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 외 일반적 질병·부상 치료시 상실된 소득 보전…ILO ‘사회보장 최저기준 조약’ 위반하는 한국

이미지 출처: 건강보험공단 초기화면 이미지 갈무리.

[라포르시안]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산업재해로 인정된 '직업병'에 대해서만 요양급여와 휴업급여가 보장된다.

그러다 보니 산재와 관련이 없는 개인질병으로 직장을 잃었을 경우에는 막대한 의료비 부담과 함께 실직으로 인한 소득상실의 이중고를 겪기에 십상이다.

이런 문제 때문에 의료보험제도를 운영하는 대부분의 선진국은 '상병수당' 제도를 운영한다.

상병수당이란 업무상 질병 이외에 일반적인 질병 및 부상으로 치료를 받는 동안 상실되는 소득 또는 임금을 현금수당으로 보전해 주는 급여다.

유럽국가의 경우 의료보험을 도입한 취지가 '소득 안정'이었다. 그래서 질병으로 인해 상실된 소득을 보상하는 질병수당이 먼저 시행됐고, 그 이후에 의료비 보장이 생겼다.

이들 국가와 달리 한국에서는 상병수당이란 용어가 생소하다. 심지어 보건의료 전문가들조차 상병수당 개념을 낯설어 한다.

국제노동기구(ILO)는 1952년 열린 국제 노동회의에서 '사회보장에의 최저기준에 관한 조약'(102조약)을 채택했다.

이 조약은 의료, 질병, 실업, 노령, 산업재해, 가족, 출산, 장애, 유족 등 9개 부문에 있어서 적용될 사고의 종류와 피보험자의 범위 등에 관한 최저기준을 정해 놓고 있다. 특히 '모든 질병에 대해 그 원인을 묻지 않고 (급여를) 지급하도록' 규정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 등 대부분의 국가는 의료보험이나 다른 공적보장 형태로 상병수당을 제공한다.

독일과 프랑스의 경우 최고 36개월까지, 일본은 사회보험인 피용자보험 가입자가 질병 발생으로 근로가 불가능할 경우 최장 18개월까지 상병수당을 제공하고 있다. 심지어 OECD 회원국이 아닌 대만에서도 상병급여를 도입했다.

이들 국가에서 상병수당을 어떤 방식으로, 누구에게 보장하는지 궁금하면 건강보험공단 홈페이지에 소개돼 있는 '외국의 건강보험제도'를 확인해 보면 된다.<'외국의 건강보험제도' 바로가기>  한국의 건강보험제도에도 상병수당의 도입 규정이 명시돼 있기는 하다. 현행 국민건강보험법 제50조(부가급여)는 '공단은 제50조(부가급여) 공단은 이 법에서 정한 요양급여 외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임신·출산 진료비, 장제비, 상병수당, 그 밖의 급여를 실시할 수 있다'고 규정해 놓았다. 이 중에서 임신·출산 진료비, 장제비는 현물급여 방식으로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상병수당의 경우 도입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한 채 거의 사문화 된 상태다.

한국은 1991년 ILO에 가입했지만 아직까지 사회보장에의 최저기준에 관한 조약을 지키지 않고 있는 셈이다. 지난 1994년에는 상병수당을 실시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건강보험을 실시하지 않는 국가로 분류되기도 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2006년 작성한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 권고안'을 통해 상병수당 의무화를 제시했다.

인권위는 권고안에서 "건강보험법 제45조에 상병수당을 임의급여로 규정하고 있으나 그 시행령에 임의급여를 장제비와 본인부담보상금 두 종류로만 한정하여 사실상 상병수당의 지급이 제외되어 있다"며 "상병수당의 의무급여화 등을 통한 건강보험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2012년 3월 정부합동으로 마련한 '제3차 근로복지증진 기본계획'에도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해 상병휴직제도를 마련하겠다는 계획이 들어있었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다.

상병수당제도가 없는 탓에 중증질환으로 노동력을 상실하고 직장을 잃으면 빈곤층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건강보험 보장성이 낮은 상태에서 질병으로 인한 높은 진료비 부담과 소득 상실의 이중고는 빈곤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비정규직을 비롯해 자영업, 특수고용직 노동자 등 근로빈곤층과 저소득계층의 경우 질병으로 소득을 상실할 경우 '메디컬 푸어'(Medical Poor)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건강보험 재정의 누적적립금이 작년 말 기준으로 17조원에 육박하면서 이 돈을 의료보장성 강화에 투입해야 한다는 요구가 쏟아지고 있다. 특히 상병수당을 도입해야 한다는 요구도 높다.  의료민영화·영리화 저지와 의료 공공성 강화를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등의 시민단체는 "한국의 건강보험은 전 세계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의료서비스 제공만으로 이루어진 현물급여 중심"이라며 "가장 중요한 의료보장인 상병수당이 없어 수많은 국민들이 아파도 소득이 없어져서 일터에 나가거나 조기에 퇴원하는 나라로, 상병수당의 도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들 단체는 "정부는 건강보험에 대한 국고지원 축소를 획책하지 말고, 국고지원을 확대하여 상병수당 도입과 전면 의료비상한제 도입 등의 보장성 강화 정책을 추진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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