은 도구적 이성의 불가피성과 더불어 해방적 이성을 회복할 것을 주장한다. 

“이들 이성은 비판적 합리성, 실천적 합리성, 역사적 합리성의 형태로 구현되며, 숫자의 통치에 대한...지적도 비판적 합리성의 한 표현인 셈이다. 계산적 합리성, 기술적 합리성은 그것이 도구적 이성을 넘어 해방적, 역사적 이성과 결합되어 구현될 때 해방에 복무할 수 있다.”

우리는 ‘사람 중심성’이 해방적 이성의 한 가지 핵심 전제라고 생각한다. 누구에게 무엇이 얼마나 좋아질까? 어떤 고통과 수고가 얼마나 줄어들까? 누가 이득을 얻고 누가 부당한 피해를 보는가? 비판하고 성찰하는 것이 첫 단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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