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대형병원 분원 설립 가속...환자·의료자원 쏠림 우려
의료계 "병상총량제 관리와 병상자원 합리적 재배치 절실"
복지부 "지자체가 병상관리계획 수립하도록 드라이브 걸 것”

[라포르시안] 수도권 상급종합병원들의 무분별한 병상 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지역 병상총량제 및 의료기관 개설 허가 강화 등 중앙정부 차원의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병상이 늘어난 만큼 핵심 의료자원인 보건의료인력도 흡수하게 돼 지역별 의료인력 수급 불균형을 심화시킬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문제가 크다.
보건복지부는 수도권에 병상이 집중돼 지역의료가 붕괴되면 심각한 위기가 초래될 것이라는 점에 공감하고, 지역별 병상관리 계획 수립을 위한 드라이브를 건다는 계획이다.
최근 수도권 9개 대학병원에서 인천광역시와 경기도 등에 11개 분원 설립을 추진하면서, 수도권 환자쏠림과 지역의료 붕괴에 대한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병상총량제와 의료기관 개설 허가 강화 등 정부의 통제 기전이 시급하다는데 의견이 모이고 있다. <관련 기사: '지역의료 붕괴 → 지방소멸' 재촉 수도권 대형병원 몸집 부풀리기>
지난 3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병상자원의 적정한 관리방안 마련 및 수도권 대학병원 분원 설립 문제 대응' 토론회에서도 이같은 주장이 제기됐다. 이날 토론회는 국민의힘 이종성 의원이 주최하고,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병원협회가 공동 주관했다.
이종성 의원은 인사말을 통해 “의료서비스를 공공재라고 한다. 공공재면 국가가 계획적으로 지역별로 균형있는 배분 및 관리 체계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며 “고속도로를 지방 간에 어떻게 연결하고 균형있게 배분할 것인지와 같이 의료서비스도 기간산업 차원에서 골고루 배치돼야 하는데, 그동안 우리나라 의료체계는 이런 점에 미흡했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수도권 병상의 공급과잉으로 파급된 여러 문제점들은 결국 병원 간 치킨게임으로 번질 우려가 있고, 건보 재정의 과다한 소진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주제발표를 맡은 의협 우봉식 의료정책연구원장은 건강보험 정책에서 자원의 가장 핵심은 병상으로, 지속 가능한 병상수급정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관련 기사: OECD 보건통계 속 한국 의료시스템...지속가능하지 않다>
우봉식 소장은 “일본은 병상 기능에 따라서 고도급성기, 급성기, 회복기, 만성기로 구분하고 병상 기능이 맞지 않으면 아예 인허가를 내주지 않는 강경한 정책를 펼치고 있다”며 “그 결과, 외래 진료비가 제작년부터 감소하고 있으며, 입원 진료비는 2034년 이후 점차 줄고 전체 의료비도 감소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 소장은 “국내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의 경우 요양급여비 및 입원진료비를 비롯해 병상 수도 지속적 증가 추세”라며 “수도권 대학병원 분원 설립으로 6,600병상이 증설되면 연간 2조 4,810억원의 요양급여비가 발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늘어난 6,600병상에 필요한 의사 수는 2,700명, 간호사 수는 8,700명 정도로, 관련 비용이 발생한다는 사실도 잊으면 안 된다”며 “수도권 대학병원 분원 6,600병상 증설을 즉각 중지시켜지 않으면 큰 재앙이 다가올 것이다. 아울러 질환별 기능에 따른 병상총량제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발표 후 이어진 토론에서는 상급종합병원의 수도권 병상 증설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이 주를 이뤘다.
대한전공의협의회 강민구 회장은 의료인력 정책과 병상 정책 간의 연계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강민구 회장은 “병상당 전문의 인력 기준이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하더라도 실질적으로 기능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무분별하게 증가하는 병상 수에 맞춰 의사를 채용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보여지는 것 같다”며 “애초에 병상을 무분별하게 확장하지 않도록 병상당 인력 기준 명시를 통해서 이런 문제를 방치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 외래진료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상급종합병원의 기능을 입원 중심으로 전환하고, 수가제도 등을 개편해서 상급종합병원의 무분별한 분원 설립을 억제해야 한다”며 “대학병원 분원 설립은 중앙정부에서 별도로 심사해서 병상 총량에 대해서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대한병원협회 권정택 정책부위원장도 의료자원이 수도권에 과도하게 집중되는 것에 우려를 표명했다. 다만, 단순히 병상 과잉 측면에서 접근하기 보다는 병상자원의 균형있는 재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권정택 정책부위원장은 “전국적으로 병상이 과잉 공급된 상태지만, 지역별로는 과잉 또는 부족한 상태로 병상자원의 분포가 고르지 못하고, 의료기관 유형별 분포도 불균형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며 “지역별 병상의 총량 관리도 필요하지만, 병상자원을 합리적으로 재배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병상 자원의 관리 제도가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제기했다.
권 부위원장은 “의료법 제33조에 따르면 시도지사는 병상수급 기본 시책과, 시도의 계획에 적합하지 않은 경우 개설허가를 할 수 없도록 하고 있으나, 실제 시도지사의 병원·종합병원 개설 허가가 연계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신도시 지자체장 선거 시 대형병원 유치를 공약으로 내세우는 경우가 많은데, 대체로 신도시는 대도시 인근에 위치해 병원 신설 시 병상 공급 과잉 현상이 발생할 수 있는데 이를 적극적으로 관리·규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며 “뿐만 아니라 병원이 건축법령에 따라 건축심의 절차를 걸쳐 신설·증축 허가를 받은 후에는 뒤늦게 의료법에 따른 규제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병상 자원관리 정책 수립 시 지역의 종별 의료기관 적성 수준에 대한 체계적 분석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바탕으로 의료기관 개선 허가 등 관련 제도와의 연계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
마지막으로, 의료기관의 인수합병을 가능토록 함으로써 의료자원의 활용률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제시했다.
그는 “현행 의료법상 의료법인은 인수합병이 불가능해 경영이 한계에 이르더라도 파산 전까지 운영할 수 밖에 없는 구조”라며 “병상 등 의료자원의 활용률을 높이기 위해 경영상태가 한계상황에 다다른 의료법인의 인수합병을 통해 퇴출구조를 열어주는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보건복지부 오상윤 의료자원정책과장은 강력한 병상 관리 정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오상윤 과장은 “그동안 강력한 병상 관리 정책을 시행하지 못했다는 문제점이 있었던 것 같다”며 “1990년대까지만 해도 관련 정책들이 있었지만, 의료 인프라 확충 등 여러 이유로 2000년대부터는 규제들이 다 사라졌고, 지금의 현실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지방분권 강화에 따라 병상 통제가 쉽지 않다는 점도 토로했다.
오 과장은 “지역의 병원 유치 양상을 보면 굉장히 경쟁적이라 일부 지자체에서는 비용을 보조하기도 한다”며 “시도지사가 행사하는 개설 허가 권한들이 시군구로 많이 위임되는 등 분권화가 상당히 진행되다보니, 중앙차원에서 통제를 강화하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싶어도 쉽지 않은 정책 환경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자체가 지역 의료체계의 전체적 구상이 부족한 채 일반 병원을 유치하는 등 양적 팽창에만 집중하다보니 그 안에서의 필수 및 공공의료, 의료전달체계에 대한 전체적인 구상이 사실상 미흡했던 것 같다”며 “이런 무한경쟁에서 의료자원이 수도권으로 쏠려 지역의료가 무너지면 의료의 접근성과 보편적 건강보장 관점에서 심각한 위기를 겪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병상관리 정책 시행에 대한 강력한 의지도 표명했다.
오 과장은 “2020년 1월 중앙정부가 병상 관리 시책을 수립하고, 이에 따라 시도에서 관리계획을 수립하는 내용의 의료법이 시행됐다”며 “그 시기에 코로나 팬데믹으로 병상에 대한 관리를 적극적으로 하지 못했는데, 이제 강력하게 정책 의지를 가지고 추진코자 한다”고 밝혔다.
그는 “지방정부에 의료법에 규정된 병상 관리 시책의 전체적인 방침을 전달하려고 준비 중이고, 시도가 병상 관리 계획을 수립할 수 있도록 드라이브를 걸 계획”이라며 “의료법에 따라 시책에서 어긋나는 신규 의료기관은 개설 허가를 해주지 않을 수 있다는 내용들도 준비돼 있다. 강력하게 정책을 실시하고, 지역별로 꾸준히 병상의 수급 상황을 모니터링하면서 억제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시도지사의 의료기관 개설 허가권에 대한 통제 필요성도 언급했다.
오 과장은 “시도지사, 시군구청장들은 이해관계에 따라 더 많은 병원을 유치를 원할 수 있고, 이 경우 당연히 허가권을 행사하려고 할 것”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통제 장치가 필요하다. 의료법 개정을 통해 개설 절차를 강화하는 등 법과 제도 개선이 반드시 필요할 것으로 복지부는 공감하고 있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