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응급실 폭행 방지 대책'으로 표준 서비스 디자인 개발 추진...이용자 친화적 환경 조성

[라포르시안] 보건복지부가 최근 응급실 내 응급의료종사자를 향한 폭행 사건을 예방하고 안전한 응급실 진료 환경을 구축하기 위한 '응급실 폭행 방지 대책'을 발표했다.

경찰청과 함께 마련한 이번 대책에는 ▲실효성 있는 예방적 법·제도 개선 ▲신속하고 효율적인 현장 대응 ▲응급실 이용 문화 개선 등을 골자로 한다.

법·제도 개선은 응급실 폭행범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의 엄정한 법집행이 핵심이다. 앞서부터 의료계가 정부에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내용이다. 이런 방안은 응급실 폭행에 따른 사후적인 대응 조치이다.

더 중요한 건 응급실 내 폭언과 폭력을 사전에 예방할 수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응급실 이용 문화 개선이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응급실 폭력 중 상당수는 긴 대기시간, 진료와 처치 내용 등의 설명과 정보제공 부족 등으로 인한 환자·보호자의 불만에서 비롯된다. 여기에 '누구나 응급실에 가면 빨리 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응급실 이용에 대한 오해도 크게 작용하다.

응급실 이용 문화 개선은 바로 이런 문제를 개선하려는 취지다. 이를 위해 복지부는 ▲응급실 안내 책임자 배치 ▲이용자 친화적인 응급실 환경 조성 ▲응급실 이용 정보 제공을 위한 홍보 강화 등의 대책을 추진할 방침이다.

응급진료 관련 안내·상담을 전담하는 책임자를 지정해 환자와 보호자에게 응급실 이용 및 진료정보를 충분히 제공하고, 응급실 이용자의 눈높이를 고려한 공간 구성 및 서비스 디자인 방법을 활용해 진료 프로세스를 개선할 계획이다. 또한 응급실이 '중증응급환자를 우선 진료하기 위해 운영되는 공간'이라는 점을 국민이 이해할 수 있게끔 홍보도 강화할 방침이다.

그런데 이런 대책이 실제로 응급실 폭력을 줄이는 효과가 있을까.

우리보다 앞서 응급실 이용 문화와 프로세스를 개선한 외국 병원이나 국내 일부 병원의 사례를 보면 예방 효과가 상당히 높은 것으로 나온다. 특히 응급실에 환자경험 중심의 서비스디자인을 적용했을 때 응급실 폭력을 줄이는 효과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대표적인 적용 사례가 바로 영국 국민건강서비스(NHS)가 도입한  '더 나은 응급실(A better A&E)' 프로젝트다.

영국 NHS 산하 병원에서 매년 발생하는 응급실 폭력 사건은 6만여 건에 달할 정도였다. 응급실 폭력은 신체적·정신적 피해는 물론 의료진이 병원을 떠나게끔 만들고 폭력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보안인력을 고용해야 하는 등 직간접적으로 막대한 사회적 비용부담을 초래한다.

영국 '더 나은 응급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개발한 벽에 부착하는 진료 프로세스맵.
영국 '더 나은 응급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개발한 벽에 부착하는 진료 프로세스맵.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영구 보건부의 지원 아래 서비스디자인 민간 전문가와 병원 내·외부 전문가들이 협력해 병원의 시스템, 프로세스, 시설 구조, 서비스 방식, 커뮤니케이션 방식 등이 병원 내 폭력 발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하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연구했다.

그런 논의를 통해 도출된 방안이 환자가 응급실에 내원해서 진료를 받고 돌아갈 때까지 모든 과정에서 적절한 정보를 제공하고, 환자가 관련 정보를 스스로 확인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었다.

우선 응급실 내 진료 과정을 '접수(Check in), 평가(Assessment), 치료(Treatment), 결과(Outcome)'의 4단계로 나누고 환자 스스로 자신이 현재 어느 단계에 있는지 확인할 수 있게끔 가이드맵을 응급실 벽면에 부착하고, 각 공간별로 역할과 치료과정을 나타낸 디자인 패널을 적합한 장소에 부착해 놓았다.

대기실에는 실시간 상황 안내 모니터를 비치해 응급실 혼잡도, 치료 단계별 환자 현황, 응급 정도에 따른 대기시간 정보를 제공하는 시스템도 구축했다.

이와 함께 응급실 직원을 대상으로 폭력성을 보이거나 분노 등을 표출하는 환자 대응법과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향상하는 교육 프로그램도 시행했다.

런던 내 2개 NHS 산하에서 이를 방식을 적용한 결과, 응급실 내 폭력 사건의 발생 빈도가 50% 정도 줄었고, 의료진을 향한 폭언이 25%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시간 관련한 환자의 불만은 75% 감소했고, 응급실 의료진에 대한 신뢰도는 78% 상승한 것으로 조사됐다.

색을 활용해 환자 공간을 구분한 고대안암병원 응급실 모습.
색을 활용해 환자 공간을 구분한 고대안암병원 응급실 모습.

국내 일부 병원에서도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응급실에 서비스디자인을 적용해 효과를 보고 있다.

고려대학교 안암병원도 환자의 눈높이에 맞춰 응급실 공간을 재구성하고 서비스디자인 방법론을 활용해 진료프로세스를 개선해 효과를 본 사례로 꼽힌다.

응급실 진료 절차를 이해하기 쉽도록 보호자 대기실 벽면에 응급진료 프로세스 정보를 부착하고, 색을 활용해 환자 중증도별로 공간을 구분하는 방식을 적용했다. 이를 통해 응급실 내원 환자의 불만도 감소하고 의료진이 보다 안정적인 환경에서 근무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다. 

서울시보라매병원 응급의료센터에 설치된 진료현황판.
서울시보라매병원 응급의료센터에 설치된 진료현황판.

서울시보라매병원은 지난 2015년에 기존 응급의료센터를 환자 경험을 기반으로 한 서비스디자인을 반영해 재구축했다. 새로 구축한 응급의료센터는 출입구에서부터 환자를 일반, 외상, 중증 환자로 중증도 분류(triage)를 한 후 가야 할 구역으로 구분했다.

각 구역에는 기존 응급실에서는 볼 수 없었던 환자별 '진료 현황판'을 설치했다. 진료현황판의 환자 이름 옆에는 주치의와 담당간호사의 이름을 기재하고, 환자별로 각 검사 단계 진행 사항을 표시하도록 해 자신의 진료 진행 상황과 검사 대기시간을 확인할 수 있게끔 했다.

그 결과 응급실에서 담당의사가 누군지 몰라 여기저기 묻고 대기시간이 얼마인지 몰라 불만을 터뜨리던 환자들의 만족도가 높아졌다.

복지부는 앞으로 정책연구를 통해 응급실 안내 리플렛, 구역·동선 표시, 실시간 진료 현황판 등 국내 응급실에 적용할 수 있는 표준 서비스 디자인을 개발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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