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정총서 '의료전달체계 확립' 결의문 채택해 놓고...임총서 개선 논의 중단 결정

지난 2월 10일 열린 대한의사협회 임시대의원총회에서 집행부가 마련한 의료전달체계 개선안에 대한 찬반 투표가 진행되고 있다.
지난 2월 10일 열린 대한의사협회 임시대의원총회에서 집행부가 마련한 의료전달체계 개선안에 대한 찬반 투표가 진행되고 있다.

[라포르시안] 대한의사협회 대의원회가 집행부가 마련한 의료전달체계 개선안에 반대하기로 의결했다.  

의협 대의원회는 지난 10일 열린 임시대의원총회에서 집행부의 의료전달체계 개선안에 대한 찬반 투표를 진행해 찬성 6명 반대 120명 기권 4명이라는 압도적 표차로 집행부가 마련한 의료전달체계 개선안을 용도 폐기했다. 

이날 임총에서 의협 조현호 의무이사는 의료전달체계 개선 협의체 관련 보고를 통해 의료전달체계 개선 필요성을 강조했다. <관련 기사: 의협·병협, 진통 끝에 의료전달체계 개선 협의안 마련>

추무진 회장도 "회비를 내기도 어려운 회원들을 생각해달라.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깊이 생각했고, 그 결과 의료전달체계 개선을 해야겠다는 결론을 얻었다"면서 "전달체계 개선이 안 되면 대형병원 쏠림 현상을 막을 수 없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대의원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찬반투표에 앞서 진행된 토론에서는 반대 취지의 발언이 쏟아졌다.  

찬반토론에서 경기도의사회 소속 이동욱 대의원은 "전달체계 개선 논의와 관련해 회원들은 많은 의구심을 갖고 있다. 그런데 집행부는 '이번이 아니면 못한다'며 홈쇼핑에서 물건 팔듯 하며 회원들을 협박했다"며 "임기도 얼마 남지 않은 집행부가 무리하게 밀어붙이기보다 차기 집행부에 넘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공의협의회 소속 남기훈 대의원도 "의료전달체계 개선과 관련해서 의료계 내부에서 한목소리가 나와야 하는데 의견이 분분하다"며 "그런데도 집행부는 복지부와 함께 우리를 협박했다"고 성토했다.

압도적인 표차로 '반대'가 결정되자 임수흠 의장은 "여기서 논의하고 의결한 것을 고려해서 회무를 수행해야 그나마 큰 분란이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의원들의 뜻을 거스르며 의료전달체계 개선 논의를 하지 말라는 의미다. 

결국, 추무진 회장은 "임기 중 전달체계 개선 논의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병원협회가 '의원급 병상 허용은 의료전달체계 개선 본연의 목적을 벗어난 것으로, 동의할 수 없다'고 해서 마침표를 찍어버린 전달체계 개선 논의에 대못을 박아버린 셈이다. 

하지만 이날 임총에서 의료전달체계 개선 권고문에 반대하기로 결정한 것은 의협 대의원회의 '자기부정'과 다를 바 없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의료전달체계 개선은 매년 의협 대의원회 총회가 열릴 때마다 건의안건으로 올라오는 단골 메뉴 중 하나다. 작년 4월에 열린 의협 정기대의원총회에서도 '일차의료 중심으로 의료전달체계 확립' 등의 내용을 담은 결의문을 채택한 바 있다.

그때마다 대의원회는 집행부에 의료전달체계 개선을 추진하라고 주문했다. 즉 의료전달체계 개선은 대의원회 수임사항이다.   

'문재인 케어' 관련해서도 의료전달체계가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비급여의 전면급여화를 하면 상급종합병원 쏠림 현상이 더욱 심화돼 중소병의원은 고사할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막상 판이 벌어지니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판을 엎어버린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의협 대표와 협상을 하겠느냐는 자조의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로 김윤 서울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지난 2년간 전달체계 개선협의체에 참여한 의협 병협 대표 4명은 유령이었나 보다. 의협 병협은 제발 다음 번엔 유령 말고 사람을 대표로 보내라"고 꼬집었다.   

대의원회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의협이 너무 정치적인 조직으로 변질되었다. 그래서 정치적 판단으로 인해 큰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의료전달체계 개선 논의가 대표적인 사례가 될 것"이라며 "의료전달체계를 개선하라고 할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어떤 논의도 하지 말라는 대의원회의 이율배반적 행위를 보니 의료계의 앞날이 더욱 걱정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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