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뷰]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보완방안 이달 15일부터 시행
비대면진료 대상.지역 등 시범사업 범위 대폭 확대
비대면진료 소용 없는 응급의료 취약지도 예외적 허용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이 12월 1일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보완방안'을 브리핑하고 있다.  사진 출처: 보건복지부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이 12월 1일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보완방안'을 브리핑하고 있다.  사진 출처: 보건복지부

[라포르시안] 정부가 최근 의료접근성을 높인다는 명분으로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대상을 확대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진료 이력과 무관하게 야간이나 휴일에는 초진이더라도 비대면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이 골자다. 당장 이달 15일부터 보완방안에 담긴 내용을 시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1일 발표한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보완방안'을 찬찬히 뜯어보면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혼돈과 자기모순의 향연이다. 시범사업 대상을 확대해야 하는 이유와 그에 따른 보완방안이 억지스럽다 못해 모순된다는 것을 금방 눈치챌 수 있다. 억지 논리를 펴면서 합리성이 결여된 정책 방향이 여기저기 짜깁기돼 있다. '아무말 대잔치'를 보는 것 같다. 

첫 번째로, 복지부는 보완방안에서 비대면진료 대상을 크게 확대했다. 지금 하고 있는 시범사업에선 ▲만성질환자는 대면진료 후 1년 이내 ▲만성질환 외 질환은 30일 이내 해당 질환에 대한 대면진료 경험이 있어야 비대면진료가 가능하다. 앞으로는 '6개월 이내 대면진료 경험이 있는 환자라면 다니던 의료기관의 의사가 안전하다고 판단할 경우 질환에 관계없이 비대면진료가 가능하도록' 기준을 조정하기로 했다. 

시범사업을 시작할 때 다니던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일정 기간내 동일 질환으로 대면진료를 받은 이력이 있어야 비대면진료가 가능하도록 한 이유는 환자 안전을 위해서였다. 그나마 일정 기간 안에 동일질환으로 대면진료를 한 이력이 있는 환자라면 비대면진료가 가능하다고 의료계와 일정부분 공감대를 이뤘다. 여기까진 비대면진료가 대면진료의 '보조적 수단'이라는 원칙을 좇은 셈이다. 

그런데 '6개월 이내 대면진료 경험이 있는 환자에 대해선 다니던 의료기관의 의사가 안전하다고 판단한 경우 질환에 관계없이 비대면진료가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건 심각하게 우려할 만한 사안이다. 시범사업을 추진하면서 내세웠던 환자 안전을 위한 방침 '재진환자 중심, 대면진료의 보조적 수단'이란 대원칙을 내팽개친 것과 다를 바 없다. 무엇보다 다른 질환을 대면진료했던 경험만으로 의사가 환자로부터 증상만 전해듣고 비대면진료를 해도 환자에게 해가 없을 것이란 점을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럴 경우 비대면진료가 대면진료의 보조적 수단이란 대원칙이 깨질 수 있다. 자칫 대면진료가 비대면진료를 위한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수단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불가피하게 비대면진료를 허용해야 하는 상황도 아닌데 이런 무리수를 두는 걸까. 복지부가 시범사업 보완방안을 발표하면서 제시한 이유에 답이 있다.  

'비대면진료는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로서, 이번 보완방안은 시범사업 시행 6개월을 맞아 국정과제 이행 차원에서 마련되었다.' <보건복지부 12월 1일자 '응급의료취약지-휴일·야간 비대면진료 예외적 허용 확대' 보도자료 중에서>  

두 번째로, 비대면진료 대상자와 함께 대상 지역도 확대할 계획이라고 한다. 보건복지부는 의료 기반시설(인프라)이 부족해 비대면진료가 필요한 국민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비대면진료 예외적 허용 대상인 의료취약지 범위에 응급의료 취약지역을 추가할 계획이다.

응급의료 취약지역이란 '지역응급의료센터로 30분 이내 도달이 불가능하거나, 권역응급의료센터로 1시간 이내 도달 불가능한 인구가 지역 내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30% 이상인 시·군·구를 가리킨다. 전국 98개 시·군·구가 여기에 포함된다. 전국 시군구 기준으로 40%에 달하는 지역에서 비대면진료 초진이 가능해지는 셈이다. 

- 전남 신안군 임자도가 비대면진료 받지 못하는 상황이라 앞이 캄캄함

- 임자도가 가장 큰섬이고 3천 명 정도 거주(의원급 1곳, 보건지소 1곳, 약국 1곳), 육지와 연결이 되어 있어서 수술 등이 필요할 때는 60km(1시간 정도 소요) 거리의 광주 또는 목포를 가서 진료를 받아야 함 <보건복지부 12월 1일자 '응급의료취약지-휴일·야간 비대면진료 예외적 허용 확대' 보도자료 중에서>    

응급의료 취약지란 말 그대로 수술 등 응급의료 서비스를 적절한 시간 안에 받기 어려운 곳이다. 응급의료 서비스가 시급한 환자에게 비대면진료로 무얼 할 수 있다는 말인지 모르겠다. 응급의료 취약지 국민에게 비대면진료를 예외적으로 허용해 어떤 혜택을 제공하겠다는 건지 알 수 없다. 

비대면진료를 예외적으로 허용할 수 있는 의료취약지 대상을 확대하는 것 이외에 다른 실효성을 기대하기 힘든 방안이다. 전국 어디서나 치료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고 응급수술 및 최종치료까지 받도록 지역완결형 응급의료체계를 구축하겠다는 게 비대면진료를 말하는 건가 싶은 생각마저 든다.

세 번째로, 휴일과 야간 시간에 비대면진료 예외적 허용을 확대하는 방안은 모순 그 자체다.

복지부는 휴일·야간 시간대에 비대면진료 예외적 허용 기준을 현행 18세 미만 소아에서 전체로 확대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렇게 하면 휴일·야간 시간에 누구나, 어떤 질환이든 비대면진료를 받고 처방까지 받을 수 있게 된다는 게 복지부 측 설명이다. 

황당한 건 비대면진료 후 처방된 의약품은 약국을 방문해 수령하는 원칙을 유지한다는 점이다. 평일 야간이나 휴일에도 문을 여는 약국이 있고, 전국 공공심야약국이 있으니 이를 이용하면 된다는 생각이다. 게다가 비대면진료를 예외적으로 허용하기로 한 응급의료취약지도 의약품 배송을 불가하고, 약국에서 수령하도록 할 방침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환자 편의성과 의료접근성을 높이기 위해서 비대면진료 시범사업을 실시하고, 이번에 대상을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왜 의약품은 약국에서 수령하는 원칙은 그대로 둔걸까.  

의료기관을 이용하기 힘든 취약지역이나 이용하기 힘든 시간대인 야간·휴일에 비대면진료를 받았는데, 처방된 의약품을 타기 위해선 약국까지 찾아가야 한다. 이건 의료이용의 국민 편의를 높이고자 비대면진료를 추진한다고 강조한 정책 방향과 배치된다. 

야간에 갑자기 복통이 생긴 '30대 고혈압 환자'. 복지부가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보완방안을 발표하면서 예로 든 이 환자는 다니던 곳이 아닌 다른 의료기관에서 초진으로 비대면진료를 받고 처방받은 후 야간에 문을 연 약국을 어떻게 찾아야 할까. 

게다가 야간에 갑자기 복통이 생겼다는 30대 고혈압 환자, 그것도 초진인 환자에게 의사가 비대면진료로 어떤 의학적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 '증상이 심하면 가까운 응급실로 가세요'라는 것 외에 달리 의학적 판단을 내리기란 힘들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이런 상황에서 비대면진료를 하는 건 환자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건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다. 복지부도 이런 문제를 의식했는지 '의사가 의학적 판단으로 비대면진료가 부적합한 환자를 진료하지 않아도 의료법상 진료거부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침에 명시했다'고 밝혔다. 

- 30대 고혈압 환자(초진 대상환자 아님)가 갑자기 야간에 복통이 있는 경우

   → (현행) ▲동일 의료기관이어도 동일 질환이 아니므로 불가,

              ▲다니던 의료기관이 문을 닫은 경우 타 의료기관은 초진 환자이므로 불가

   → (보완) 비대면진료 가능  

<보건복지부 12월 1일자 '응급의료취약지-휴일·야간 비대면진료 예외적 허용 확대' 보도자료 중에서>

복지부는 비대면진료 필요성을 언급할 때 '직장인이 낮시간에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있는 시간이 없다'거나 '자녀가 아플 때 부모가 낮시간에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방문하기 힘들다'는 상황을 자주 제시한다. 이번에도 휴일 야간시간 비대면진료 예외적 허용 확대 방안을 내놓으면서 '휴일‧야간 비대면진료 예외적 허용 확대 '직장인이라 병원에 갈 수 있는 시간이 매우 제한적'이란 민원이 많다고 강조했다. 

노동시간과 의료접근성 사이 관계를 들여다보자. '과로사회'로 불리는 한국의 긴 노동시간은 의료접근성 문제와 단단히 얽혀 있다. 실제로 국내에서  미충족 의료를 발생시키는 주요인으로 긴 노동시간을 지목하는 연구결과도 적지 않다.  

'아파도 낮시간에 병원을 가기 힘든 직장인'에게 필요한 건 비대면진료 확대가 아니다. 아프면 병원에 가서 진료받을 수 있도록 노동환경을 개선하고 '과로'를 유도하는 장시간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식으로 접근해야 할 문제다. 

긴 노동시간으로 인한 의료이용 제한과 미충족 의료를 비대면진료로 풀겠다는 건 '병 주고 약 주기' 식이다. 국민 건강과 복지 증진 등으로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게 주요 업무인 보건복지부에서 오히려 '과로사회'를 유지하는 명분을 앞세워 비대면진료 제도화에 팔을 걷고 나서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보건의료 영역에서는 비대면진료(원격진료)를 놓고 미래먹거리를 창출한 유망한 신산업인 것처럼 바라보고 '행복회로'를 가동한다. 진보정권이든 보수정권이든 막론하고 이 사안를 바라보는 인식이나 정책 방향은 다를 바 없었다. 코로나19 유행을 겪으면서 감염병 예방을 위해 한시적으로 허용한 비대면진료를 계속 유지하고 제도화하겠다는 건 '재난자본주의'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관련 기사: 창조경제의 상징 ‘원격의료’…박근혜, 얼마나 자주 언급했나 확인해봤다>

응급의료 취약지에 필요한 건 응급처치부터 최종치료까지 책임질 수 있는 의료기관을 세우고 의사‧간호사 인력을 확보하는 일이다. 직장인이 휴일 야간 시간대에 비대면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보다 직장에서도 낮시간에 아프면 언제든 병원을 다녀올 수 있도록 노동환경을 바꿔야 한다. 평일에도 병원에 다녀올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도록 장시간 노동체제에서 벗어나도록 해야 한다. 의료취약 시간대나 취약지에서도 의료접근성을 높일 수 있도록 공공의료 인프라를 지금보다 더 많이 확충해야 한다.  

지금처럼 억지 논리로 비대면진료 제도화를 밀어붙이면 '의료기기업체, IT업체, 통신사, 민간보험사들의 돈벌이를 위한 의료상업화 정책'이란 꼬리표가 계속 따라붙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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