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이후 대비한 보건의료 협력 교류 활성화 절실..."보건의료는 통일 준비의 핵심"

[라포르시안] 오늘(27일) 역사적인 세 번째 남북정상회담이 열린다. 지난 2007년 10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남북정상회담 이후 11년 만에 열리는 남북 정상의 만남이다. 이에 따라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정착과 통일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3차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보건의료 분야에서도 활발한 교류협력의 계기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된다.

앞서 지난 2007년 10월 열린 2차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당국간 보건의료협력사업을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이를 계기로 같은 해 11월 남북총리회담을 개최하고 남북간 보건의료분야 협력을 위한 보다 구체적인 합의안을 마련했다.

당시 남과 북은 '병원, 의료기구, 제약공장 현대화 및 건설, 원료지원, 전염병 통제와 한의학 발전 등 보건의료협력을 위한 실태조사'를 실시키로 합의했고, '남북보건의료․환경보호협력분과위원회'를 구성해 운영키로 했다.

그러나 2008년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이후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보건의료 분야의 교류협력 논의도 다시 막히고 말았다.

3차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다시 남북간 보건의료분야 교류협력의 물꼬가 트일 것이란 기대감이 높다.

앞서부터 남북 통일 이후 북한의 낙후된 보건의료 인프라와 남한과 크게 벌어진 건강격차가 사회적 통합의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북한은 과거 무상치료제, 의사담당구역제 등의 국가주도형 사회주의 보건의료체계를 구축했다. 하지만 1990년대 구 소련 체제의 붕괴와 잇따른 자연재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북한은 극심한 경제난에 처했고, 보건의료체계의 기능도 거의 상실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남북한 간 평균 기대수명 차이가 약 11년에 달하고 질병 행태에도 큰 차이를 보인다. 북한내 보건의료 인프라 부족이 심화되면서 비공식 의료시장이 확산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지(JKMA)에 게재된 '북한의 보건의료 현황과 효율적 지원방안'이란 논문에 따르면 탈북의사들은 1990년대 중반부터 중앙에서부터의 약품공급량이 현격히 감소했고, 국제기구로부터 원조 받은 약이 의약품의 주요 공급원이었다고 진술했다.

2000년 초 지역 제약공장의 생산이 중단됐고, 2000년 초중반부터 약품공급이 완전 중단됐다는 탈북의사들의 진술도 있었다. 병원에서 무료로 제공해 줄 수 있는 약은 동의약이 대부분이며, 진료소 근무 의사, 시군병원급 의사 모두 예외 없이 모든 의사들은 매년 2회 약초채취에 동원됐고, 일정량의 약초를 제출해야 하는 의무가 부과됐다는 진술이 나왔다.

보건의료 인프라의 븡괴와 비공식 의료시장의 활성화는 북한 주민이 필수적 의료서비스를 이용하는데 커다란 장벽이 되고 있다.

이 때문에 통일 이후 보건의료 예산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보다 적극적인 투자 개념의 대북 보건의료 협력방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동안 남북 보건의료 지원을 보면 남한 정부 차원에서 국제기구와 협력을 통해 '모자보건사업'을 추진해 왔고, 민간단체 자체적으로 재원을 마련해 영유아 영양개선사업, 의약품 지원, 진료소 개선 및 결핵 치료사업 등을 펼쳐왔다. 그러나 정칙적 상황에 따라 대북 보건의료 지원사업은 일관되게 지속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남북한 보건의료 인프라 및 건강격차를 감안할 때 통일 이후 심각한 북한주민의 건강문제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공공의료 자원의 확보가 필수적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황나미 연구위원은 '통일 대비 보건의료분야의 전략과 과제'라는 보고서를 통해 "심각한 남북 건강 격차와 지난 60여 년간 상이한 보건의료제도의 운용은 통일 후 사회적 통합의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라며 "통일초기에 그 충격을 최소화해 효율적 보건의료 체계 통합의 동력 기반이 될 수 있도록 통일대비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통일 이후 북한 지역에 의료 공동화(空洞化) 현상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황 연구위원은 "북한지역의 의료 공동화 현상이 초래되지 않도록 북한 의사(호담당의사, 위생의사 포함)를 지역사회 일차의료 인력으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며 "또한 북한의 보건의료체계가 붕괴된 상황에서 낮은 건강수명을 고려할 때, 우리의 민간주도 의료서비스를 공급할 경우 지나친 고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만성질환 예방 및 관리에 초점을 둔 일차의료 체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우리보다 앞서 통일을 경험한 독일은 통일 이전부터 동·서독간 격차 해소를 위해 보건의료분야의 지속적인 교류와 협력을 해왔다.

특히 1974년 4월에 동서독 간 보건의료 협정을 체결하고 동독의 보건의료 인프라 확충을 위해 서독이 재정적인 지원을 펼치기로 했다.

'양국의 국민을 위하여 세계보건기구(WHO)의 목적과 기본원칙에 부응하여 건강유지와 촉진 및 재생의 의미를 인식하고, 독일연방공화국과 독일민주공화국 간의 보건 분야에 대한 관계조정을 유럽의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을 위해 공헌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며, 이 협정은 1972-12-21의 독일연방공화국과 독일민주공화국 간 기본조약의 정신과 일치하여 양 국 간의 정상적 선린관계(good-neighborly relations)를 촉진한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한다.' <동서독 보건의료 협정 취지>

서독은 통일 후 동독의 보건의료체계 긴급원조계획을 통해 단기와 중장기 대책을 세워 지원했다. 동독의 붕괴된 의료인프라는 서독 수준으로 재건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120~134억달러의 장기 지원대책을 수립했다.

북한 개성공단 내 설치돼 운영하던 '개성공업지구부속의원'
북한 개성공단 내 설치돼 운영하던 '개성공업지구부속의원'

전우택 통일보건의료학회 이사장(연세대 의대 의학교육학교실)는 대한의학회가 발행하는 e뉴스레터에 기고한 '통일 대비, 보건의료 영역의 과제들'이란 글을 통해 보건의료는 통일 준비와 그 수행에 있어 핵심적 사안이란 점을 인식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전 이사장은 "보건의료계 스스로 통일에 대한 준비를 하는 동시에, 한국 사회와 정부가 통일에 있어 보건의료의 중요성을 인식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며 "과거에는 통일이 주로 안보, 외교, 국방, 경제 문제라고만 보았다. 그러나 실제로 통일을 가까이에 두고 준비에 들어가려면 통일은 체제가 아닌 '사람의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전 이사장은 "대학이나 의료원, 병원 등 각 보건의료 관련 기관들 안에 통일에 대한 조직들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며 "수 년 전부터 국내 여러 의과대학 및 보건의료 기관들에서 통일관련 기구들을 만들어 활동에 들어갔다. 이것은 전문 의료인들이 통일과 관련된 구체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토대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남북이 보건의료 분야에서 지속적인 교류 협력을 이어갈 수 있도록 법률적인 토대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현재 국회에는 남한과 북한이 보건의료 분야의 교류와 협력을 증진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남북 보건의료의 교류협력 증진에 관한 법률'이 제출돼 있다.

제정안은 정부에서 남북보건의료교류협력에 관한 기본계획을 5년마다 수립하고, 기본계획에 따라 연도별 시행계획을 수립·시행할 것을 규정해 놓았다.

윤석준 고려대의대 교수(예방의학교실)는 통일보건의료학회 학술대회에서 "보건의료와 같은 인도적 지원 분야의 지속적인 교류는 남북한 통일의 끈을 놓지 않는 중요한 기반"이라며 "서독 통일 과정을 교훈 삼아 통일 이전에도 남북한 건강수준의 격차를 줄이려는 노력이
지속되어야 하고, 지속적인 교류 협력의 토대를 만들기 위해 남북 보건의료협정 관련 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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