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노조, 간호사 업무범위 확대에 우려 표명
"사회적 대화 통한 진료 정상화가 올바른 진료공백 해소책"

[라포르시안] 전공의 집단사직 사태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오늘(8일)부터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 보완 지침’ 시행으로 병원 내에서 간호사 업무범위가 대폭 확대된다. 자격과 교육 및 숙련도에 따라 전문간호사는 심전도와 초음파 검사, 진단서 초안 작성 등 89개 진료지원행위가 가능해진다. 

그러나 간호사 업무범위 확대가 전공의 집단행동에 따른 진료공백 해소책이 될 수 없으며, 오히려 환자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면허와 자격, 교육과 훈련에 관한 법적·제도적 장치도 만들지 않고 간호사들에게 의사업무를 무제한 허용하는 것은 혼란과 갈등만 부추길 것이란 우려다. 

보건의료노조(위원장 최희선)는 8일 성명을 내고 "전공의들의 진료거부로 발생한 진료공백을 해소하기 위한 한시적 비상대책이라고 하지만, 올바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며 "전공의 진료거부로 인한 의료공백을 메우기 위해 수술 집도와 마취, 전문의약품 처방 등 일부를 제외하고 환자생명과 직결된 고난도·고위험 시술까지 의사업무 중 간호사가 할 수 있는 업무를 무제한으로 허용함으로써 환자생명을 심각하게 위협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7일 공개한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 보완지침'에서 전문간호사와 전담간호사(PA간호사)에게 수술 부위 봉합과 매듭, L-tube(비위관) 삽관, Tube irrigation(세척), 흡인드레싱(curavac), 중심정맥관 관리, 동맥혈 채취, 석고 붕대, 부목, 복합 드레싱, 체외 충격파 쇄석술, 유치 도뇨관(foley catheter) 삽입 등을 허용했다. 검사·약물 처방과 진료기록, 검사 및 판독 의뢰, 협진 의뢰, 진단서, 전원 의뢰서, 수술동의서, 검사 및 시술 동의서, 수술기록과 마취기록 초안까지 전문간호사와 전담간호사 명의로 작성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일반간호사도 응급상황에서 심폐소생술이나 응급약물 투여, 마취제 투여, 코로나19 진단, A-line을 통한 동맥혈 채취, 유치 도뇨관(foley catheter), 혈액배양검사, 심전도 및 초음파 검사 등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사실상 의사업무가 무제한으로 간호사에게 전가된다. 이럴 거라면, 차라리 간호사에게 의사면허를 발급하라'는 게 의료현장 간호사들의 목소리"라며 "의사 진료거부로 인한 진료공백을 해소해 환자생명을 살리겠다는 정책이 오히려 환자안전을 위협하고 심각한 의료사고를 유발할 우려가 높다"고 주장했다.

의료기관장이 간호부서장과 협의를 거쳐 간호사 업무범위를 설정할 수 있도록 재량권을 허용함에 따라 의료기관마다 다른 기준이 적용될 수밖에 없고, 이렇게 되면 진료에 혼선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보건의료노조는 "의료현장 진료공백 해소를 위한 한시적 시범사업이라 해도 정부는 간호사의 업무범위 가이드라인만 제시할 뿐이고, 업무범위 결정권은 의료기관장에게 맡겨진다"며 "간호사 업무범위 설정을 의료기관장 재량에 맡기면 업무범위 혼란과 진료 혼선을 피할 수 없게 되고, 결국 의료기관의 가장 중요한 목표인 환자안전과 양질의 의료서비스 제공에 역행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무엇보다 의사업무를 간호사가 수행하는 과정에서 의료사고가 났을 때 간호사가 제대로 보호받을 수 없다는 점도 지적했다. 의료사고에 대한 면책이 명확하게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간호사가 의사업무를 대리하는 불법의료행위자로 내몰리게 된다는 것이다.

보건의료노조는 "정부는 관리·감독 미비로 인한 사고시 최종적인 법적 책임은 의료기관장에게 있다며 법적 책임을 의료기관장에게 떠넘겼다"며 "의료사고 소송은 의료기관만이 아니라 개인에게도 제기되기 때문에 설사 의료기관장이 법적 책임을 진다고 하더라도 의사업무를 수행한 간호사도 소송을 피할 수 없다. 결국 간호사는 불법과 합법의 경계에서 의사업무를 수행하면서 법적 책임에 대한 불안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보건의료노조는 3월 7일 기자회견을 열고 조속한 진료 정상화를 위한 사회적 대화를 제안했다. 
보건의료노조는 3월 7일 기자회견을 열고 조속한 진료 정상화를 위한 사회적 대화를 제안했다. 

전공의 집단사직에 따른 의료료공백을 메우려고 땜질처방을 남발할 게 아니라 정부가 필수·지역·공공의료 붕괴 위기 해법 마련을 위한 사회적 대화를 선제적으로 제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의사단체들이 사회적 대화 제안을 수용하면서 국민을 위해 의료현장에 복귀하겠다는 결단을 내릴 때 진료공백을 해결할 수 있다"며 "의사업무를 간호사에게 무제한 허용하는 정책을 놓고 정부와 의사단체가 서로 논쟁할 때가 아니라 진료공백을 빨리 해결하기 위해 진료정상화를 결단하고 사회적 대화에 나서야 할 때"라고 거듭 강조했다. 

대한의사협회를 향해서도 "'정부가 불법의료행위를 양성화하려 한다”고 핏대를 올릴 것이 아니라 의료현장 불법의료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의대 증원정책을 수용해야 한다"며 "진료공백을 해결하기 위해 국민의 생명을 책임진 선배의사답게 전공의들이 조속히 업무에 복귀하도록 설득하고 안내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한편 보건의료노조는 지난 7일 기자회견을 열고 '필수의료·지역의료·공공의료 위기 해법 마련을 위한 사회적 대화'를 제안했다. 

기존 의정협의체나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의료개혁특별위원회가 아닌 '필수의료·지역의료·공공의료 위기 해법 마련을 위한 사회적 대화기구'를 구성하고, 여기에 의사단체와 정부는 물론 이해당사자가 폭넓게 참가해 필수의료·지역의료·공공의료 위기의 실질적 해법을 사회적 합의로 마련하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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