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영수(의료기기산업혁신연구회 산업이사)

[라포르시안]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매년 중점사업을 발표한다. 최근 발표된 올해 중점사업은 전반적으로 국제 조화에 기반한 의료기기 수출 환경을 개선하고 국내 제조업 지원을 통한 기술력 강화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판단된다.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우선 신규 품목으로 ‘디지털 의료기기’가 의료기기 분야로 진입했다. 관련법과 함께 식약처 조직·예산이 독립적으로 꾸려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상당한 시일이 걸리겠지만 우리나라가 경쟁력이 있는 제품군이기 때문에 더 많은 투자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된다.

이러한 디지털 의료기기가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인허가를 통해 새로운 규제 기준을 설정하고 국제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안전성을 확보하는 것이 요구된다. 다행히 식약처는 국제의료기기규제당국자포럼(IMDRF)과 긴밀히 협력하고 있지만 더 큰 지원을 통해 한국이 관련 기술과 국제기준을 선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규제과학 전문 인력에 대한 체계적인 양성도 올해 중점사업 중 하나다. 규제란 과학이다. 이미 여러 곳의 의료기기특성화대학원이 존재하지만 현장에서 일할 수 있는 지식을 가진 전문 인력과 함께 지속적인 교육이 이어지는 체계적이로 긴밀한 ‘연속성’이 요구된다. 

식약처는 이를 위해 규제과학센터를 설립해 인력 교육과 양성 업무를 일임하고 있다. 앞으로 규제과학센터를 양질의 인력 양성을 위한 전문기관으로 발전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규제과학센터가 심사자와 산업계 규제전문가 간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는 교두보가 되고, 인력 양성의 중장기 정책 수립의 역할 변화도 이뤄져야 할 것이다.

식약처는 또한 안정적인 필수 의료제품을 위한 사용 환경을 지원하고, 필수의료기기에 대한 국산화 지원 및 인허가 지원 체계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의료기기 수입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전 세계 자국 보호주의에 따라 해외로부터의 제품 수급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필수 의료제품을 대체할 수 없다면 국민 생명을 지킬 수 없다는 점을 경험으로 깨달은 것이다. 이에 필수의료기기를 지정하고 이를 대체하기 위한 국가적 지원이 시작됐다.

중요한 것은 인허가를 통해서만이 아니라 관련 부처의 제품화 지원이 뒤따라야 하고, 제품의 공급 지속성을 위한 시장도 만들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단지 제품 품목이 아닌 질도 함께 확보해야 한다. 자칫 성과 위주로 접근해 제품은 개발했지만 밑바탕에 충분한 기술력이 없다면 시장에서 도태되거나 사장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식약처는 국내 의료기기산업 활성화와 국제경쟁력 향상을 위한 방안 중 하나로 의료기기 단일심사프로그램(MDSAP) 추진을 올해 중점사업으로 정했다. 무엇보다 의료기기 GMP(제조품질관리기준)를 대체할 수 있는 MDSAP이 제대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인증 업체에 대한 과감한 인정이 필요하다. 

MDSAP를 적용하며 제조업과의 형평성이나 우리나라 인증 수준 등 여러 제반 조건을 반영한다면 외국 제조사에 이득이 없는 한국 인증은 권위가 떨어질 뿐 아니라 국내 의료기기 제조사의 기술 수준 또한 높아지기 어렵다. 특히 공인기관에서 인증을 받았다면 인증서만으로 우리나라 GMP를 갈음할 수 있어야 한다. 이에 대한 활용도가 어느 정도 이상이 아니고는 결국 한국의 공장인증조차 믿지 못하는 현상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식약처는 규제당국자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국가별 인증에 대한 공통 기준규격을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이는 규제 수출을 통한 국제적인 역량 강화 측면에서의 ‘선투자’로 이해할 수 있다. 의료기기산업계 입장에서는 환영할 만한 사업이다. 식약처가 올해 중점사업을 정확한 목표와 정책을 통해 지속적으로 추진한다면 한국 의료기기 시장의 전 세계 7위권 진입은 결코 불가능한 목표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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