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료계, '강 대 강' 대치 속 해결책 못 찾아
비상진료대책으로 버티기도 곧 한계치
"업무복귀 후 대화를 통한 의료개혁 해법 마련 나서야” 호소

[라포르시안] 지난달 20일 이른바 '빅5' 병원에 소속된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내고 근무를 중단하면서 지작된 의사 집단행동 사태가 보름을 넘겼다. 이후 전국 수련병원에서 근무하는 전체 전공의 1만3000여명 가운데 70%가 넘는 전공의가 집단사직 행렬에 동참하면서 의료공백이 커지고 있다. 

정부는 2월 29일까지 업무에 복귀하면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하고, 이를 어기면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업무복귀 시한을 넘긴 이후에도 복귀자는 소수에 그쳤다. 결국 정부는 업무복귀명령을 어긴 전공의 대상으로 행정처분을 위한 절차에 들어갔다. 

'업무개시명령'을 어기고 의료현장을 이탈한 전공의에 대해서는 의료법 규정에 따라 면허정지 처분을 내린다는 방침이다. 지난 5일부터 병원 현장점검에서 업무복귀명령 불이행이 확인된 전공의애개 행정처분 사전통지서를 발송하는 것으로 처분 절차를 시작했다. 행정처분 대상자만 7000명에 달한다. 

문제는 전공의 집단사직으로 인한 의료공백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비상진료체계로 언제까지 버틸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실질적으로 대형병원 의료시스템 운영을 떠받쳐온 전공의 인력이 빠지자 의료현장은 급격하게 무너지고 있다.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도 응급실과 중환자실 운영에 차질을 빚고 있다.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에서 운영하는 '응급의료포털' 사이트에 뜬 주요 상급종합병원의 응급실 메시지는 담당 인력부족 혹은 인력부재로 인한 '진료불가', '수용불가' 메시지가 상당수다. 

전공의 집단행동 이후 의료현장을 키져온 교수나 간호사 인력 등의 피로도가 누적되면서 '번아웃(탈진)'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진료시간을 연장하고 휴일에도 진료에 나서는 지방의료원 등 공공병원 의료진은 번아웃 상태로 내몰렸다. 공공병원은 정원 대비 의료인력이 부족한 상태인데다 코로나19 유행 시기 감염병 전담병원 역할을 수행하면서 그만둔 의료진도 많아 인력부족이 심각하다. 여기에 공공병원 소속 전공의들도 사직서를 내고 근무를 중단하면서 남아있는 전문의와 간호사들의 피로도가 한계치에 달하고 있다. 

여기에 전공의 공백을 메꿔 온 전임의와 의대 교수들마저 정부가 의대 증원을 강행하고 전공의 처분 절차에 들어가자 크게 동요하는 분위기다. 일부 대학병원에서는 전임의들도 이탈할 조짐을 보이고 있으며, 교수가 사직서를 내는 곳도 나오고 있다. 

의대 교수들은 "3월에 신임 인턴, 전공의가 안 들어오면 법적, 행정적으로 제재할 방법이 전혀 없으며, 대학병원 입원치료와 수술은 인턴, 전공의가 없으면 마비된다"며 "대학병원의 마비 상황은 2000년 의약분업과 비교가 안 되는데 2024년 대한민국 의료는 2000년 의료대란 때와는 비교할 수 없게 고도화, 전문화되어 있어서 교수-전임의-전공의-인턴으로 이어지는 업무분담이 없으면 불가능하다"고 우려를 표했다.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이후 간호사들은 이들의 업무까지 떠안으면서 과중한 업무부담과 불법진료에 따른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대한간호협회에 따르면 전공의 집단사직 이후 대형병원에서 간호사들이 대리처방과 대리기록에, 심지어 치료처치 및 검사와 수술 봉합 등의 불법진료에 내몰리고 있다. 전공의 업무 대부분을 PA간호사도 아닌 일반간호사들이 떠맡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이후 간호사들은 병원 측으로부터 '불법진료 행위' 지시를 강요받고 있다. 불법진료 행위 지시로는 채혈, 동맥혈 채취, 혈액 배양검사, 검체 채취 등 검사와 심전도 검사, 잔뇨 초음파 등 치료·처치 및 검사, 수술보조 및 봉합 등 수술 관련 업무, 병동 내 교수 아이디를 이용한 대리처방이 등 다양했다.

간호사들은 불법진료뿐만 아니라 외래 진료 조정, 수술 취소 전화 및 스케줄 조정 관련 전화 안내, 드레싱 준비, 세팅 및 보조, 환자와 보호자 불만 응대 등에 시달리고 있다. 

전공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간호사 불법진료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27일부터 '진료지원인력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이를 통해 병원장이 내부 위원회를 구성하고, 간호부서장과 협의해 간호사 업무 범위를 정할 수 있도록 하고,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병원 현장에서는 정부 차원의 세부 지침이 부재한 상태에서 병원장이 업무범위를 정할 경우 나중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고, 의료분쟁이 발생하면 법적 책임이 모호한 측면이 있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의료공 장기화로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는 것은 환자들이다. 보건복지부가 운영하는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지원센터' 접수 현황을 보면 2월 19~29일까지 총 781건의 환자 불편 사례가 접수됐다. 유형별로는 수술 지연 256건, 진료 거절 33건, 진료 취소 39건, 입원 지연 15건 등이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최근 성명을 내고 "응급 수술이나 처치가 필요한 응급환자와 적시에 최선의 수술이나 항암치료·방사선치료·장기이식이나 조혈모세포이식 등의 치료를 받아야 하는 중증환자에게는 전공의 집단행동 장기화로 생명과 건강에 치명적인 피해가 발생할 개연성이 크다는 점에서 해당 환자와 가족의 심리적 불안감은 심각한 수준"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환자단체는 "전공의 사직서 제출에 따른 의료공백 방지를 위한 비상진료대책를 발표했지만 입원·외래 진료나 수술 연기 통보를 받았거나 연기 예고 안내를 받은 중증환자의 심리적 불안감과 절망감, 이러한 상황을 지켜보는 환자가족의 당혹감과 분노는 상상 이상"이라며 "전공의는 사직 방식의 집단행동을 이제는 멈추고, 응급·중증환자에게 돌아와 이들이 겪고 있는 불편과 피해, 불안부터 멈추게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전공의 집단행동에 따른 의료공백 장기화에 대비해 비상진료대책을 보완하며 대응하고 있다. 

정부의 비상진료대책은 공공병원을 최대치 가동하면서 의료인력을 확충해 지원하고, 상급종합병원으로 환자쏠림을 방지하기 위한 의료전달체계 작동에 초점을 맞췄다. 

이를 위해 보건복지부는 지난 4일부터 병원 간 응급환자 전원 지원 조직인 긴급대응 응급의료상황실 운영을 시작했다.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에 설치된 긴급상황실은 응급환자의 병원 간 전원·조정 등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한다.

정부는 또 의사 집단행동 장기전에 대비해 기존 의사인력에 대한 보상과 대체인력 채용, 공공병원 운영 연장 비용 등에 소요되는 재정 예비비로 1200억원 규모를 편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늘(6일) 오후 열리는 국무회의에서 예비리 금액과 사용처를 확정할 예정이다. 

박민수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제1총괄조정관(보건복지부 제2차관)는 지난 5일 정례브리핑에서 "정부는 예비비 등 가용 자원을 총동원하여 비상진료체계를 유지하겠다"며 "의사가 부족해 수련생인 전공의에 의존해 왔고, 비중증 환자도 수도권 상급종합병원으로 집중될 수밖에 없었던 현재의 왜곡된 의료체계를 바로잡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비상진료체계를 설계·운영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부와 의료계가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강 대 강 대 대치를 지속하면서 의료공백은 조만간 '의료대란'으로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시민단체 등에서는 정부와 의료계가 대화에 나서 의료공백 사태를 해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정부 정책에 문제점도 있고, 강압적 태도로 일관하는 정부 태도에도 문제는 있다"며 "국민을 피해자·희생양으로 만드는 진료거부로 맞서지 말고, 업무복귀 후 국민들의 신뢰와 공감을 바탕으로 대화를 통한 의료개혁 해법 마련에 나서달라”고 호소했다.

녹색정의당은 의사 집단행동 사태가 의료대란으로 악화되지 않도록 하는 3대 해법으로 '국민참여 공론화위원회 설치, 지역 공공의대 설립 등 공공의료 확충, 의사 집단행동 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 등을 제시했다. 

나순자 녹색정의당 의료돌봄통합본부장은 "의사인력 확충문제는 단지 의사와 정부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며, 의료소비자로서 국민이 직접 참여하는 숙의 민주주의 공론의 장이 열려야 한다"며 "국민참여 공론화위원회’에서 1개월 이내 모든 쟁점을 숙의토론하고 결정하자"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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