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증명수수료 불만 원인은 보험사 과도한 서류제출 요구 탓...복지부 연구용역서도 '서류제출 간소화' 제안

[라포르시안] 의료기관이 발급하는 진단서 등 각종 제증명수수료의 상한금액을 설정한 보건복지부의 고시 제정안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의료계는 비급여 영역인 제증명 수수료에 대한 일률적인 가격 통제가 지나친 규제이고, 의료인의 전문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 검사 결과 등을 검토해 작성하는 특수성을 무시한 처사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병원의 제증명수수료를 둘러싼 논란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왜 이렇게 수수료를 둘러싼 국민의 불만이 높은가 하는 점이다.

복지부는 "병원마다 제증명수수료가 천차만별이라 국민들이 불만을 제기해 왔다"고 지적하며 수수료 상한금액 설정 이유를 병원 탓으로 돌렸다.  

그러나 조금만 들여다보면 제증명수수료에 대해서 국민이 불만을 갖게끔 만든 가장 큰 원인 제공자는 발급비용을 천차만별 다르게 책정한 의료기관이 아니라 바로 민간보험사임을 금방 알 수 있다.

민간보험사는 상해·질병보험 가입자가 보험금 청구시 각종 진단서와 증명서 제출을 요구한다. 특히 실손의료보험 가입자가 급증하면서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진단서 발급 요청도 엄청나게 늘었다. 따라서 병원 제증명수수료의 상한액을 설정하는 것보다 민간보험사의 서류 제출을 간소화 하는 게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의료소비자 권리 찾기를 위한 제증명수수료 비용조사 결과 '진단서 등 제증명 발급용도'
의료소비자 권리 찾기를 위한 제증명수수료 비용조사 결과 '진단서 등 제증명 발급용도'

앞서 보건복지부가 제증명수수료의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기 위해 실시한 연구용역에서도 보험사의 서류 제출 간소화가 필요한 것으로 나왔다.

복지부는 지난 2014년  우송대학교 산학협력단을 통해 '의료기관 발급 제증명수수료 가이드라인 마련' 연구용역을 실시한 바 있다. <'의료기관 발급 제증명수수료 가이드라인 마련' 연구보고서 바로 가기>

우송대 산학협력단은 복지부에 제출한 최종 보고서를 통해 "단기적으로는 비급여 진료비용 고지제도의 개선을 통해 의료기관 간 경쟁을 강화하고 국민의 선택권과 이해를 확대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며 "중장기적으로는 의료기관의 제증명 발급 수수료도 비급여 진료비에 포함되며 불필요한 제증명의 남발은 비급여 진료비 총액의 상승에도 영향을 미치므로, 보험사 제출 서류의 간소화 및 각종 제증명 서식의 표준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실제로 병원에서 각종 진단서 등을 발급받는 가장 큰 목적이 보험회사 제출용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2년 실시한 의료소비자 권리 찾기를 위한 제증명수수료 비용조사 결과에 따르면 의료기관에서 제증명을 발급 받았던 경험이 있는 의료소비자의 86.2%는 그 용도가 보험회사 제출용이라고 답했다. 나머지 응답자의 10.6%는 학교 제출용으로, 6.0%는 법원 및 구청 등 행정기관 제출용으로 발급받았다고 답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복지부가 의료기관의 제증명수수료 상한을 설정하기 전에 민간보험사의 서류 제출을 간소화 하기 위한 정책 마련에 적극 나서는 게 필요하다.

이 문제가 개선되지 않으면 실손의료보험 가입자가 3,000만명(2015년 기준 3,265만명)을 넘는 상황에서 제증명수수료 발급에 따른 국민의 비용부담 불만은 개선되기 힘들다. 이런 상황이 벌어진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건강보험의 낮은 보장성 때문이며, 건강보험제도 운영의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 탓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해 민간의료보험 의존도를 낮추고, 보험사의 서류 제출을 간소화하는 쪽으로 정책을 개선하면 제증명수수료에 따른 국민의 비용부담은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복지부는 근본적인 문제 원인은 방치하고 의료기관의 제증명수수료 상한 설정이라는 손쉬운 행정절차를 선택한 셈이다. 

1995년 마련한 '진단서 등 각종 증명서 발급수수료 자율관리기준'
1995년 마련한 '진단서 등 각종 증명서 발급수수료 자율관리기준'

 

보건복지부가 지난 6월 27일 행정예고한 '의료기관의 제증명수수료 항목 및 금액에 관한 기준' 고시 제정안
보건복지부가 지난 6월 27일 행정예고한 '의료기관의 제증명수수료 항목 및 금액에 관한 기준' 고시 제정안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제증명수수료 상한액을 지나치게 낮게 정한 것이다.

우송대 산학협력단은 연구용역 보고서를 통해 "1995년 시행한 진단서 등 각종 증명서 발급수수료 자율관리기준과 같이 발급 수수료의 상한선을 복지부에서 제시하는 게 필요하다"며 "1995년 진단서 등 각종 증명서 발급 수수료 자율관리기준을 제시한 이후 지금까지 개정되지 않고 있어 복지부에서 제증명 수수료 비용 상한선을 제시할 경우 매년 물가상승률을 비롯한 여러 요인을 고려해 상한선을 조정해 제시해야 한다"고 정책 제안을 했다.

이런 제안에도 불구하고 복지부가 이번에 행정예고한 '의료기관의 제증명수수료 항목 및 금액 기준' 고시 제정안의 수수료 상한 기준은 건강진단서 항목 하나를 제외하고 나머지 항목은 22년 전인 1995년 발급수수료 자율관리기준에서 제시한 금액과 동일했다.

의원협회 "22년 전 비용으로 수수료 상한금액 설정"

이와 관련 대한의원협회는 7일 성명을 내고 "22년 전인 1995년 자율관리기준의 항목별 상한금액과 이번에 행정예고한 제정안의 상한금액이 동일하다는 사실에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며 "복지부는 22년 전과 똑같은 가격을 받으라고 강제하고 있는 것으로, 22년 전의 가격으로 물품이나 서비스 가격을 받으라고 한다면 가만히 있을 사람이나 단체가 어디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의원협회는 "지난 20년간 물가인상률을 반영하면, 현재 관행수가보다 1.7배 이상, 복지부 예정안보다 3배 이상 인상됐어야 정상"이라며 "의료계는 국민불편 감소 차원에서 그간 자율적으로 수수료 인상을 억제해온 것이며, 이렇게 억제해온 가격을 조사해 더욱 낮게 책정한 것은 민간의료기관의 사적재산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병원 제증명수수료에 대한 국민 불만의 근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민간보험사의 과도한 서류 제출 요구를 개선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의원협회는 "복지부가 실시한 '의료기관 발급 제증명수수료 가이드라인 마련' 연구용역 보고서에 의하면 의료기관 제증명 발급 목적의 대다수는 손해보험(실손보험) 가입자의 보험금 청구를 위한 보험회사 제출용이라고 한다"며 "따라서 복지부가 진정 국민불편 감소를 위한다면 보험 상품의 혜택범위에 제증명수수료 비용을 포함하도록 주장하고 관철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협회는 "민간의료기관의 사적재산권과 직업행사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하고 있는 제증명수수료 상한금액 고시 제정안을 즉각 폐기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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