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 보완지침 발표·시행
전문간호사에 문진·초음파·진단서 초안 작성 등 허용
응급의학회 “간호사 단독 전문심장소생술 시 국민 생명·안전 심각한 우려”
간협 “지금껏 병원서 간호사에 불법진료 강요...법적 보호 기틀 마련”

[라포르시안] 오늘(8일)부터 간호사가 자격과 교육 및 숙련도에 따라 문진, 약물 처방, 진료기록 초안 작성, 검사 및 판독 의뢰 초안 작성, 전원 의뢰서 초안 작성, 응급약물 투여 등을 합법적으로 할 수 있게 됐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7일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 보완지침을 공개하고 8일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전공의 사직에 따른 의료 사태의 장기화에 대비하고, 의료기관 내 간호사들의 행위에 대한 사법 부담를 완화하기 위해 간호사들의 행위 영역을 확대·명시한 것이다.

이에 대해 대한의사협회는 충분한 교육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간호사가 의사의 업무 일부를 수행할 경우 법적 책임 문제 등이 우려된다며 실효성이 없는 지침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대한간호협회는 이미 상당수 의료기관에서 관행적으로 간호사에게 불법으로 의사 업무를 대행을 강요해왔다며, 이번 지침을 통해 간호사의 업무 보호 체계의 기초가 마련됐다고 평가했다.

정부는 지난달 27일 ‘진료지원인력 시범사업 지침’ 발표를 통해 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인한 의료공백 상황에서 진료지원 간호사가 법적으로 보호받고,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종합병원 및 수련병원 간호사를 대상으로 ‘진료지원인력 시범사업’을 실시에 들어갔다. 그러나 당시 지침에서 명시한 업무 구분이 명확치 않아 의료 현장의 혼란이 가중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간호협회 관계자는 “지침에 따르면 의료기관장이 내부에 위원회를 만들고 의료 분담 이후 간호부서장과 협의하고 현장 간호사한테 업무 수행을 시키라고 돼 있다”며 “그러나 무엇을 할 수 있고, 어느 행위는 안 된다는 점이 명확치 않아 간호사에게 사망선고까지 하게 시키는 경우도 등장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복지부는 현장의 애로사항을 반영해 보완지침을 마련했다. 복지부는 이번 보완 지침에서 간호사 위임 업무와 불가능 업무를 구분하고, 자격과 교육 및 숙련도에 따라 일반 간호사, (가칭)전담간호사, 전문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설정했다.

전문간호사에게 위임할 수 있는 행위로는 ▲문진·예진·병력 청취 등 단순 이학적 검사 ▲회진 시 입원환자 상태 파악 및 보고 ▲심전도 ▲초음파 ▲요역동학검사 ▲처방된 마취제 투여 ▲응급상황 심폐소생술 ▲응급약물 투여 ▲검사 결과 추이 확인 ▲환자·보호자 교육 및 상담 ▲환자 자조모임 운영 ▲진료기록·검사 및 판독·협진·진단서 초안 작성 등을 명시했다.

위임 불가 행위로는 ▲X-ray ▲관절강 내 주사 ▲방광조루술, 요로 전환술 ▲배액관 삽입 ▲대리 수술(집도) ▲골절 내고정물 삽입 및 제거 ▲전신마취·척추 또는 경막외 마취 ▲사전의사결정서 작성 ▲전문의약품 처방 등으로 규정했다.

관리, 감독 미비로 인한 사고 발생 시 의료기관장에게 최종 법적 책임이 있으며, 의료기관장이 간호사에게 업무를 추가로 지시하면 자체 보상토록 했다. 복지부는 시범사업을 모니터링을 거쳐 향후 제도화를 추진할 방침이다. 

의협 비대위는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이 실효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의협 비대위 주수호 언론홍보위원장은 라포르시안과의 통화에서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 보완지침은 전혀 실효성이 없다”며 “관리·감독 미비에 따른 사고가 발생하면 의료기관장이 최종 법적 책임을 져야 하는데 어느 의료기관장이 그런 책임을 지고 싶겠나”라고 말했다.

주수호 위원장은 “지침에서는 간호사가 응급상황에서 심폐소생술이나 약물투여, 전문간호사와 전담간호사의 경우 위임된 검사·약물의 처방을 할 수 있고, 진료기록이나 검사·판독 의뢰서, 진단서, 전원 의뢰서, 수술동의서 등 각종 기록물의 초안을 작성할 수 있도록 돼 있다”며 “그 행위로 인해서 환자가 잘못돼 환자에게 문제가 생기면 의료기관장뿐 아니라 행위 당사자인 간호사에게도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텐데 그런 부담을 안고 어느 간호사가 (위임)업무를 할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의료기관이 늘어난 인건비를 감당하기도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주 위원장은 “간호사에게 업무를 추가로 지시하면 의료기관이 자체 보상토록 하고 있다”며 “전공의의 경우 일주일에 많게는 100시간씩 일을 하는데, 전공의 1명이 하던 일을 간호사 여러명이 나눠서 하게 될 것이다. 병원이 업무 확대로 인해 늘어난 간호사 인건비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는 지금 불가능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간호사가 법적 허용 범위 내에서 일을 할 수 있냐 없냐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이뤄지기 어렵다는 의미”라며 “실효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이 사업을 계속 밀어붙인다면 이는 의사들이 의업을 포기해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생기는 것이다. 정부가 문제를 해결하겠다면서 오히려 문제를 더 만들고 있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대한응급의학회 역시 정부가 발표한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 보완 지침’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응급의학회는 환자 안전에 심대한 영향을 주는 의료 행위인 기관 삽관과 발관, 응급상황 심폐소생술과 응급 약물 투여, 중심정맥관 삽입, PICC(말초삽입 중심정맥 카테타) 삽입 등은 진료지원행위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응급의학회는 “흉부 압박, 양압 환기(인공 호흡), AED(자동식 제세동기, 심장충격기) 사용과 같은 기본심폐소생술(BLS)은 의사 지시나 처방 없이도 심정지 환자가 발생하면 지금도 바로 임상 현장에서 시작하고 있다”며 “그러나 기본심폐소생술 범위를 넘어서는 전문심장소생술을 간호사가 단독으로 기도 삽관, 응급 약물을 투여하는 의료 행위를 한다는 것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심각한 우려를 끼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기도 삽관이나 중심정맥관 삽입 등의 고도의 의료 행위는 현재도 임상 현장에서 응급의학과 전문의를 포함한 일부 임상과 의사 선생님들만이 시행하고 있다는 것이 응급의학회의 설명이다.

응급의학회는 “해당 지침에서 ‘의사의 전문적 판단이 있은 이후에 의사의 위임 또는 지도에 따른 행위는 간호사가 수행 가능’이라고 명시돼 있지만, 모호하거나 포괄적인 의미의 의사의 위임이나 지도 하에서 간호사의 단독적인 의료 행위 수행은 의료 현장에 혼란을 주고 환자 안전에 위해를 줄 수 있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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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간호협회는 의료공백 상황에서 환자를 지키기 위한 간호사들의 업무에 법적 보호장치를 마련코자 한 협회의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는 입장이다.

간협 관계자는 “협회가 불법진료 신고센터 등을 통해 주요 병원들이 현재 간호사 업무 분담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정리해서 세부 가이드라인안을 만들고 지난달 29일 복지부에 전달했고, 이후 복지부와 간협의 논의 끝에 이번 안이 나오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전공의들이 현장을 떠난 이후 지난달 26일까지 현장 간호사들이 업무적으로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내용의 신고가 간협으로 들어왔으나, 27일부터는 일부 의료기관들이 간호사가 하면 안 되는 행위까지 간호사에게 시킬 수 있다고 판단해 강요하고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며 “간협은 조속하게 세부 가이드라인을 안을 만들면서, 일반간호사와 (가칭)전담간호사, 전문사의 역할을 구분해달라고 정부에 요청한 것이고, 그 내용이 복지부 가이드라인에 담겼다”고 전했다.

간호사가 의사 업무를 위임받기 위해 충분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지적에 대해선 “이미 상당수 의료기관이 간호사에게 터무니없이 (의사의)업무를 위임하고 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는 “지금까지 여러 의료기관에서 기준과 교육도 없이 관행적으로 간호사에게 의사 업무를 강요하고 수행토록 했다”며 “이번 지침을 통해 간호사의 자격, 교육, 숙련도에 따라 수행 가능 업무 기준을 만들었다. 이 자체가 간호사 업무 보호 체계의 기초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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