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주(인사이트9코리아 대표)

[라포르시안] 식품의약품안전처와 관련 업계 간 오랜 논의 과정을 거쳐 의료기기 허가심사 수수료가 대폭 인상됐다. 오는 2월 1일부터 적용되는 수수료는 2등급 의료기기 최초 심사의 경우 기존 140만 원에서 246만 4000원으로, 변경 허가는 110만 원에서 193만 6000원으로 각각 인상됐다. 또 한 벌이나 조합의 경우 170만 원에서 299만 2000원으로 수수료 인상을 앞두고 있다. 

허가심사 수수료 인상은 오래전부터 꾸준한 논의가 이뤄졌다. 이때마다 의료기기 업계는 적정한 수준을 유지하는 대신 인허가 예측 가능성을 높여줄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요구했다. 오랜 시간 낮은 수수료를 유지하다 보니 식약처에서 직접 심사하는 3등급이나 4등급뿐 아니라 기관에서 처리하는 1등급 신고·2등급 인증도 비용 대비 손실이 발생해 투자나 전문가 충원을 할 수 없어 인허가 적체 원인이 됐기 때문이다.

업계는 적정한 수수료를 받되 충분한 심사 인원 확충으로 전문성과 규정에 따른 허가심사 검토 기한 준수를 요구했으며, 이번 수수료 인상에도 이러한 점이 반영된 것으로 보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 의료기기 허가심사 수수료는 미국이나 유럽·중국과 비교해 상당히 저렴하다.

미국은 FDA 510(k) 기본 수수료가 2만 1760달러로 고비용이 소요된다. 또한 제품 분류 기준조차 마련되지 않은 신개념 헬스케어 기술이 일정 수준 이상 안전성을 증명하면 주어지는 패스트트랙 허가 제도인 ‘드 노보’(De Novo)는 심사 수수료가 무려 14만 5068달러에 달하고, 수익자 부담 원칙으로 운영되고 있다. 유럽 역시 의료기기 제조사가 지불하는 심사 기본료는 2만 달러가 넘고, 매번 심사마다 추가 비용도 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은 의료기기 허가심사 수수료에 대한 차등 정책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즉 국내 제조사나 혁신 의료기기 등 제품에 대한 수수료와 시험검사 비용의 차별화·차등화를 통한 업체 부담을 경감시켜 줄 방안을 도입해야 한다. 실제로 얼마 전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차기 회장 후보는 미국처럼 소규모업체나 De Novo 혹은 혁신 의료기기에 대한 수수료 차등제로 비용 경감을 통한 인허가 진입 장벽을 낮추는 정책을 협회장 공약과제로 제시했다.

특히 심사 수수료와 함께 의료기기 업체에 더 큰 부담이 되는 시험검사 비용을 차등화하는 것도 국내 의료기기산업 육성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미국 사례를 살펴보면 FDA 내 의료기기 전담 부서 ‘Center for Devices and Radiological Health’(CDRH)에서 인정한 소규모 회사의 경우 산업 진흥 차원의 수수료 경감 규정을 통해 510(k) 5440달러·De Novo 3만 6267달러로 정상 가격의 25% 이하로 수수료를 산정해 비용부담을 줄여 줌으로써 의료기기 시장 진입과 산업 활성화를 지원하고 있다. 

식약처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의료기기 업체는 2022년 기준 ▲제조업체 4176곳 ▲수출업체 1102곳 ▲수입업체 3011곳으로 약 8천 곳이 활동하고 있다. 더불어 체외진단의료기기는 ▲제조업체 442곳 ▲수출업체 130곳 ▲수입업체 355곳으로 1000곳이 채 되지 않는다. 국내 의료기기산업 규모가 커지기 위해서는 더 많은 회사가 시장에 진입해야 한다. 이때 선행돼야 할 것은 초기 시장 진입 장벽을 낮추는 것인데, 허가심사 수수료·시험검사 비용을 차등화하는 것이 좋은 지원 정책이 될 것이다. 

의료기기는 다품종·소량 판매라는 특징이 있다. 같은 품목군이라 하더라고 환자에 따라 적합한 제품이 매우 다양하게 적용될 수 있다. 결국 시장에서 제품 다양성이 떨어진다는 것은 환자 입장에서 선택권을 제한받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국내 산업 육성과 다양한 제품에 대한 환자 선택권 강화 측면에서 의료기기 시장은 비록 그 규모가 작더라도 다양한 제품이 진입·유통될 수 있는 환경 조성과 제도 개선이 요구된다.

우리나라가 전 세계 의료기기 7위 강국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업체별 제품별 허가심사 수수료·시험검사 비용의 차별화·차등화로 비용 및 행정부담을 덜어주는 맞춤형 규제 전환을 통해 제조사를 비롯한 혁신 의료기기 기업·스타트업이 양적 질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라포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