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포르시안] 우스갯소리로 "술에 취한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사람들도 직장 상사나 불량배를 만나면 이상하게 분노 조절이 잘 된다"고 말한다. 그만큼 주취 폭력이 대부분 자신보다 사회·경제적 위치가 낮거나 물리적인 힘이 약한 사람에게 향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주취폭력, 즉 '주폭'은 자신보다 약자를 향한 폭력 행사라는 점에서 비열한 행위로도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주폭이 병원 응급실에서 의료진과 다른 환자들의 안전과 생명을 심각하게 위협한다는 점에서 사회적인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실제로 최근 한달 사이에만 응급실에서 주최 환자에 의한 의료인 폭행 사건이 잇따랐다. 앞서 지난 7월 1일에는 전북 익산의 한 병원 응급실에서 술에 취한 환자가 의사를 폭행한 사건이 있었고, 같은 달 29일에도 술에 취해 병원 응급실로 이송된 환자가 응급구조사와 간호사에 폭력을 휘둘렀다. 같은 날에는 전북 전주시 한 병원 응급실에서 만취한 10대 여성이 자신을 치료하던 간호사 2명을 폭행했다. 지난달 31일 새벽에도 경북 구미에 있는 한 대학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에서 술에 취한 20대 남성이 자신을 치료하던 전공의에게 철제 소재의 병원용품을 휘둘러 큰 상래를 입혔다. 그나마 사건이 외부로 알려져 보도된 것만 이 정도이고 외부로 알려지지 않은 병원내 주취 환자의 폭력 사건은 더 많을 것으로 짐작된다.

가장 안전해야 할 병원 내에서 왜 이렇게 주폭 행위가 근절되지 않는 걸까. 의료계는 주치 환자에 의한 의료인 폭행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한 의사단체에서는 최근 안전한 의료환경을 위한 응급실에서 의료인을 폭행할 경우 가중처벌해야 한다는 청와대 국민청원을 진행하고 있다. 주취 상태에서 의료진을 폭행한 주폭 가해자를 가중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이 이미 국회에 발의된 상태다. 그러나 앞서 2015년과 2016년에 응급의료법과 의료법 개정을 통해 의료기관 내에서의 폭력 행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한 바 있지만 지금도 여전히 병원 내에서 주취 환자에 의한 폭력 행위는 끊이질 않고 있다. 대한응급의학회가 응급실내 폭력 실태를 파악한 결과에 따르면 응급실에 근무하는 의료인 가운데 63%가 폭행을 경험한 것으로 나왔다.

뭐가 문제일까. 병원 내에서 주취 폭력을 더 엄하게 처벌하는 법안이 생기면 상황이 나아질까. 그렇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관련 법에 의해서 충분히 병원 내 주취 폭력에 대해 강하게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돼 있는 상태다. 문제는 법이 엄정하게 집행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보건복지부가 자유한국당 김승희 의원에게 제출한 '2017년 응급의료 방해 등 관련 신고 및 고소 현황' 자료를 보면 사법당국이 주폭에 얼마나 관대한 지를 보여준다. 현황 자료를 보면 응급의료 방행 행위로 신고·고소된 건수는 893건으로 전년도의 578건에 비해 55% 늘었다. 응급의료 방해 행위로 신고나 고소를 당한 사람 10명 중 약 7명(67.6%)이 술에 취한 상태였다. 방해 행위의 유형도 폭행 피해가 365건으로 가장 많았다. 방해 행위로 피해를 본 의료인 중에는 여성인 간호사가 35.1%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의사(23.1%), 보안요원(15.8%), 병원직원(15.4%) 순이었다.역시나 주취 상태에서 폭력 행위가 물리적인 약자에게 집중된다는 게 확인된 셈이다. 그런데 응급실 진료 방해행위로 처벌을 받은 사람은 10.4%에 불과했다. 이 중 징역형을 받은 가해자는 2명, 벌금형은 25명으로 관련법에 따른 엄정한 처벌로 이어진 비율은 3%에 불과했다. 참고로 현행 응급의료법은 응급의료종사자의 응급환자 진료를 폭행 등으로 방해한 경우 5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술에 관대한 한국 사회의 후진적인 음주문화를 그대로 보여준다. 주취 폭력에 대해 지금보다 처벌을 강화하더라도 엄정한 법집행을 담보할 수 없다면 상황이 별로 나아지지 않을 것이란 걸 충분히 짐작하게 한다.

엄정한 법집행이 이뤄지지 않는데는 나름 이유가 있다. 폭행 피해를 당한 의료인 입장에서는 어떻게 폭력에 대응해야 할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폭력 사건 발생시 어떤 식으로 대응해야 할 지 알려주는 대응 프로토콜이 없다. 게다가 강력히 대응해 주취 폭력자를 경찰에 신고하면 그 때부터 경찰 조사에 수 차례 불려다녀야 하고, 폭행 가해자가 '반의사불벌죄'를 앞세워 고소 취하를 요구하며 회유와 협박까지 하는 걸 감당해야 한다. 차라리 그냥 덮고 넘어가는 게 더 편하다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다. 경찰도 나름 고충이 있다고 한다. 주취 폭력 가해자에게 엄정한 법집행을 위해 적극적으로 대응했다가 문제가 생기면 되레 인사고과에서 불이익을 당하거나 징계를 받을 수도 있어 소극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해명한다.

어떻게 해야 상황이 나아질까. 첫 째는 의료계가 요구하는 것처럼 현행법 테두리 안에서 병원 내 폭력 행위에 대해서 엄정한 법집행이 이뤄져야 한다. 더는 주취 상태의 폭력을 관대하게 대해선 안 된다. 특히 응급실에서의 주취 폭력은 의료인은 물론 다른 응급환자의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주취 폭력 중 상당수가 자신보다 약자에게 향하는 비열한 폭력행위라는 점에서 더 그렇다.

보다 근본적인 해법도 고민해야 한다. 담배와 마찬가지로 공중보건 차원에서 음주문제에 접근하는 게 필요하다. 폭력을 행사할 만큼 만취하게 만드는 과도한 음주는 각종 질환 발생의 위험요인일 뿐만 아니라 주취 폭력, 음주운전 등으로 인명피해를 낸다. 복지부의 ‘2016 국민건강통계’에 따르면 만 19세 이상 성인이 월 1회 이상 한번의 술자리에서 남자는 소주 7잔, 여자는 5잔 이상 마신 ‘월간 폭음률’이 36.8%에 달했다. 술을 잘 마시는 게 사회생활에서 일종의 경쟁력처럼 여겨지는 왜곡된 '술꾼 신화', 세계 최고의 장시간 노동 속에서 쌓이는 스트레스를 술로 푸는 회식문화 등이 후진적인 음주문화를 유지하게끔 만들고 있다. 

사실 주류판매에 대한 규제가 너무 느슨하다. 주취자 폭력에 엄정한 법집행을 하는 것과 별도로 중독성 기호품인 담배처럼 술에도 더 엄격한 규제를 가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주로 음주자 개인에 초점을 맞춘 건전한(?) 음주문화 캠페인과 주폭에 따른 처벌 위주의 규제였다. 술을 판매하고 주류 소비를 자극하는 홍보를 펴는 주류산업에 대한 규제는 미미했다.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가운데 술과 음주에 대한 규제정책이 가장 허술한 국가(2014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음주정책통합지표와 OECD 국가간 비교')로 분류됐다. 반면 외국에서는 주류판매 일수나 시간을 제한하는 방식의 규제를 통해 주폭 사건이 감소하는 효과를 보고 있다. 앞서부터 담배회사를 향해 흡연에 의한 건강피해 책임을 묻고 담배 판매행위를 엄격하게 규제하는 것처럼 주류회사에도 음주에 따른 사회적 폐해에 대해서 적절한 책임을 지우는 게 필요하다. 

술과 음주가 우리사회에 끼치는 폐해는 상당하다. 음주로 인한 조기사망비용과 주취폭력, 음주운전 등에 의한 사회경제적 비용이 연간 9조4,000억원(2015년, 건강보험정책연구원 '주요 건강위험요인의 사회경제적 영향과 규제정책 효과평가')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2013년 기준으로 음주로 인해 건강보험 영역에서 발생하는 직접의료비 규모만 2조2,672억원에 달했다. 병원 내에서 주폭에 의한 사회적 비용 부담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음주로 인한 사회경제적 폐해가 담배에 버금갈 정도인데, 주류판매와 음주는 담배와 흡연처럼 엄격하게 규제하지 않는다. 안전한 진료환경 조성 뿐만 아니라 공중보건과 국민건강 증진을 위해서 정부가 팔걷고 나서 후진적 음주문화 개선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건강보다는 주류회사의 경제적 이윤창출 보장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다. 작금의 야만적인 '술 권하게 만드는 사회'를 언제까지 두고 볼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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