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휴(더좋은 보건의료연대 집행위원)

[라포르시안] 몇 해 전 전기·전자 분야 기업 관계자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상당한 기술력을 보유한 기업이었지만 의료기기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가 높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인허가와 같은 규제 중요도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일부 신규 의료기기업체는 인허가 담당 부서 없이 사업을 시작하기도 하고, 기존 업체 역시 새로운 제품 출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자체 RA(Regulatory Affair) 인력만으로 인허가를 감당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심지어 다국적 기업도 기존 제품과 다른 의료기기 신제품의 경우 외부 컨설팅업체에 인허가 자문 또는 대행을 의뢰하는 일도 있다.

공학이나 생물학 등을 전공했다고 해서 의료기기 인허가의 세부 각론과 프로세스를 온전히 이해하기란 요원한 일이다. 더욱이 의료기기 인허가는 공산품이나 과학 이론에 따른 기준을 충족했더라도 해당 국가의 국민 안전을 책임지는 규제기관을 설득해야 하는 지난한 작업이 요구된다. 뿐만 아니라 의료기기에 관한 모든 안전 기준은 별도로 제정돼 있으며, 국제 조화를 통한 공통 기준 역시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특히 의료기기 인허가 업무 수행이 어려운 이유는 국제 기준이 있지만 나라마다 그 적용 범위가 다르게 설정돼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최신 국제 기준이 4판이라고 하지만 우리나라는 국내 의료기기업체의 규제 대응 수준과 시험 검사기관 능력에 따라 2판까지만 인정할 수 있어 성적서가 높다고 무조건 요건에 부합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처럼 복잡다단한 의료기기 인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풍부한 RA 경험과 전문성을 갖춘 인력과 함께 실제 현장에서 적용되는 각종 시험규격 등에 대한 높은 이해가 요구된다. 만약 의료기기 인허가를 외부에 의뢰한다면 어떠한 기준에서 대행업체를 선택해야 할까? 우선 선택 가능한 외부 기관은 법무법인, 컨설팅업체, 개인으로 나눌 수 있다. 

법무법인의 경우 인적 배치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각각의 법인에 따라 제약 또는 의료기기에 특화된 인적 구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법무법인에 의뢰하는 경우는 허가 난이도가 매우 높을 때 유리하다. 즉 국내 도입이 처음이거나 규제가 모호해 다기관의 해석이 필요한 경우 법무법인의 전문성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다만 고가의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지를 고려해야 한다. 대부분은 상한가를 정해 인허가 대행비용에 대한 안전장치를 두고 있지만 일반 회사에 비해 상당히 고가인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음으로 의뢰하고자 하는 제품이 전주기적 관리, 즉 인허가에서 사후관리까지 필요하다면 수입업이 있는 컨설팅업체를 선택해야 한다. 당연히 모든 관리에는 인력이 소요되기 때문에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업체를 선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마지막으로 특정 품목에 따른 인허가를 위탁해야 하는 경우라면 해당 품목에 경험이 있는 컨설팅업체를 선택하는 것이 유리하다. 작은 회사의 장점은 내 제품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고 비교적 소통이 자유롭다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도 큰 장점이다. 

갈수록 의료기기 규제가 강화된다고 해서 모든 의료기기업체가 RA 인력과 전담 부서를 두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더욱이 국제 조화로 인해 품목마다 적용되는 많은 입증자료를 파악하기란 불가능한 시대가 됐다. 

의료기기 인허가 대행업체는 어림잡아 100여 개가 넘는다. 의료기기업체 스스로 회사 규모와 상황을 고려하고 정확한 소요 비용을 파악해 신속하고 정확히 인허가 대행 업무를 수행해 줄 최적의 외주업체를 선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외주업체 선정에 있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해당 제품에 대한 인허가 대행 업무 경험이 있는가를 우선  살펴보고, 설령 없더라도 담당자의 업계 경력과 인적 네트워크를 꼼꼼히 살펴보는 것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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