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수(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보험위원회 부위원장)

[라포르시안] 글로벌 의료기기 산업은 역설적으로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재도약의 기회를 맞았다. 하지만 엔데믹을 맞아 산업 활성화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커졌지만 글로벌 공급망 붕괴와 더딘 회복에 따른 제조 원가·공급 비용 증가와 유럽 의료기기 규정(Medical Device Regulation·MDR)에 부합하는 제품 포트폴리오 조정 등 이슈로 인해 의료기기 공급 문제가 해결해야 할 난제로 남아 있다.

더욱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의료기기 산업에 커다란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다행히 우리나라 정부는 의료기기를 비롯한 바이오헬스 산업의 높은 성장 전망과 가능성을 인식하고 연구개발 및 해외시장 진출에 적극 지원하고 있다.

무엇보다 의료기기 산업은 중소기업이 혁신을 주도하는 산업적 특성을 갖는다. 혁신의 주체는 기업이며, 특히 강력한 ‘기업가정신’은 산업 성장의 토대가 되고 있다. 경제학자이자 경영컨설턴트인 故 피터 드러커(Peter Ferdinand Drucker)는 생전에 기업가정신 1등 국가로 한국을 꼽았다. 우리나라는 매년 11월 셋째 주를 ‘기업가정신 주간’으로 지정해 그 중요성을 전파하고 있다.

물론 현시점에서 우리나라의 기업가정신 수준이 1960~70년대 고도성장기의 그것과는 다르겠지만 국내 의료기기 산업에서의 기업가정신 DNA는 면면히 계승되고 있다. 과거 30년간 국내 의료기기 산업 발자취를 되짚어 보면 수입 일변도에서 제조 산업으로의 도약에 이어 앞선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의 핵심 국가로 떠오르는 등 기업가정신 발현을 통한 혁신 기업들의 약진을 볼 수 있다. 

지난해 12월 우리는 글로벌 의료기기 산업의 전설적인 기업가를 잃었다. 96세 나이로 영면한 故 레온 허쉬(Leon Hirsch)는 1963년 전 세계 최초의 자동화된 최소 침습적 수술용 스테이플러를 개발한 ‘유에스 서지컬 코퍼레이션’(United States Surgical Corporation·USSC)을 설립하고 혁신적인 기술을 선보였다. 허쉬는 최소 침습적 수술용 스테이플러 기술의 아버지로서 의료기기 산업에 대한 헌신과 영향력으로 큰 존경을 받았다.

그의 리더십 아래 USSC는 외과술에 혁명적인 수술용 스테이플러 및 복강경 기구 최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USSC는 1998년 타이코 인터내셔널(이후 코비디엔)에 33억 달러에 인수된 후 메드트로닉(Medtronic)이 429억 달러에 코비디엔을 인수해 현재 모습에 이르고 있다. 

허쉬의 혁신적인 기업가정신은 전 세계 많은 환자에게 엄청난 임상적 혜택을 안겨 주었다. 필자는 그의 부고 소식을 전하는 신문 기사와 함께 허쉬가 영면하기 몇 해 전 촬영했던 인터뷰 동영상(www.youtube.com/watch?v=hfJIg1FPJN8)을 우연히 보게 됐다. 약 18분 분량의 해당 동영상은 대다수 사람이 터무니없고 미친 아이디어라고 생각한 혁신적 의료기술인 스테이플러 개발 과정, 기업을 일으키고 성장시킨 여정, 인재 및 기업가정신 육성 방법은 무엇인지 등을 진솔하게 담고 있다.

그가 보여준 비전과 의료계에서의 영향력 있는 역할, 혁신과 교육에 대한 열정,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대우하고 존중하는 인생철학은 우리에게 많은 울림을 주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USSC에서 경력을 시작해 의료기기 산업계에서 성장한 많은 USSC 동문과 그의 후배들이 전 세계 의료기기 산업을 이끌고 있음을 볼 때 한 사람의 기업가정신이 끼치는 거대하고 담대한 영향력을 새삼 느끼게 된다.

혁신을 이끄는 기업가정신은 어느 시대에서나 요구된다. 특히 위기 상황에서는 기업가정신의 가치가 더욱 절실히 필요하다. 우리나라 의료기기 산업계에서도 기업가정신이 충만한 다수의 기업인이 있다. 이들이 국제적인 무대에서 더 크게 활약할 수 있는 환경과 지원이 필요한 때이다. 우리나라 의료기기 기업가정신을 전 세계인과 공유하는 그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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