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혈 불법 투여·무허가 세포치료제 시술 등 의료윤리 실종…"연구중심병원 지정 취소해야"

분당차병원 전경.
분당차병원 전경.

[라포르시안] 차병원그룹 차광렬 회장 일가가 연구 목적으로 기증된 제대혈을 무단 투여받은 데 이어 불법적으로 배양한 세포치료제까지 투여한 사실이 드러났다.

제대혈과 세포치료제 투여는 모두 분당차병원에서 이뤄졌다. 이 때문에 심각한 연구윤리 위반이 드러난 분당차병원의 '연구중심병원' 지정을 취소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앞서 보건복지부는 지난 21일부터 23일까지 사흘간 분당차병원과 차병원 제대혈은행에 대한 현장조사를 통해 연구용으로 부적격 제대혈을 제공받아 수행한 모든 연구를 점검했다.

이를 통해 연구의 공식적 대상자가 아님에도 차광렬 회장과 부인 등에게 모두 9차례 걸쳐 제대혈을 투여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차병원 제대혈은행은 연구 목적으로 사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사전에 인지하고도 분당차병원에 부적격 제대혈을 공급한 것으로 드러났고, 이를 제대혈정보센터에 승인받은 연구로 사칭해 신고한 사실도 확인됐다.

더 기가막힌 불법 사례도 드러났다. 차병원그룹 계열사인 차바이오텍이 제조한 무허가 세포치료제를 분당차병원이 공급받아 차광렬 회장과 가족에게 투약한 사실이 식품의약품안전처 조사를 통해 확인됐다.

식약처에 따르면 차바이오텍은 차광렬 회장과 부인, 딸로부터 혈액을 채취한 후 그 혈액으로부터 세포를 불법 배양해 2015년 2월 9일부터 올해 10월 21일까지 총 19차례에 걸쳐 세포치료제를 무허가로 제조해 분당차병원에 공급했다. 

분당차병원 의사 이모씨는 차바이오텍으로부터 공급받은 무허가 ‘자가살해세포 치료제’를 병원 내 진료실에서 차광렬 회장과 가족에게 19차례에 걸쳐 투약했다. 

지금까지 드러난 차병원그룹 산하 계열사와 의료기관의 불법 행위는 연구윤리 측면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간단치가 않다.

의사 출신인 차광렬 회장이 연구목적으로 기증받은 제대혈을 미용, 노화방지 등을 위해서 투여받은 행위는 의료인으로서 지켜야 할 윤리를 저버린 것이란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분당차병원의 연구중심병원 지정을 취소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SBS 관련 뉴스 보도화면 갈무리.
SBS 관련 뉴스 보도화면 갈무리.

복지부 "연구중심병원 지정 취소 마땅한 규정 없어"

분당차병원은 지난 2013년 3월 보건복지부 지정 연구중심병원으로 선정된 후 올해 3월 재지정을 받아 향후 3년간 정부로부터 연간 수십억원의 연구비를 지원받을 예정이다.

분당차병원은 연구중심병원 지정을 통해 ▲뇌성마비 환자의 제대혈줄기세포 치료 ▲퇴행성 관절염의 지방줄기세포 치료 ▲파킨슨병의 태아줄기세포 치료 등 난치성 신경계 질환 분야를 중심으로 정부연구비 수혜를 받는다.

하지만 최근 드러난 차병원 제대혈은행의 제대혈법 위반 행위와 차바이오텍의 무허가 세포치료제 제조, 그리고 분당차병원의 제대혈과 무허가 세포치료제 불법시술 행위는 과연 정부예산을 지원받는 연구중심병원으로서 자격을 의심케 한다.

보건복지부는 차병원 제대혈은행의 제대혈법 위반 사실이 드러남에 따라 국가 지정 기증제대혈은행의 지위를 박탈하고, 기존에 지원했던 예산을 환수하겠다고 밝혔으나 분당차병원의 연구중심병원 지정 취소는 검토하지 않고 있다. 

현행 보건의료기술 진흥법 관련 규정(제15조 제2항)에 따르면 복지부장관은 연구중심병원으로 지정받거나 재지정받은 의료기관이 ▲거짓이나 그 밖의 부정한 방법으로 지정을 받은 경우 ▲지정기준을 충족하지 못하게 된 경우 ▲연구중심병원의 지정 취소를 희망하는 경우 지정을 취소해야 한다.

분당차병원의 경우 연구윤리를 위반한 것은 맞지만 지정 취소 사유에 직접 해당하지는 않는다. 연구중심병원 지정 및 재지정 평가시 연구인력과 시설, 연구실적 등이 주요 평가지표로 적용되며, 연구윤리에 관한 평가는 형식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연구중심병원 지정시 연구윤리 평가지표는 기관생명윤리위원회(IRB) 설치 및 운영, 임상연구피험자 보호관리체계 운영, 연구정보관리 시스템 운영 등의 여부만 따질 뿐이다. 

연구중심병원 지정업무를 담당하는 복지부 보건산업정책과 관계자는 "분당차병원 관련된 내용은 우리도 지켜보고 있다"며 "다만 현재 상황에서는 분당차병원의 연구중심병원 지정을 취소할 수 있는 규정이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해당 사안을 모니터링 한 후 관련 법에 따라 내부적으로 검토할 수는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덧붙였다. 
 
심각한 연구윤리 위반과 함께 관련법을 위반한 사실이 드러난 이상 관련 규정을 개정해서라도 분당차병원의 연구중심병원 지정을 취소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형준 정책국장은 "이번 사안에 대해서 정부도 분명히 책임을 져야 하고, 분당차병원에 대한 연구중심병원 지정 평가가 올바로 이뤄졌는지 다시 살펴봐야 한다"며 "보건의료기술 진흥법 하위법령을 개정해 연구윤리를 심각하게 위반한 분당차병원의 연구중심병원 지정을 취소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분당차병원에서 차광렬 회장 일가에게 제대혈을 불법 투여하고, 무허가 세포치료제까지 시술한 것을 볼 때 이 병원의 기관생명윤리위원회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의구심을 갖게 한다.

정 국장은 "이러한 불법 시술이 이뤄졌다는 건 분당차병원의 기관생명윤리위원회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는 걸 의미하며, 연구중심병원의 지정 기준을 충족한다고 볼 수 없다"며 "연구중심병원 지정 취소 전이라도 분당차병원에 대한 연구비 지원을 중단하는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연구중심병원 제도가 정말로 필요한지 근본적으로 따져보는 것도 필요하다. 당초 연구중심병원 제도가 도입된 취지가 병원의 연구개발 활성화와 기술사업화를 통해 보건의료 산업화를 선도한다는 것이었다.

정부예산을 지원하는 연구중심병원의 연구개발 성과가 환자와 국민의 이익으로 환원되는 선순환 구조가 구축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정 국장은 "연구중심병원의 성과가 다시 사회로 환원돼야 하는데 치료효과가 불분명한 줄기세포치료제 연구가 경우 최종적으로 국민건강에 어떻게 이바지 할 것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한편 지난 10월에는 분당차병원이 환자한테서 채취한 혈액 샘플을 2년여 동안 외부 업체에 유출한 사실이 뒤늦게 적발됐다.

보건당국 조사에 따르면 분당차병원 진단검사의학과 일부 직원들은 환자 4,000여명한테서 채취한 혈액 검체 샘플을 무단으로 진단검사용 시약을 만드는 의료기기업체에 빼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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