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생 중 98% 의무복무 이행·70%는 의무기간 후에도 계속 근무...의료취약지 근무환경 개선 노력도 절실

[라포르시안] 폐교 조치된 서남대 의과대학의 정원을 활용해 전북 남원에 '국립공공의료대학(원)' 설립이 추진되고 있다.

농어촌 지역 등 취약지 의료기관에 근무하며 필수의료 영역을 담당할 의사 인력을 국가에서 책임지고 양성하겠다는 취지다.

앞서부터 정부와 정치원,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공공의료 부문의 안정적인 의료인력을 확충하려는 방안을 모색해 왔으나 의사인력 배출 확대를 우려하는 의료계의 반발과 적절한 공공의료 인력양성 모델을 찾지 못해 계속 미뤄져 왔다.

그러던 중 사학비리로 수년째 몸살을 앓던 서남대가 폐교 조치되면서 서남대 의대의 정원을 활용해 공공의료 인력을 양성하는 방안이 급물살을 타게 된 것이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의원이 '국립보건의료대학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안'을 지난 달 대표발의하면서 공공의대 설립 추진에 더욱 탄력이 붙고 있다.

이 법안은 국립공공의대 학생의 입학금, 수업료, 교재비, 기숙사비 등 학업에 필요한 경비를 학교가 정부의 지원을 받아 부담하는 대신 졸업생은 의사면허를 취득한 이후부터 10년(군복무 기간, 전문의 수련기간 제외)간 의무복무토록 했다.

10년의 의무복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의사면허를 취소하고, 10년 이내 재발급을 금지하도록 했다.

일각에서는 '10년의 의무복무' 기간을 두고 헌법에서 보장한 직업 선택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의사출신인 더불어민주당 윤일규 의원은 최근 국정감사 보도자료를 통해 "의무복무 기간을 10년으로 하는 것은 헌법 제15조의 직업선택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등 위헌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15일 대한의사협회 용산 임시회관에서 열린 ‘바람직한 공공의료 활성화를 위한 토론회’에서도 비슷한 의견이 제시됐다.

이날 토론회에서 의협 전선룡 법제이사는 “10년의 의무복무를 이행하지 않은 의사에게 의사 자격증을 장기간 박탈하도록 하는 건 의무복무 의사의 직업수행의 자유를 제한한다고 볼 수 있다”고 주장하며 “경찰대의 경우 의무복무기간은 6년으로 의무복무 의사보다 짧고, 의무복무 기간을 준수하지 않아도 학비 및 경비를 상환하는 것 말고 다른 불이익조항이 없다"며 형평성 문제도 제기했다.

국립공공의대의 벤치마킹 모델인 일본의 '자치의과대학'의 상황은 어떨까.  

우리보다 앞서 지역사회의 심각한 의사 부족 문제에 직면했던 일본은 지역의료를 담당할 수 있는 의사인력 양성을 위해 공중보건장학제도를 비롯해 의과대학 지역정원 제도 등 다양한 제도와 지원 대책을 모색했다.

1972년에는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도서벽지 지역의 의료인력 확충을 위해 자치의과대학을 설립했다. 자치의대는 전국의 지방자치단체가 공동으로 설립해 운영하는 의과대학으로, 학생의 선발을 각 지자체 별로 2~3명의 할당정원을 둬 매해 120여명 정도의 입학생을 뽑는다.

자치의대 학생으로 선발되면 입학금을 비롯한 수업료 등을 출신 지자체로부터 전액 장학금으로 지원받고, 필요할 경우 생활비 지원도 이뤄진다. 졸업 후에는 출신 지자체로 돌아가 지사의 지시에 따라 병원, 진료소 및 보건소에서 통상 9년을 의무복무 한다.

9년 동안의 의무복무 기간을 지키지 못할 경우 그동안 지원받은 학비와 이자를 일시불로 갚아야 한다. 의무복무 기간이 끝난 뒤에는 자유롭게 일자리를 정할 수 있다.

자치의대에서는 농어촌 등 취약지 지역에 근무할 예비 의료인력을 대상으로 지역 보건복지 실습 등의 특성화 교육을 하고 있다. 입학 후 2~3년차 학생은 졸업 후 근무 예정지역에서 실습을 진행하고, 이를 계기로 지역의료에 대한 이해를 높이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게끔 한다.

자치의대 졸업생의 의무복무 이행 비율은 상당히 높았고, 의무복무 기간이 지난 후에도 상당수가 해당 지역에서 계속 근무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간하는 <국제사회보장리뷰> 2018년 봄호에 수록된 '일본의 취약지 의료인력 확보 정책'이란 제목의 논문에 따르면 자치의대 졸업생 중 9년의 근무 기간을 모두 끝낸 학생의 누적 비율은 98%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1978~2016년 사이 자치의대 졸업생 수는 총 4,024명으로, 이 중 현직에 종사하는 의사 수는 3,766명으로 전체의 약 93.6%에 달했다.

자치의대 1기에서 30기 졸업생(2,958명) 중 98.5%(2,914명)가 졸업 후 의무 이행을 마친 것으로 집계됐으며, 특히 의무복무 이행을 마친 2,914명 중 해당 도도부현(都道府縣) 내 의료기관에 계속 근무하는 비율은 69.6%(1,947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자치의대에서는 농어촌 등 취약지 지역에 근무할 예비 의료인력을 대상으로 지역 보건복지 실습 등의 특성화 교육을 하고 있다. 입학 후 2~3년차 학생은 졸업 후 근무 예정지역에서 실습을 진행하고, 이를 계기로 지역의료에 대한 이해를 높이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게끔 한다.

연구진은 "자치의대 사례를 살펴보면 의무 이행 기간 종료 이후에도 약 69.6%가 출신 지역에서 근무하는 것으로 나타나 정책의 효과성을 기대해 볼 만하다"며 "그동안 우리나라는 농어촌 의료인력 확보를 위해 의료인력의 총량 증가에 따른 낙수효과를 기대했으나, 일본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 정책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고, 농어촌 지역에 근무하는 전담인력을 전문적으로 양성하는 방안 마련을 숙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한편 의료계는 공공의료를 담당할 의사인력을 양성하는 것보다 기존 의료인력이 취약지에서 활동할 수 있게끔 근무환경을 개선하고 의료자원을 적절하게 분배할 수 있는 제도개선 노력이 더 절실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의료소외지역 주민이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은 기존 기관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공공보건의료인력 양성 정책을 마련하고, 의료취약지의 근무환경 개선으로 수도권에 집중된 의료자원을 재배분하는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실제로 일본은 자치의대나 의과대학 지역정원제도 같은 별도의 의사인력 확충 방안과 함께 지역의 근무여건 등을 개선해 기존 의사인력이 취약지에서 근무하도록 유인하는 정책도 적극 추진하고 있다.

현재 일본의 도도부현(都道府縣)은 지역의료지원센터를 중심으로 다양한 취약지 의료인력 유인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방 정부는 구인구직 정보를 웹사이트에 제공해 지역 근무를 희망하는 의사에게 근무 형태, 의료기관 유형 등의 정보를 제공한다.

또 여성 의사가 출산 등으로 휴직 후 다시 근무에 복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적극 운영하고 있다. 히로시마현에서는 여성의 경력 단절을 막기 위해 근무시간 유연 제도를 실시하고, 복직 연수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의료기관에 대해서는 경비의 일부를 현에서 보조하기도 한다. 도치기현에서는 젊은 의사에게 해외 또는 현내에서 수련받는 동안 비용과 주거비 일부를 지급하는 제도도 운영하고 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라포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