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서 대학병원 분원 설립 경쟁...4~5내 병상 6~7천개 늘어
"지역 의료자원·환자 흡수하는 블랙홀...의료생태계 파괴" 우려 커져
복지부, 지역별 병상 불균형 해소 ‘병상수급 기본시책’ 곧 발표

[라포르시안] 앞으로 5년 이내에 서울대병원 등 대형병원들이 수도권에 설립 예정인 분원만 10개를 넘는다. 예정대로 수도권 대형병원 분원 설립이 완료되면 늘어나는 병상 수가 7000개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정도 병상 수는 인구 40~60만명에 달하는 중소도시의 전체 병상 수와 맞먹는 규모다.
수도권 대형병원의 병상 신증축은 급성기병상 과잉공급에 따른 의료체계 왜곡을 초래하는 것은 물론 지방 의료인력과 환자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여 지역 의료인프라 붕괴를 재촉할 것이란 점에서 우려가 크다.
수도권으로 의료자원 쏠림은 '지방 소멸'을 부추킬 수 있고, 지방 소멸과 지역 필수의료 붕괴는 상호 작용하면서 상황을 더 나쁘게 몰아가는 악순환 구조라는 점이 더 큰 문제다. <관련 기사: 지방소멸은 지역의료 붕괴 원인이자 결과...악순환의 연결고리>
16일 더불어민주당 김원이 의원(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신도시 개발과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건설 등으로 환자수요가 늘 것이란 기대감 속에 서울과 인천, 경기도에 건립을 추진중인 대학병원 분원은 서울대배곧병원(시흥)을 비롯해 총 11곳으로 병상수는 6,600개에 이른다.
병원별로 보면 서울대병원이 경기 시흥에 개원 예정인 서울대배곧병원은 800병상 규모에 달한다. 서울아산병원이 인천 청라의료복합타운에 설립 예정인 가칭 '청라아산병원'도 800병상 규모로 알려졌다.
연세의료원도 인천 송도에 800병상 규모 분원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가천대 길병원은 서울 송파구 거여동 일대 위례 의료복합용지에 1000병상이 넘는 병원 건립을 추진한다.
이들 병원과 유사한 규모로 수도권 대학병원들이 추진하는 분원만 11개에 이르고, 2026년~2027년 사이 완공 또는 개원 예정이다. 계획대로 추진해 문을 열면 수도권에만 7000개 가까운 병상이 순증한다.
앞서 2020년에 755병상 규모로 용인세브란스병원이 개원한 데 이어 2022년 3월에는 700병상 규모 중앙대광명병원이 문을 열었다.
앞으로 4~5년 새 7000개 가까운 병상이 증가하면 인구 40~60만명에 달하는 중소도시에 있는 것과 비슷한 규모의 병상이 순증하는 셈이다.
참고로 2021년 기준 경기도 주요 도시 중 인구 40~70만명 규모 지역의 병상수를 보면 ▲안산시(인구 68만명) 병상 9400개 ▲남양주시(74만명) 6,268개 ▲의정부시(46만명) 6,202개 ▲파주시(50만명) 5248개 ▲안양시(55만명) 4502개 ▲평택시(61만명) 4531개 ▲광주시(40만명) 2001개 등이다.

대학병원들이 수도권에서 병상 확충으로 몸집 불리기를 한 게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김원이 의원이 보건복지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00년 이후부터 전국에 신규 개설된 대학병원은 총 16곳으로, 이중 절반이 넘는 9개가 수도권에 위치하고 있다.
문제는 수도권 대학병원이 신규 개설하거나 분원을 설립하면서 필요한 의료인력을 확충할 때 지방 의료인력이 대거 이탈해 몰려든다는 점이다.
500~1,000병상 규모 대학병원이 설립되면 전공의를 빼고 200~300명 정도 전문의를 필요로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수도권에 대학병원 1곳이 들어설 때마다 지방에서 근무하는 의사 수십명 이상이 이탈할 수 있다.
의사보다 더 많은 인력이 필요한 간호사의 수도권 쏠림도 더 심해질 게 뻔하다. 가뜩이나 지역 중소병원은 간호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는데, 수도권 대형병원이 분원 설립으로 인력 확충에 나서면 경력직 간호사들이 대거 빠져나가는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수도권 대형병원의 분원 설립으로 지역 의료인력이 이탈하면 중증·응급의료와 분만·소아 진료 등 필수의료 인프라 붕괴를 가속하한다.
전문가들은 수도권 대형병원 병상 확충이 지방 의료인력 흡수로 이어져 지방 의료서비스 질을 떨어뜨리고, 지방환자들의 수도권 ‘원정진료’를 심화시킨다고 지적한다.
수도권 대형병원 몸집 불리기가 가져올 또다른 문제는 지역 의료인프라 붕괴를 가속하고 '지방 소멸'을 재촉할 것이란 점이다.
벌써부터 인구가 감소하는 많은 지방 중소도시에선 시장성이 없다는 이유로 의료시설 인프라가 빠르게 축소되고 있다. 인구가 감소하면서 의료 인프라도 더 줄어들고, 악화된 의료 인프라는 인구 유출을 부추긴다. 여기에 수도권 대형병원이 분원을 설립하면서 늘어난 병상만큼 의료인력 충원에 나서고, 이쪽으로 지역 의료자원이 흡수될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의료계에서도 지금의 상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대한개원의협의회는 "유명 대학병원 분원 개설은 지역 의료 생태계를 황폐화시킨다. 시설과 인력, 브랜드와 자본 모든 면에서 압도적인 대학병원 분원과 지역 의료기관은 경쟁 상대가 될 수 없다"며 "일차적으로 지역 의료 수요를 깔때기처럼 빨아들여 코로나 이후 가뜩이나 어려운 지역의 의원급 의료기관과 중소병원의 경영난을 가중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국 중소병원장들이 참여하는 대한병원장협의회도 작년 12월 성명을 내고 "대학병원과 중소병원, 의원급 의료기관은 각각 역할이 있는데, 대학병원 증설 경쟁이 중소병원, 의원급 의료기관의 목숨을 끊어 의료라는 생태계를 교란시킬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며 "대학병원이 중증 진료와 교육이라는 본연의 역할에 집중할 수 있도록 외래를 제한하고, 의료비용의 급상승을 불러일으키는 대형병원의 병상 수를 지역별로 제한할 것"을 요구했다.
지금처럼 수도권 대형병원의 병상 확충 경쟁과 이로 인한 의료자원 쏠림 문제를 억제하려면 국가 차원의 병상수급 관리 대책이 필수적이다.
현재 지역별로 병상 허가권은 지자체장이 행사한다. 그러다 보니 병상의 합리적인 공급과 배치에 어긋나는 지자체별 증설 허가도 이뤄지고 있다.
복지부는 의료 질을 높이고 의료기관 병상을 적정 수준으로 관리하기 위한 병상수급 기본시책을 수립할 방침이다. 전국적인 병상 수급 현황을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병상 수급을 위한 기본시책 수립을 추진해 왔다.
복지부가 마련한 병상 수급 기본시책 추진방안에 따르면 각 시·도에서 지역 특정에 맞는 병상수급관리계획을 세우고, 병상 신증설 관리를 시행한다. 이를 이해 정부는 가칭 '병상관리위원회'를 두고 시도 수급관리계획이 병상기본시책에 맞는지 여부와 병상 유형별 적정 배치 등을 심의 조정하도록 할 예정이다.
병상수급 관리는 수급분석 결과에 따라 공급과잉, 신증설 가능, 공급조정필요 지역을 선정한다. 인구수 기준과 유출입 일수 등을 고려해 모두 공급과잉으로 나온 지역은 병상 신증설을 금지한다.
복지부는 대한의사협회는 '의료현안협의체'에서 수도권 대학병원 분원 개설 제한 방안도 논의하고 있으며, 이달 말쯤 지역별 병상 불균형 해소를 위한 병상수급 기본시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 수도권 대형병원 몸집 키우기 경쟁...'지방 의료소멸' 가속화한다
- 지역완결적 필수의료 지원대책 수립...공공정책수가·의료인력확충 추진
- 2026년 일반병상 4만개 이상 공급과잉...신·증설 제한 추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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