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의료 현장서 벌어지는 의료인 폭행 심각한 지경...2명 중 1명꼴 "생명의 위협 느껴"

[라포르시안] "응급실에서 30년간 일했다. 그간 총, 칼, 야구방망이 등 온갖 도구와 주먹으로 위협받은 경험이 있다. 심지어 차량 돌진 사고도 있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고 지난 15년간 노력했지만 결국 해결을 못 하고 후배들이 폭력에 노출되도록 한 것이 부끄럽고 죄송스럽다." (유인술 충남대의대 응급의학과 교수)

"저는 20년을 일했는데 현장의 불안과 공포감은 그대로다. 폭력 실태 파악을 위해 긴급설문조사를 했더니 응급실에 근무하는 의료인의 63%가 폭행을 경험한 것으로 나왔다. 폭언을 들었다는 응답률은 97%나 됐다. 무엇보다 응답자의 55%는 응급실에 근무하면서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고 응답했다." (이형민 고대구로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대한응급의학회가 지난 11일 오후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개최한 긴급 공청회에서는 응급의료 현장에서 겪고 있는 폭력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엿볼 수 있었다.  

특히 이날 공청회에서는 응급의료 현장에서 의료인을 향한 폭력이 근절되지 않는 다양한 원인이 제시됐다. 이런 문제를 모두 해결하려면 종합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  

공청회에 참석한 의료인들은 응급실 폭력에 대한 의료기관의 대응 방식에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형민 고대구로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병원 내에 응급실 폭력 대응 프로토콜이 없다. 폭력에 대한 대비나 훈련을 받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동료가 환자에게 폭행을 당하는 장면을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다는 것이다. 

지역에 기반을 둔 의료기관은 응급실에서 폭행 사고가 나도 지역에 좋지 않은 소문이 날까 두려워 대충 덮고 무마하는데 급급해 폭행 가해자를 상대로 강경 대응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병원이 가해자를 고발하는 방식으로 강력히 대응하더라도 뒷감당은 피해자의 몫이라고 했다. 

지방 중소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한다는 한 간호사는 "응급실에서 폭력 전력이 있는 환자가 모르핀을 내놓으라며 행패를 부려 병원에서 고발했다"며 "이 때문에 응급실 의사, 간호사 모두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다. 저는 6번을 다녀왔다. 이 일로 간호사들 모두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반대로 폭력 환자에 강경하게 대응하고 싶어도 반의사불벌죄가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표창해 서울의료원 응급의료센터장은 "반의사불벌죄 때문에 응급실 안전요원이 난동 상황에 제대로 대응을 할수 없다. 자칫 쌍방폭행이 되면 골치아프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어느 병원에서는 응급실 난동자를 저지하다가 부상을 당한 안전요원이 그 부상을 이유로 해고되는 일도 있었다.  

의료진이 대응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의료계가 반의사불벌죄를 폐지하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다. 

경찰의 대응도 문제다. 

이른바 '주취자 원스톱 응급의료센터'에서 일한다는 한 의사는 "응급실에 보안요원이 배치되어 있지만 술에 취한 환자에게 오히려 얻어맞고 있으며, 간호사들은 행려자에게 성추행을 당하는 상황"이라며 "경찰이 주취자를 우리 병원 앞에다 버리다시피 두고 가기도 한다. 심지어 안암동에서 발견한 환자를 고대안암병원과 동부시립병원으로 데려가지 않고 우리 병원으로 데리고 온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응급실에 상주하는 경찰의 행태를 봐도 웃긴다. 보안요원이 뺨을 맞고, 여자 인턴이 턱이 돌아가는 모습이 보일 정도로 주먹으로 세게 맞았지만 상주 경찰은 112에 신고하라고만 한다"며 "심지어 어떤 경찰은 '의료진을 보호하려는 게 아니라 주취자를 보호하러 왔다'고 말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심지어 경찰이 응급실 폭력 대응 프로토콜도 만들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서울시에 있는 주취자 원스톱 응급의료센터 과장들이 지방경찰청을 찾아가서 응급실 폭력 대응 프로토콜을 제대로 만들도록 촉구해야 한다"며 "과장들이 그렇게 못하면 응급의학회에서 나서 요청해 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경찰관도 나름의 속사정이 있다.

한 경찰관은 라포르시안과의 통화에서 "응급실에서 난동이 발생했을 때 경찰이 적극적으로 대응하게 하려면 직무 규정을 바꿔야 한다. 지금은 적극적으로 대응했다가 문제가 생기면 인사고과에서 불이익을 받거나 징계를 받는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며 "이런 상황에서 누가 적극적으로 대응하려고 하겠느냐. 응급실 상주 경찰이 112에 신고하라고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응급실 의료진에게 녹취기를 지급하고 사용을 허용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응급실에 CCTV가 설치되어 있지만, 음성녹음 기능은 없기 때문이다. 

폭행, 폭언, 성희롱이 빈발하는 응급실에 근무하는 의료진에게 녹취기를 지급할 경우 폭행이나 폭언 행위자에게 모욕죄나 명예훼손으로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응급실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표창해 서울의료원 응급의료센터장은 "응급실에 대한 오해부터 불식해야 한다. 응급실에서 의료진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폭언을 해서 진료를 마비시키는 것은 다른 환자의 생명에 위해를 가하는 행위라는 것을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은석 응급의학회 이사장(울산대 의대)은 "오늘 공청회를 지켜보면서 가슴이 답답하고 무거웠다. 오늘 나온 의견을 꼼꼼히 기록했고, 보건복지부 등에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이재백 응급의학회 회장(전북대 의대)은 "이 자리에 모인 사람은 비록 소수지만 우리가 처한 현실을 주변에 널리 퍼뜨려달라"고 당부했다.

공청회 참석자들은 홍은석 이사장의 제안으로 응급실 폭력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참여했다. 

홍은석 이사장은 "국민청원이 20만명을 넘겨야 하는데 지금 6만9,000명에서 멈춰 있다. 의사만 13만인데도 이렇다"며 "어떻게 해서든 20만을 넘겨야 한다. 그렇게만 해준다면 내가 전사로 기꺼이 나서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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