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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주도 성장 강조한 문재인 정부, '상병수당' 외면은 모순[뉴스&뷰] 질병으로 인한 소득상실 보전...노동·시민사회 지속적으로 도입 촉구

[라포르시안] 지난 25일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이 발표됐다. 대기업과 제조업.수출에 집중됐던 과거의 경제성장 패러다임을 '사람 중심'으로 전환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앞서부터 강조해온 ‘소득주도 성장’을 위한 보다 구체적인 실천 방안인 셈이다. 경제정책의 중점을 국민의 인간다운 삶, 기본생활 보장에 두고 가계소득 증대를 성장의 새 원동력으로 활용하겠다는 정책방향을 담았다. 

소득주도 성장을 위해 가계의 실질 가처분 소득 증대를 위해서 최저임금 시급 1만원 달성을 지원하고, 주거비 의료비 교육비 등 핵심생계비 부담을 덜어주는 정책이 추진된다.

취약가구의 적정소득을 보장하기 위한 아동수당, 청년구직촉진수당, 기초연금 인상 등의 생애주기별 맞춤형 소득지원제도도 운영된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도 가계의 의료비 부담을 덜어준다는 점에서 소득주도 성장을 실현하는 데 필수적인 정책으로 꼽았다.

이렇게 가계의 실질 가처분 소득 증대를 유도하고, 사회안전망을 확충함으로써 '사람 중심'의 소득주도 성장 기반을 닦겠다는 게 문재인 정부가 제시한 경제정책 방향이다.

다만 소득주도 성장을 사회안전망 확충 방안에서 미흡한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상병수당' 도입이 빠졌다는 점이다.

한국, ILO 사회보장 국제기준에 미달...상병·아동수당 미도입  

한국이 1991년 12월 가입한 국제노동기구(ILO)는 '사회보장에의 최저기준에 관한 조약'(102조약)을 통해 '모든 질병에 대해 그 원인을 묻지 않고 (급여를) 지급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한국은 국제노동기구에 가입한지 25년이 더 지났지만 아직도 상병수당 제도를 도입하지 않았다.

그나마 국제노동기구가 권고한 사회보장을 위한 최저기준에 미달하는 한 가지였던 아동수당은 2018년부터 도입하기로 했지만 상병수당에 대해서는 계획이 없다.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 등 대부분의 국가는 의료보험이나 다른 공적보장 형태로 상병수당을 제공한다.

상병수당은 산업재해 같은 업무상 질병 이외에 일반적인 질병 및 부상으로 치료를 받는 동안 상실되는 소득 또는 임금을 현금수당으로 보전해 주는 급여다.

소득 양극화와 건강불평등이 심해지면서 가난해서 질병에 걸리고 질병에 걸려 더욱 가난해지는 '질병과 가난의 악순환' 구조가 고착화 되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꼭 필요한 사회보장제도가 바로 상병수당이다.

현행 국민건강보험법에 상병수당 도입 규정이 명시돼 있다. 국민건강보험법 제50조(부가급여)는 '공단은 이 법에서 정한 요양급여 외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임신·출산 진료비, 장제비, 상병수당, 그 밖의 급여를 실시할 수 있다'고 규정해 놓았다.

건보법에 명시된 부가급여 가운데 임신·출산 진료비, 장제비는 이미 현물급여 방식으로 지원하고 있지만 상병수당은 도입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건강보험제도가 사회보장제도로써 본연의 역할을 다 하려면 상병수당 도입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심지어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2006년 작성한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 권고안'을 통해 상병수당 의무급여화를 통한 건강보험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지만 도입 논의는 흐지부지됐다.

지난 2월 24일 오전 10시부터 신촌역 인근 르호봇G캠퍼스에서 양승조 국회 보건복지위원장과 한국환자단체연합회 공동주최로 제6회 ‘환자포럼’이 열렸다.

노동계·시민사회, 지난 대선 때 '상병수당 도입' 촉구했지만... 

지난 대선 때도 시민사회는 물론 보건의료계, 노동계 등에서 상병수당 도입을 촉구했다. 당시 심상정 정의당 후보만 유일하게 상병수당을 도입하겠다고 공약했고, 나머지 후보들은 별다른 언급이 없거나 검토하겠다는 수준에 머물렀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도 상병수당 관련 내용은 없다.  

건강권 보장을 위한 시민운동단체인 건강세상네트워크는 '제19대 대통령선거 3대 핵심요구 및 8대 정책과제'를 통해 "의료비 걱정 없는 보편적 건강보장을 위해 연소득(가처분 소득) 대비 10% 이상을 의료비로 지출하는 가구에는 의료비 본인부담에 따른 소득 상실분만큼 현금급여를 지급해야 한다"고 재안한 바 있다. 

건강권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도 지난 대선 때 각 정당 대선후보 캠프에 전달한 '19대 대통령선거 보건의료 정책요구'를 통해 상병수당 도입을 촉구했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은 "OECD 국가 중 스위스, 미국을 제외하면 모든 나라에서 질병으로 인한 소득감소를 보전하는 상병수당을 지급하고 있다"며 "상병수당의 조속한 도입은 질병으로 인한 생활임금을 국가가 보장함으로서 질병으로 인한 가계 파탄과 가족 붕괴를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이라고 지적했다.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는 19대 대선 정책 요구를 발표하면서 '병원비 걱정 없는 사회 실현'을 위한 과제로 상병수당 도입을 제안한 바 있다.

환자단체에서도 상병수당 도입을 적극 요구하고 있다.

한국환자단체연합은 대선을 앞두고 발표한 '환자가 원하는 7대 보건의료정책'을 통해 "중증질환을 치료하는 일정기간 동안 건강보험 재정에서 상병수당을 제공함으로써 질병과 빈곤의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상병수당 도입을 촉구했다.

노동계도 상병수당 도입을 요구했다. 한국노총은 지난 대선 때 사회안전망을 강화하기 위해 아동수당·청년수당·상병수당 등 사회수당 도입을 포함한 정책요구안을 발표했다. 

상병수당 도입에 대한 여론은 긍정적인 편이다. 지난 대선에서 참여연대가 각 정당의 후보자들이 관심을 기울여야 할 주요 사회정책을 파악하는 여론조사를 실시하면서 상병수당 도입에 관한 찬반을 물은 결과, 찬성한다는 응답이 76.1%로 압도적으로 높았다.

지난 7월 19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국정과제 보고대회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 사진 출처: 청와대 홈페이지

"상병수당, 정부 의지만 있다면 언제든 도입할 수 있어"

대선을 앞두고 각계각층에서 상병수당 도입을 촉구했음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대통령은 이를 공약으로 제시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이 대선 때 기본소득 보장에 높은 관심을 보였고, 의료비 부담 완화와 소득양극화 등을 개선하는 데 적극적인 의지를 보였기 때문에 상병수당 도입을 공약으로 제시할 것이란 기대도 컸다.

사람 중심의 소득주도 성장 정책을 추진하면서 꼭 필요한 사회안전망인 상병수당 도입에 적극 나서지 않는 건 의아한 일이다.

심지어 국회에서도 상병수당 도입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을 정도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올해 1월 작성한 '주요국의 상병수당 제도 도입 논의의 쟁점'이란 보고서를 통해 "빈곤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 소득 손실을 사회보장 차원에서 보장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며 " 34개 OECD 국가 중 미국과 한국만이 공적 상병수당 제도가 없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서 상병수당 도입이 빠진 부분이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방안을 추진하면서 건강보험법에도 명시돼 있는 상병수당 도입을 추진하는 않는 대목은 여러 모로 의구심을 자아낸다.

일각에서는 민간보험업계를 고려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하고 있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질병으로 인한 소득상실을 보장하는 상병수당이 실손의료보험 이외에 질병으로 인한 소득 손실을 보전하는 정액형 민간보험상품에 큰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며 "이런 이유로 민간보험업계는 상병수당 도입에 부정적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시민사회는 최근 임명된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상병수당 도입에 대한 입장을 공개적으로 묻기도 했다.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는 지난 17일 박능후 장관 후보자에게 보낸 공개 질의서를 통해 "상병수당 도입은 2007년 국가인권위 권고사항이며, ILO 권고사항이기도 하다"며 "2000년 국민건강보험법을 개정하면서 ‘부가급여’로 언제든지 정부의 의지만 있다면 도입할 수 있었던 제도였지만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이를 외면해 왔다"고 지적하며 상병수당 도입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이 질문에 박능후 장관의 입장표명은 없었다.

문재인 정부가 국정운영에서 중점을 두고 있는 양극화 해소에 부합하는 정책이 바로 상병수당 제도라는 점에서 도입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가천대의과대학 임준 교수(예방의학과)는 "상병수당 제도 도입은 현재 한국 사회가 당면한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 이해하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더는 질병으로 인한 빈곤 문제를 방치하지 말고 최소한의 건강권을 실현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는 점을 인식하고 전향적인 접근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김상기 기자  bus19@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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