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포르시안] #. 최근 서울의 S의원은 건보공단 지사로부터 한 통의 협조요청 공문을 받았다. 

요양급여 및 비용 청구 내역 중 내원일수 증일청구, 비급여 진료 후 이중청구가 있는지 확인이 필요하니 2016년 5월 1일부터 7월 31일까지 진료비 수납 대장과 비급여 목록을 이메일을 통해 이달 25일까지 제출하라는 내용을 담은 자료제출 협조요청 공문이었다. 

공단은 필요한 경우 진료기록부, 검사결과지 등을 추가로 요청할 예정이라고 했다. 

특히 '현지확인은 요양기관의 협력을 전제로 부분적 제한적으로 확인을 하고 있으며, 자료제공 협조요청을 2회 이상 거부하실 때에는 보건복지부에 현지조사 의뢰할 수 있다'는 경고도 덧붙였다. 

이 공문은 지난 11일 대한의사협회와 건보공단이 현지확인제도 개선 방향에 합의하고 이틀 후인 13일자로 생산된 것이다. 

앞서 의협과 공단이 '현지확인 제도 개선 방향'에 합의했지만 공단의 현지확인 통보는 기존과 같은 방식으로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관련 기사: 의협, 건보공단 현지확인 대폭 개선 이끌어내>

의협과 건보공단은 현지확인 제도 개선 합의를 통해 방문확인은 요양기관이 동의한 경우에만 실시하고, 요양기관이 자료제출 및 방문확인을 거부하거나 현지조사를 요청하는 의견을 표명한 경우 자료제출 및 방문확인을 중단하도록 했다. 

현지확인을 처벌보다 계도 목적으로 운영하고, 수진자 조회 등 향후 방문확인 제도 개선을 위해 두 기관이 지속해서 협의하기로 했다.

그러나 S의원이 받은 공문에서는 의협과 건보공단이 합의한 내용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위법한 월권행위에 해당하는 요구도 있었다.

산부인과의사회 비상대책위원회 이동욱 위원장은 "건보공단은 S의원에 보낸 공문에서 진료비 수납 대장 일체를 요구하고 있는데, 이는 명백한 위법"이라며 "행정조사기본법 제10조는 '행정조사 때 조사의 목적과 범위를 구체적으로 알려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어떤 질환으로 치료한 환자 누구누구'를 명시하고 이 환자에 대한 청구분이나 비용청구가 타당한지 알아보기 위한 것이라고 명시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범위를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고 자료 일체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위원장은 "건보공단은 요양급여비용 청구가 적법 타당한지 조사를 한다는 명분으로 자료제공을 요청했는데 이 부분은 평소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조사하고 모니터링 중인 사안"이라며 "공문 내용만 보면 건보공단이 중복조사 권한을 주장하고 있는 셈"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건보공단이 심평원이 해야 할 일까지 넘볼 정도로 직원이 남아돌고, 할 일이 없다면 마땅히 구조조정을 해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렇듯 의협과 건보공단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현지확인을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대한의원협회는 지난 12일 성명을 내고 의협과 건보공단의 합의안은 오히려 현행보다 더 개악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관련 기사: “의협-건보공단 현지확인 개선 합의안, 오히려 개악이 될 수도”>

의원협회는 "지금도 요양기관의 동의가 있어야만 공단은 현지확인을 할 수 있으며, 거부하는 경우 현지확인을 실시할 수 없다"며 "의협과 공단이 합의한 개선방향에는 현지조사 의뢰에 대한 언급이 없다. 요양기관이 자료제출이나 방문확인을 한 번이라도 거부하면 바로 현지조사를 의뢰할 수 있다고 해석될 수도 있어 오히려 개악의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의원협회는 "현지확인 제도가 제대로 개선되기 위해서는 공단의 현지확인을 거부하더라도 복지부에 현지조사를 의뢰하지 않는다는 명확한 언급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처벌보다 계도 목적으로 현지확인 제도가 운용되기 위해서는 모호한 급여기준으로 인한 부당청구나 착오청구 등에도 업무정지 등의 행정처분을 내리는 '원스트라이크 아웃' 방식이 먼저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원협회는 이 같은 문제 인식을 기반으로 ▲자료제출 및 방문확인 대상에 대해 요양기관 단체와 미리 협의할 수 있는 논의기구 마련 ▲자료제출 및 방문확인 사유를 명확히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그 내용 이외의 다른 사안은 확인 금지 ▲수진자 조회 금지 등의 제도 개선 방안을 제시했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건보공단의 현지확인은 법적 근거가 없는 임의 제도인데 의협이 건보공단과 제도 개선에 합의함으로써 현지확인을 인정해준 셈이 됐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지난 2003년 법제처의 현지확인 범위 유권해석을 보면 '건보공단은 현지확인 권한이 없고 서류확인으로 부족할 경우 요양기관의 진료행위에 방해를 주지 않는 범위에서 요양기관의 임의적인 협력을 전제로 제한적이고 부분적인 현지확인이 가능하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지난 19대 국회 때 최동익 의원은 건보공단에 현지확인 권한을 주는 건강보험법 개정을 추진했으나 무산된 바 있다. 

반면 건보공단 노조는 건보공단의 방문확인과 복지부의 현지조사는 법률로 보장된 각 기관의 고유업무라며 의료계의 주장을 일축했다. 

노조는 지난 13일 공식 입장을 통해 "건보공단이 수행하는 요양기관 방문확인은 건강보험법 관련 규정에 따라 부당이득징수권을 수행하는 절차"라며 "건강보험법 제96조에 따라 '사위 그 밖의 부당한 방법으로 보험급여비용을 받은 요양기관'에 대해서 필요한 자료 제공을 요청해 착오·부당 확인 시 해당 급여비용에 상당하는 금액의 전부 또는 일부를 환수하는 업무"라고 강조했다.  

노조는 "일부 의사단체의 주장대로 방문확인과 현지조사가 일원화된다면 건보공단의 방문확인으로 파악된 연간 8,000여 건의 단순 착오·부당청구기관 모두 현지조사 대상기관이 됨으로써 해당기관의 심적 부담은 오히려 배가될 것"이라며 의사단체의 부당한 압박이 지속된다면 조직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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