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방의학회·역학회, 보건의료 협력 방향 모색..."안정적 교류 통로 확보가 최우선 과제"

[라포르시안]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이 잇따라 성사되면서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정착과 통일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를 계기로 보건의료 분야에서도 활발한 남북 교류협력이 이뤄질 것이란 기대감이 높다.

다만 현재로서는 보건의료 분야에서 남북 교류협력을 확대하는 데 걸림돌이 많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10년간 남북의 교류협력 통로가 거의 단절됐기 때문이다.

앞서 노무현 정부 때인 지난 2007년 10월 열린 2차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당국간 보건의료협력사업을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이를 계기로 같은 해 11월 남북총리회담을 개최하고 남북간 보건의료분야 협력을 위한 보다 구체적인 합의안을 마련했다.

당시 남과 북은 '병원, 의료기구, 제약공장 현대화 및 건설, 원료지원, 전염병 통제와 한의학 발전 등 보건의료협력을 위한 실태조사'를 실시키로 합의했고, '남북보건의료․환경보호협력분과위원회'를 구성해 운영키로 했다.

그러나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보건의료 분야의 교류협력 논의가 더는 이어지지 못했다. 지난 박근혜 정부 때도 이런 기조가 계속 유지됐다.  

지난 5월 남북 정상회담을 기점으로 보건의료의 교류와 협력을 위해서는 우선 양 측이 그에 따른 원칙과 기준을 세우고, 의사결정 권한이 있는 기구를 통한 보건의료 분야 교류협력 통로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지난 22일 대한예방의학회와 한국역학회 공동 주최로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남북 보건의료 협력과 발전 방향' 심포지엄에서도 이 같은 주장이 제기됐다.

이날 심포지엄에서 신영전 한양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평화의 시대 남북 보건의료협력 구상'이란 발제를 통해 남북 보건의료 협력을 위해서는 안정적인 교류협력 라인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신영전 교수는 "남북 교류 과정에서 양 측 모두가 원하는 내용의 교류협력 의제를 도출하고 교류 과정에서 생기는 다양한 문제를 신속히 해결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커뮤니케이션 통로를 확보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며 "가장 바람직한 모형은 남북 정부간, 남북 민간 간, 남북-국제사회 간 공식적인 대화통로를 확보하는 동시에 정부-민간-국제사회를 가로지르는 대화 협의체를 동시에 구축하는 것"이라고 제안했다.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보건의료부문 고위급 회담 개최라고 강조했다.

신 교수는 "현재 남북한 고위급 회담이 진행 중인데 아직까지 보건의료부문 고위급 회담에 관한 소식은 없다"며 "하루 속히 고위급 회담에 보건의료부문 의제도 포함시켜야 한다"고 했다.

남북 간 고위급 회담에 포함해야 할 보건의료부문 의제로는 ▲남북한 공동감염병 관리사업(결핵, 말라리아, 구제역 등 포함) ▲기존 추진 중 중단된 보건의료부문 협력사업 재개 문제 ▲남북 교류활성화에 따른 보건협정 체결 문제 ▲기타 시급히 필요한 보건의료 교류협력 문제 등을 꼽았다.

특히 세계보건기구(WHO), 유니세프, 남한 민간단체가 지원하던 모자보건사업, 최근 글로벌펀드가 중단한 결핵과 말라리아 사업에 대한 대응, 중단된 MR 집단예방접종사업의 재개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남북 간 보건의료 교류협력 원칙을 수립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 중 하나다.

신 교수는 "남북한 보건의료 교류협력이 실질적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바람직한 교류협력 원칙 하에서 교류가 이뤄져야 한다"며 "국제개발협력에서 사용하는 '파리선언'을 참고해 남북관계 발전에 따라 상호 신뢰와 책임성을 강화하는 새로운 교류협력을 원칙을 만들고 교류협력을 기획·시행·평가해 나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남북 간 보건의료협정 체결 논의도 필요하다. 그동안 남과 북은 보건의료협정 체결을 위해 '제 1차 남북총리회담 합의서', '남북경제협력공동위원회 1차 회의합의서', '남북 보건의료, 환경보호협력분과위원회 1차 회의 합의서' 등의 협의 과정을 진행한 바 있다.

신 교수는 "보건의료협정서에는 남북 간 보건의료정보 교환방식, 공동방역협조체계 구축 방향, 상호 왕래자에 대한 의료편의 제공 방식, 남북 보건의료 전문가 간 교류와 협력 방안, 재난이나 응급의료 수요 발생시 공동 협력 방안, 보건의료 관련 국제기구에서의 공동보조 및 협력에 관한 내용 등이 포함돼야 한다"며 "이러한 내용을 반영할 수 있도록 시급히 '남북교류에 관한 법률'의 대폭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표 출처: '무엇을 할 것인가: 평화의 시대 남북 보건의료협력 구상'(신영전 한양대의대 교수 발제문 중에서)
표 출처: '무엇을 할 것인가: 평화의 시대 남북 보건의료협력 구상'(신영전 한양대의대 교수 발제문 중에서)

남북 간 보건의료 교류협력을 추진할 때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도 중요하다.

북한의 경제 및 의료인프라, 질병현황 등을 고려할 때 ▲식량 및 에너지 부문 협력 ▲결핵과 말라리아 등 감염성 질환 부문 협력 ▲의료서비스 전달체계 구축 지원 ▲모자보건사업 ▲응급, 재난상황 대처 체계 구축 등을 보건의료 교류협력 우선순위에 올렸다.

신 교수는 "현재 북한의 보건의료부문에서 가장 심각하고 기본적인 문제는 식량과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도록 하는 것"이라며 "이는 주요 질환과 사망률의 주요원인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가 없이는 어떤 교류협력도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다, 다만 이 두 가지는 북한의 경제제재의 핵심 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최근 글로벌펀드는 2010년 이후 북한 전역에서 시행하던 결핵, 말라리아 사업에 대한 지원을 올해 6월말로 중단한다고 밝힌 상태다. 실제로 중단이 된다면 결핵으로 인한 사망률의 급격한 증가와 내성환자의 발생 등 재난적 상황을 야기할 수 있다"며 "감염성 질환 대응을 위한 남북 협의체 구성과 개성 지역에 결핵병원, 요양시설 및 검사실, 연구 훈련시설 설치 운영, 말라리아 합동 방제 시행 등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남북 교류가 경제적 측면에만 초점을 맞춰 진행될 경우 많은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고 또다시 남북관계를 경색시키는 원인으로 작동할 수 있다. 이를 고려하면 경제적 교류와 함께 보건의료 협력 강화를 통한 사회안전망 구축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신 교수는 "보건의료부문은 가장 안정적인 남북간 통로이고 공동의 이익을 위해 서로 협력해야 하는 영역이며, 번영으로 가는 철로의 한 축이기 때문에 사후적이기보다는 선제적 접근을 시도해야 한다"며 "남북 관계에 있어서 경제적 이윤만이 앞서서는 안 되며, 경제교류가 야기할 문제들을 사전, 사후에 막을 수 있는 사회안전망 구축이 함께 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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