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희(엔젤로보틱스 이사)

[라포르시안] 개인마다 새로운 한 해를 맞아 작년보다 나은 올해를 위해 목표를 정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하게 된다. 의료기기 제품 개발도 마찬가지다. 의료기기업체는 이전 제품의 좋은 점과 부족한 점을 확인하고 더 나은 의료기기를 만들기 위해 목표를 설정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해 제품을 개발하게 된다.

하지만 일부 의료기기업체는 철저한 제품 기획·계획 단계를 거치지 않고 무작정 개발부터 시작하는 일이 적지 않다. 필자 또한 연구소에서 제품 개발을 할 때 “계획서 쓸 시간에 제품 개발부터 빨리 시작하라”는 지시를 수도 없이 들었던 기억이 있다.

시간을 더 거슬러 대학교 시절 한 교수님께서 “외국은 한국과 비교해 더 많은 시간을 제품 계획 수립에 할애하지만 최종 제품 개발 속도는 오히려 빠르다”고 말한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직접 개발 업무를 수행하고 개발한 제품을 시장에 출시해 의료기기의 상업적 성공과 실패를 경험하면서 계획 수립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물론 좋은 계획이 반드시 제품의 성공을 보장하진 않지만 적어도 좋은 제품은 철저한 계획에서부터 도출된다는 점을 깨닫게 됐다. 가령 새롭게 개발하는 제품이 병원에서 사용하는 의료기기인지, 아니면 가정에서도 사용 가능한 의료기기인지 명확히 구분하지 않은 채 제품 기능만을 정의하고 개발했다면 인허가를 위한 테스트 과정에서 기준 규격을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병원용 의료기기는 IEC 60601-1의 안전 기준만 만족하면 되지만 가정용 의료기기의 경우 IEC 60601-1-11 기준 규격까지 충족해야 하는데 이를 계획 단계에서 확인하지 못했다면 제품 개발 이후 해당 규격에 맞게 제품을 다시 개발해야 하는 불상사가 생길 수 있다.     

또 다른 예로 A라는 기능을 이용해 B라는 병증에 사용하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제품을 개발했지만 정작 목표한 기능과 병증에 맞는 품목이 없거나, 품목이 있어도 보험 수가 적용을 받을 수 없어 실제 의료 현장에서 제품이 사용될 때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도 한다. 물론 이는 극단적인 사례일 수 있지만 사전에 개발하고자 하는 제품에 대해 필요한 정보를 확인하고 명확하게 정의하지 못한다면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제품 계획 또는 기획 단계에서 해당 부분을 명확히 정의해야 의료기기 개발의 효율성이 올라가고 상업적인 성공 가능성 또한 높아진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제품 개발에 앞서 먼저 개발하고자 하는 제품의 사용 목적과 용도는 무엇인지, 어떠한 병증에 사용되는지를 명확히 정의하고 그에 해당하는 품목·등급은 무엇인지 반드시 확인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의료기기는 품목에 따라 만족해야 하는 성능·안전 기준이 있기 때문에 계획 단계에서 관련 규격을 정의해야 한다. 해당 규격은 제품 인증 때 꼭 만족해야 하는 필수 성능인 만큼 의료기기 개발의 방향성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제품 계획 단계에서 품목과 기준·성능 기준만 정확히 정의한다면 의료기기 개발 과정에서의 시행착오를 최소화할 수 있다. 더불어 개발하고자 하는 제품의 보험 및 수가 적용 여부까지 확인한다면 상업적인 성공 가능성을 더 높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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