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만·응급·중증진료 등 지역 필수의료 붕괴 가속화
"시장실패 영역, 공공의료 강화·의료부문 지방분권화 필요"

[라포르시안]  인구고령화와 저출산 속에서 수도권으로 인구 쏠림이 심화돼 '지방 소멸'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지방 소멸은 곧 지방 의료체계 붕괴와도 맥이 닿아있다. 

의료공급체계에서 민간의료기관이 차지하는 비율이 90%를 넘는다. 인구가 감소하는 많은 지방 중소도시에서는 시장성이 없다는 이유로 의료시설 인프라도 빠르게 축소되고 있다. 인구가 감소하는 많은 지방 중소도시에서는 시장성이 없다는 이유로 의료시설 인프라도 빠르게 축소되고 있다. 인구가 감소하면서 의료 인프라도 더 줄어들고, 악화된 의료 인프라는 인구 유출을 부추긴다. 지방 소멸과 의료체계 붕괴는 상호 작용하면서 문제를 키우는 악순환 관계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올해 초 펴낸 '2023 올해의 이슈' 보고서에서 지방소멸과 공공의료 인프라 문제를 다루면서 "지방소멸은 당면한 사회문제로, 지역 쇠락과 의료인프라 붕괴는 상호작용하며 악순환 관계에 있다"며 민간의료기관 중심으로 구성돼 시장원리가 작동하는 한국 의료공급체계에서 지방 인구소멸은 의료시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지방소멸 위기를 들여다보면 그 이면에 지역 의료인프라 부실 문제가 원인이자 결과로 놓여 있다. 의료서비스의 대부분을 민간의료기관이 제공하는 국내 의료체계에선 인구가 적거나 감소하는 지역은 시장성이 없다는 이유로 의료기관이 진입하지 않거 기존 의료기관도 철수·폐업해 의료서비스 과소 공급 상태에 놓인다. 

초기 설비투자 부담이 크고 유지 관리에 많은 비용이 드는 응급·중증진료 영역은 민간에서 적정 공급을 기대하기 힘든 대표적인 시장실패 영역이다. 당연히 지방의 인구소멸에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분야이기도 하다. 보건복지부 고시로 지정된 2022년 응급의료분야 의료취약지는 98개 시·군·구에 달한다. 

공공의료 인프라가 사실상 부재한 거나 마찬가지인 상태에서 지방 소멸에 따른 의료인프라 붕괴는 지역 간 건강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촉진제로 작용한다.

보건복지부가 2019년 11월 '믿고 이용할 수 있는 지역의료 강화대책'을 발표하면서 제시한 자료를 보면 입원환자 사망비는 충북이 서울에 비해 1.4배, 뇌혈관질환 환자 사망비는 충북이 부산에 비해 1.5배 높다. 응급환자 사망비는 대구가 서울에 비해 1.2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민간의료 중심 시장원리에 기반해 작동하는 한국 의료체계에서 지방의 인구 소멸은 의료시장에 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2021년 10월 인천시민사회단체연대가 주최한 인천시민사회포럼에서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한국 의료는 거의 전적으로 ‘시장형’ 의료체계라 불러야 하며, 공기관인 보건소와 보건지소, 보건진료소를 제외하면 모두가 시장에서 ‘생존해야’ 하는 경제 주체이다. 분리해 보건의료 내부에서만 원인을 찾는 것은 잘못"이라며 "인구가 적은 지역에 왜 병원이 없고 있더라도 이름값을 하지 못하는 병원, 병원답지 않은 병원이 그리 많을까 하는 건 영화관, 프랜차이즈 커피집, 서점, 대형 마트가 없는 것과 꼭 같은 이유다. 수요가 적고 매출이 떨어지며 경영 수지를 맞출 수 없으면 시장이 무너지고 시장원리는 작동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인구감소로 시장이 작동할 여건이 되지 않는 곳에서 의료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공공의료를 확충을 꼽았다.  

그는 "선거 때마다 방방곡곡에서 의과대학을 신설하느니 대형 병원을 유치하느니 하는 공약이 난무하지만, 시장 원리의 연장선에서는 다 불가능하다. 어느 병원이든 어떤 지원을 하든 의료 시장에서 살아남고 이기려면 무엇보다 먼저 시장이 시장답게 존재해야 한다"며 "작동하지 않는 시장을 두고 시장 원리를 말하는 것은 자가당착에 지나지 않는다. 상당한 재정을 공적으로 지원해야 하면, 차라리 공공부문이 직접 운영하고 책임을 지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했다. 

이런 가운데 서울대학교가 디지털·바이오헬스케어 기술 기반으로 지역의료전달체계 혁신과 보건의료 정책 개선 방안을 모색하는 지역의료혁신센터를 개설했다. 

서울대는 지난 18일 연건캠퍼스 행정관 대강당에서 지역의료혁신센터 개소 기념 심포지엄을 개최한다. 이 센터는 올해 8월 서울대 의대 건강사회개발원 산하 기관으로 신설됐다. 강대희 서울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전 의대 학장)가 초대 센터장을 맡았다. 

센터는 '지역의료'와 바이오헬스산업' 등 2개 부로 구성된다. 신애선 부센터장(의대 예방의학교실) 소관의 ‘지역의료’부에서는 미래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개인 맞춤형 주민 건강관리체계를 개발하며, 유경상 부센터장(의대 임상약리학교실) 소관의 ‘바이오헬스산업’부는 지방의 디지털‧바이오헬스케어산업 육성을 지원한다. 총 13명의 서울대 교수가 참여하며 자문교수 및 외부자문단을 통해 센터 활동을 계획한다

자문교수로 참여하는 서울대 의대 가정의학교실 정은경 교수는 이날 심포지엄에서 지역 의료인프라 붕괴가 지역소멸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지적하며 공공의료 확충으로 필수의료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은경 교수는 "지역소멸은 결국 지역 보건의료 인프라를 유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민간 시장이 인프라 유지를 못 하면 정부가 돈을 대 민간 부분을 부양하거나 공공병원을 설립해 최소한의 필수의료를 제공해야 한다"며 "지역의료 격차를 해소하지 않으면 지역 소멸은 가속할 수밖에 없다. 지역의 건강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려면 지역 단위 보건의료 체계 확립과 공중보건정책 강화, 디지털 헬스케어를 중심으로 한 지역 간 격차를 줄이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대희 센터장은 “지금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지역소멸이다. 이건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소멸의 문제”라며 “지금 이 문제를 제대로 진단하고 치료하지 않으면 한국의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의료체계 지속가능성 문제와 지역간 건강 불평등은 치료불가능한 상태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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