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부 "1차의료기관 초진수준 제도화하면 5년간 최대 150만개"
앞서부터 경제단체 등서 '원격의료 = 일자리 창출' 주장...근거 부족
"비대면진료 제도화시 보건의료 실질적 일자리 감소...일자리 질도 악화"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이 12월 1일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보완방안'을 브리핑하고 있다.  사진 출처: 보건복지부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이 12월 1일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보완방안'을 브리핑하고 있다.  사진 출처: 보건복지부

[라포르시안] 정부가 비대면진료(원격의료) 시범사업 적용 대상과 지역을 대폭 확대하는 내용의 보완방안을 추진하면서 의료계로부터 반발을 사고 있다. 야간과 휴일에 비대면진료로 진료와 처방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을 전국민으로 확대하고, 섬·벽지 외에도 응급의료 취약지에 해당하는 전국 98개 시군구 지역에서도 비대면진료가 가능하게끔 허용 범위를 확대했다. 

의료계는 정부의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보완방안에 반발이 거세다. 당초 의정이 합의한 '재진 환자 중심, 대면진료의 보조 수단'이란 대원칙을 어기는 것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개원의사 단체에서는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참여를 보이콧 하겠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이런 가운데 고용노동부가 비대면진료 허용범위를 1차의료기관 초진수준으로 제도화하면 향후 5년 간 최대 150만명 수준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는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18일 '고용영향평가 결과발표회'를 열고 '비대면의료서비스 확산의 고용영향' 등 5개 과제의 평가 결과를 공개했다. 고용영향평가는 고용정책기본법에 따라 중앙부처・자치단체가 추진하는 주요 정책이 일자리 양과 질에 미치는 경로와 영향을 분석·평가하고, 고용효과를 높이기 위한 정책제언을 제공해 고용친화적 정책이 추진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다.

올해는 산업구조전환, 지역균형발전 등을 중심으로 24개 과제를 선정해 평가가 이뤄졌다. 그 과제 중 하나가 '비대면의료서비스 확산의 고용영향'이었다. 

한국노동연구원 고용영향평가센터가 수행한 평가 결과에 따르면 비대면진료 허용범위가 1차의료기관 초진수준으로 제도화되면 의료인력 규모나 고용여건의 급격한 변화 가능성은 낮지만 의료서비스 접근성이 높아져 전반적으로 의료 전문인력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비대면의료서비스 확대는 디지털 의료기기 제조산업, 그 중에서도 ICT 융합 원격의료기기 산업 활성화에 기여하므로 이 분야 종사자 규모를 증가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향후 5년간 보건의료기기제조 및 서비스업에서 고용효과를 보면 비대면진료 허용범위 확대, 원격모니터링 수가 부여, 통합바이오 빅데이터 구축 등 정부지원을 확대하면 최대 150만명 고용이 증가한다. 전후방연관산업의 취업유발효과는 최대 32만명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고용영향평가센터는 "비대면의료서비스 확산으로 기존 전문의료인력의 ICT 기술 적응을 위한 교육훈련 및 의료분야 도메인지식을 갖춘 ICT기술인력을 양성하는 융합형 인력양성 정책이 필요하다"며 "디지털 헬스케어와 원격의료산업분야는 성장잠재력이 큰 분야로 정부 정책이 계획대로 추진되면 고용유발 효과가 크므로 관련 규제 등을 정비해 계획에 따라 실행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비대면진료 혹은 원격의료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일자리 창출 효과를 언급한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앞서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부터 경제계를 중심으로 일자리 창출을 명분으로 영리병원 도입과 함께 원격의료 규제 개선 필요성을 지속해 주장해왔다. 

한국경영자총협회와 한국경제인협회(구 전경련) 등의 경제단체에선 영리병원 설립과, 원격의료 등 부가가치가 높은 의료산업에 규제 개혁이 이뤄지면 수 만개에서 최대 20~30만개 수준의 일자리 창출 효과가 발생한다는 주장을 제기한 바 있다. 

이번에 고용노동부에서 발표한 비대면의료 확산의 고용영향평가 결과는 앞서 경제단체 등에서 추정했던 원격의료 규제 개혁에 따른 일자리 창출 효과보다 몇 배는 더 큰 규모인 셈이다. 

하지만 비대면진료 허용범위를 1차의료기관 초진수준으로 제도화 했을 때 나타나는 일자리 창출 효과에 대한 근거는 미약하다. 예전에 경제단체에서 주장했을 때에도 원격의료 규제 개혁에 따른 일자리 창출 효과 분석의 근거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오히려 비대면 방식의 원격의료를 제도화할 경우 보건의료 분야에서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란 분석이 만만치 않다.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를 제도화할 경우 보건의료 분야에서 새 일자리를 창출하기보단 되레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나쁜 일자리만 늘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원격의료가 제도화하면 기존 대면진료 방식과 비교해 간호사 등의 의료인력 수요는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만 원격의료 시스템을 확충하고 유지하기 위한 IT인력 창출 효과는 어느 정도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은 2016년 '4차 산업혁명과 일자리의 미래'라는 보고서를 통해 "보건(HE) 분야는 고용 성장률이 높을 것으로 인식되나, 원격의료서비스 도입 등의 영향으로 따라 상대적으로 낮게 전망된다"며 "'모바일 인터넷 및 클라우딩 기술’ 확산으로 인해 원격의료/진단이 가능해짐에 따라 보건 분야의 실질적 일자리는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분석했다. 

'4차 산업혁명과 일자리의 미래' 보고서는 WEF(World Economic Forum)가 제4차 산업혁명에 따른 미래(2015~2020) 일자리 변화 전망 결과를 발표한 내용을 토대로 작성했다. 

비대면진료를 제도화하면 가뜩이나 엉망인 의료전달체계가 더욱 왜곡될 가능성이 높고, 대면진료 중심의 동네의원 인프라가 무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럴 경우 보건의료 인력의 일자리를 오히려 줄어들 수밖에 없고, 국민 건강에도 악영향을 끼칠 우려가 높다.  

의사-환자 간 비대면진료 제도화는 의료서비스 공급 주도권을 기업과 시장으로 넘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미 비대면진료 중계 플랫폼 업계 간 지난친 경쟁 때문에 불법 의료광고와 의약품 오남용 등 비대면진료의 지나친 상업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의료계 관계자는 “비대면진료가 제도화하면 대면진료가 줄어들고, 이로 인해 대면진료에 투입된 보건의료 분야 인력은 갈 곳을 잃게 될 것”이라며 “다만 비대면진료 시스템을 관리하고 이를 운영하는 IT분야 인력은 확충될 수 있지만 전반적으로 기술 혁신에 따른 일자리 창출 효과는 미미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보건의료 분야에서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려면 환자안전과 양질의 의료서비스 제공을 위해 의료기관 내 적정인력 창출이 가능하도록 보건의료제도를 개선하고 건강보험 수가 구조를 개편하는 게 더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OECD국가와 비교해 의료기관 수는 많지만 여기에 종사하는 간호사 인력은 턱없이 부족한 편이다. 

보건복지부가 분석한 'OECD 보건통계(Health Statistics) 2023'를 보면 2021년 기준 우리나라의 인구 1000명당 병상 수는 12.8개로 OECD 평균(4.3개)의 약 2.9배에 달했다. 반면  임상 간호인력(간호사, 간호조무사)은 인구 1000명당 8.8명으로 OECD  평균(9.8명)보다 10% 적었다. 특히 간호사로 한정하면 인구 1000명당 4.6명으로 평균(8.4명)의 55%에 그쳤다. 임상 의사 수(한의사 포함)도 인구 1,000명당 2.6명으로 OECD 국가 중에서 멕시코에 이어 두 번째로 적은 수준이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병원이 더 많은 의료인력을 고용할 수 있도록 간호사 1인당 담당 환자수를 법제화 하는 등 제도를 개선하고, 의료기관이 적정 의료인력을 확충해 운영될 수 있도록 건강보험 수가 보상체계를 개편하는 게 더 효과적이다. 

대면진료 중심 의료인프라는 전국적으로 과잉공급 상태다. 의료접근성 문제는 '수도권 의료집중·대형병원 쏠림'과 같은 의료자원의 공급 불균형에서 비롯되고 있다. 이를 해소하려면 비대면진료 제도화가 아니라 지역·필수의료 분야 의료인력과 공공의료 인프라를 확충해 의료취약지에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의료서비스 제공을 강화하는 것이다. 

의료계 관계자는 “비대면진료가 제도화하면 대면진료가 줄어들고, 이로 인해 대면진료에 투입된 보건의료 분야 인력은 갈 곳을 잃게 될 것”이라며 “다만 비대면진료 시스템을 관리하고 이를 운영하는 IT분야 인력은 확충될 수 있지만 전반적으로 기술 혁신에 따른 일자리 창출 효과는 미미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우리나라는 OECD국가에 비해 의료기관에 종사하는 인력이 1/2~1/3 수준에 불과하고, 이로 인해 의료사고 위험 증가, 의료서비스 질 저하, 긴 대기시간 짧은 진료시간, 불충분한 설명, 막대한 간병 부담 등의 파행적 운영이 초래되고 있다"며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다른 나라 인력 수준만큼이라도 따라가기 위해 보건의료 분야에 양질의 일자리 50만개를 창출하기 위한 적극적인 인력확충 정책이 추진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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