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승재(벤처기업협회 부회장 겸 디지털헬스케어정책위원장) 

[라포르시안] “대한민국 의료산업과 디지털 헬스케어를 전 세계 최고의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 

지난 2월 1일 윤석열 대통령이 전반적인 의료 개혁을 통한 지역 간 격차 없는 필수의료 서비스 완성을 천명하며 강조한 발언이다. 이는 고령인구 급증에 따른 보건산업 수요 증가를 대비하고자 건강보험 적립금을 활용한 10조 원 이상 예산을 투입해 의료 시스템을 개선하겠다는 계획이다.

그간 인구구조 변화로 의료 시스템 개선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온 만큼 이러한 실행 계획 발표가 의미 있는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인력과 자원을 늘리기 위한 방안이 담겨있는 반면 한정적인 의료 자원을 효율화하는 데 필수적인 ‘디지털 헬스케어’의 육성 계획을 뒷받침하는 구체적인 실행 방안이 부재하다는 점이다. 

앞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시작된 비대면 진료 서비스는 많은 환자와 의료진의 실사용을 통해 유효성이 입증돼 본격적인 제도화가 진행 중이다. 특히 국내에서의 비대면 진료 서비스 경험을 토대로 해외 수출 사례까지 나오고 있어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도 입증되고 있다. 또한 디지털 치료기기(DTx) 역시 어느덧 의료현장에서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지난달 세브란스병원이 국내 최초로 불면증 환자 표준치료법인 불면증 인지행동치료(CBT-1)를 제공하는 디지털 치료기기를 환자에게 처방했다. 우리나라도 미국·일본·독일처럼 디지털 치료기기를 임상에 적용한 국가 대열에 들어선 것이다.

이와 함께 의료영상 진단 보조부터 전립선암과 같은 특정 암 발병 예측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료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 의료기기도 의료현장에 도입돼 상용화되고 있다. 의료 AI는 질환 진단 보조·예측뿐 아니라 ▲치료 과정 개선 ▲신약 개발 시간 단축 ▲개인 맞춤형 치료 제공 등 활용도가 무궁무진한 만큼 의료 혁신을 견인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국가 차원의 의료 개혁 청사진이 그려진 지금 그에 부합하는 디지털 치료기기·의료 AI 소프트웨어 의료기기 등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이 의료현장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있다. 

우선 보험급여 문제다. 우리나라는 디지털 치료기기 업체가 건강보험 비급여 또는 환자가 비용의 90%를 부담하는 선택급여 중에서 선택하도록 하고 있다. 수가의 경우 CT·MRI 판독 등 기준이 되는 기존 수가가 명확한 경우로만 한정돼 판독료의 10% 수준으로 책정됐다. 하지만 이는 여러 임상 지표를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의료 AI에는 접목할 수 없기 때문에 현재 개발 및 임상이 진행 중인 의료 AI에 부합하는 추가적인 수가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또한 디지털 헬스케어 제품 개발에는 많은 비용이 소요된다. 아직 시장이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수가 적용이 안 되거나 너무 낮게 책정된다면 업계로서는 기술 개발에 계속 투자하기가 요원할 수밖에 없다. 나아가 충분한 기술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 진입 자체를 망설이게 하는 결과도 초래할 수도 있다. 

더욱이 너무 낮은 수가 책정은 경쟁력 있는 제품의 수출에 있어서도 장애 요인이 된다. 일반적으로 수출 대상국에서는 원산국의 수가를 참고하기 때문에 낮은 수가가 지속된다면 많은 국내 제약회사의 신약 개발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처럼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 역시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우선적으로 허가·급여 등재 절차를 진행하는 양상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은 환자 치료에 도움이 되는 것을 넘어 의료 시스템을 개선하고 의료 자원을 효율화하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국민의 의료적 편익을 증대하고 초고령화로 인해 건전성에 빨간불이 들어온 건강보험 재정 문제 해소를 위해서는 장기적 관점에서 설계된 체계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한편, 지난 4일 보건복지부 ‘제2차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에 따르면 향후 정부는 지불제도 개혁을 위한 모형 개발·시범사업 등을 지원하기 위해 총 요양급여 비용의 2%인 약 2조 원 규모의 혁신 계정을 도입하고 심사·평가 역시 성과 중심의 통합적 체계로 전환할 예정이다. 

특히 기술 검증형 혁신 계정은 디지털 치료기기·AI 의료기기 등 혁신 기술의 신속한 현장 적용, 의료기술의 건강 성과 및 비용 효과성에 대한 성과평가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다. 후속 조치로 의료 AI를 활용한 진단 보조 등 의료의 질 제고 여부가 의료기관 평가 지표로 반영되는 등 강제적 장치가 마련된다면 그 효과를 보다 확실히 할 수 있다.

높은 성장 가능성과 사업성에 국민적인 관심이 높아진 가운데 디지털 치료기기와 의료 AI 분야에서의 기술 개발은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향후 몇 년 내 세계 의료 시장에서는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수많은 서비스가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가 주도의 의료 개혁 종합계획이 발표된 만큼 국내 의료서비스 수준을 높이는 것은 물론 글로벌 의료 시장 진출의 강력한 추진 동력이 될 수 있는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 발전을 견인하는 시의적절한 제도적 지원책 마련과 중장기적 관점에서의 집중적인 투자가 이뤄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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