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주최로 관련 토론회 열려..."최선의 진료 위해서 의사 진료거부권 필요"
"누구 관점서 최선의 진료인지 먼저 따져봐야" 지적도

[라포르시안] "의료법 15조는 진료거부를 못 하도록 하고 만약 진료를 거부하면 과도한 형벌을 부과한다. 그게 과연 타당한지 논의할 필요가 있다." (이준석 법무법인 지우 변호사)

"수가가 원가의 65%여서 진료를 할수록 손해를 봐야 하는데도 거부할 수 없다. 지금과 같은 당연지정제 아래서는 형사면책권을 줘야 한다." (이혁 대한개원의협의회 보험이사)

지난 6일 오후 용산전자랜드 랜드홀에서 대한의사협회 주최로 열린 '최선의 진료를 위한 진료제도 개선방안 마련 토론회'에서 나온 발언이다.

이날 토론회는 오진 의사 법정구속, 응급실 폭행 사건 등을 계기로 의사들이 정당하게 진료를 거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는 취지로 의협이 기획했다.  

최대집 회장은 방상혁 상근부회장이 대독한 개회사를 통해 "다양한 진료유형과 함께 예상치 못한 돌발상황이 빈번히 발생하는 의료현장에서 우리 의사들도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누려야 한다"면서 "의사가 합리적인 사유로 최선의 진료를 위해 진료를 선택해야 할 상황이 존재함에도 포괄적 금지 법규로 옴짝달싹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주장했다. 

토론에서 김소윤 의료법윤리학연구원장은 "진료거부 문제는 의료법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건강보험 당연지정제와 당연가입제가 풀려야 해결될 문제"라고 말했다. 

지금 상황에서 진료거부를 거론하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했다. 

김 원장은 "지금은 의사들이 단체행동을 위해 진료거부 문제를 거론하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부를 수 있기 때문에 진료거부가 당장 시급하게 논의해야 할 상황인지 검토해야 한다"면서 "국민과 환자의 신뢰가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이슈를 먼저 다루는 것이 좋은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준석 법무법인 지우 변호사는 "변호사는 '진상 의뢰인'이 오면 수임을 거부할 수 있지만, 의사는 진료를 거부할 수 없다"면서 "의료법 15조에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거부할 수 없다'고 규정했기 때문이다. 진료를 거부했다고 과도한 형벌을 가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의료법 

제15조(진료거부 금지 등) ①의료인 또는 의료기관 개설자는 진료나 조산 요청을 받으면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지 못한다. 

②의료인은 응급환자에게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최선의 처치를 하여야 한다.

현행 의료법 제15조는 의사가 진료를 거부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를 적시하지 않았다. 

이 변호사는 "'정당한 사유'에 대해 의사들 스스로 보건복지부에 유권해석을 의뢰하고 그에 따르기도 하는데, 법정의 판단은 달라질 수 있다"며 "의사는 정당한 진료거부 상황을 판단할 수 없다. 의료법에 정당한 사유를 규정하기가 곤란하다면 하위법인 시행령에라도 정당한 사유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금 우리나라는 의사와 의료기관 접근성이 높기 때문에 진료를 거부해도 다른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다. 다만 진료거부가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해 생명이나 신체에 대한 피해를 본다면 그에 따른 책임을 추궁하면 된다"며 "국민건강보험법에 진료거부 규정을 두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과 의료사고 피해자·유족은 지난 11월 7일 오전 10시부터 의협 임시회관이 있는 용산 삼구빌딩 앞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진료거부권 도입과 과실 의료사고 형사처벌 면제 특례를 요구하는 의사협회를 비난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과 의료사고 피해자·유족은 지난 11월 7일 오전 10시부터 의협 임시회관이 있는 용산 삼구빌딩 앞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진료거부권 도입과 과실 의료사고 형사처벌 면제 특례를 요구하는 의사협회를 비난했다.

엄명숙 소비자시민모임 서울지부 대표는 최선의 진료와 진료 거부를 의사가 아닌 국민과 환자의 처지에서 생각해달라고 주문했다.  <관련 기사: 환자단체 "의협 비상식적 행동에 분노"...의협 "환자단체 정체성 의문">

엄 대표는 "최선의 진료와 진료거부를 의사의 관점에서만 보면 안 된다. 국민과 환자 입장에서도 생각해야 한다"면서 "내 마음대로 환자를 고르고 하는 것이 의사들의 처지에서 최선일 수 있지만, 국민들이 보기에는 아니다. 누구의 관점에서 최선의 진료를 얘기할 것인지 설정해놓고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이혁 대한개원의협의회 보험이사는 "지금과 같은 요양기관 당연지정제 아래서는 의사에게 형사책임 면책권을 줘야 한다"며 "위험한 상황에서 진료를 해야 하고 원가 이하의 수가에서 손해를 감수하며 진료를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경원 대한응급의학회 섭외이사는 최소한 응급의료 현장만이라도 진료를 거부할 수 있는 구체적인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이사는 "응급의료법에 따르면 응급환자를 정당한 이유 없이 거부하거나 기피하지 못한다. 3년 이하 징역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이라는 중형을 받게 된다"면서 "문제는 '응급환자'를 너무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진료거부 금지 조항을 악용하는 환자들도 있다.

이 이사는 "폭언, 폭행, 성희롱, 성추행에도 불구하고 진료를 해야 한다. 특히 막무가내로 마약성 진통제를 놔달라고 요구하는 환자들이 문제"라며 "이런 환자들은 병원 사정에 밝다. 적당히 소리를 지르고 적당히 의료진을 위협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다"고 실태를 꼬집었다. 

이 이사는 "지난 5일 새벽 남원의료원 응급실에서 환자가 의료진에게 칼을 휘두른 사건이 있었다"며 "제발 진료거부 상황을 명확하게 규정해달라. 칼에 찔려 죽어야 폭력이 되느냐. 족쇄를 풀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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