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 의료체계' 구축 제도화 팔걷어...의료계·시민단체 "감염병 재난 빌미로 의료영리화 추진" 비난

[라포르시안]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비대면 서비스 활성화가 정책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보건의료 분야에서 의사대 환자 간 원격의료 활성화를 둘러싼 갈등이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19일 의료계에 따르면 정부는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한시적으로 전화상담 · 처방을 허용한데 이어 코로나 재유행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비대면 진료체계(원격의료) 구축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전화상담·처방건수는 시행초기에는 한달 동안 2만여 건에 그쳤지만 이후 가파르게 늘면서 5월 5일을 기준으로 총 22만 2000건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를 앞세워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 등 경제부처가 나서 원격의료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청와대에서도 전화상담.처방이 코로나19 사태에서 효과적인 방역 수단으로 확인됐다면서 원격의료 활성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런 정부 움직임에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곳은 대형병원들이다.

서울대병원은 지난 3월에 문경 소재 인재원을 대구·경북지역 경증 코로나 환자를 위한 생활치료센터로 전환하면서 입소한 환자에게 중앙모니터링센터의 전화 진료, 화상 상담 등의 서비스를 제공했다.

문경생활치료센터 입소환자가 센터 내 활력징후 측정장비를 통해 심전도, 혈압, 산소포화도, 심박수, 호흡수 등을 측정하면 이 수치가 곧바로 서울대병원 병원정보시스템에 공유돼 의료진이 실시간으로 환자상태를 모니터링 할 수 있도록 했다.

경기도 생활치료센터에 의료지원 중인 분당서울대병원의 중앙모니터링본부 모습, 의료진이 영상통화를 통해 환자의 건강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사진 제공: 분당서울대병원
경기도 생활치료센터에 의료지원 중인 분당서울대병원의 중앙모니터링본부 모습, 의료진이 영상통화를 통해 환자의 건강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사진 제공: 분당서울대병원

명지병원은 지난달에 영상 감시 장비 개발 등 보안 솔루션 전문기업인 ITX엠투엠과 텔레메디신 및 재택의료 플랫폼 공동개발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에 따라 양 기관은 텔레메디신과 재택의료, 헬스로봇 등을 통한 의료분권화를 구현할 플랫폼의 공동연구 및 기술개발에 착수했다. 

인하대병원은 최근 헤셀, 한진정보통신과 비대면 의료서비스 및 데이터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김영모 인하대 의료원장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환자의 비대면 의료서비스가 점차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본다"면서 "이번 업무협약을 통해 의료기관 직접 방문이 어려운 환자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서비스가 개발되고, 개인정보 침해 논란을 없앨 수 있는 개인주도형 의료자료 관리 시스템이 정착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다들 쉬쉬하고 있지만 큰 병원들은 대부분 내부적으로 원격의료 시스템을 개발 중이거나 이미 개발한 상태"라고 귀띔했다. 

하지만 원격의료에 반대해 온 대한의사협회는 이런 움직임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의협은 지난 18일 전화상담과 처방을 전면 중단할 것을 요구하는 대회원 권고문을 냈다. 

의협은 "정부가 코로나19 국가재난 사태를 빌미로 원격진료, 비대면 진료의 제도화를 추진하는 것은 코로나19와 필수 일반진료에 매진하는 의사들의 등 뒤에 비수를 꽂는 비열하고, 파렴치한 행위"라고 비난했다.

의협은 "코로나19 사태에서 목숨 걸고 헌신하는 의사들에게 충분한 지원은 하지 못할망정 비대면 진료, 원격진료 등을 새로운 산업과 고용 창출이라는 의료의 본질과 동떨어진 명분을 내세워 진료 시행의 주체인 의료계와의 상의 없이 전격 도입하려 한다"며 정부를 향해 날을 세웠다.

시민사회단체에서도 원격의료 활성화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회경제위기 대응 시민사회대책위는 지난 15일 성명을 내고 "현재 병의원에서 하고 있는 비대면 전화상담은 한시적·제한적으로 용인되고 있는 조치이다. 예외적 전화진료로 인한 환자 안전과 건강 상의 부작용은 제대로 평가되지도 않은 상황"이라며 "환자들이 피해를 감수하고 있는 이런 비상 상황을 빌미로 원격의료를 제도화해 재벌·기업들의 숙원사업을 허용해주겠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이는 ‘재난자본주의’의 전형일 뿐"이라고 비난했다.

대책위는 "원격의료는 정부가 여러 차례 시범사업을 했지만 안전과 효과가 증명되지 않아 추진되지 못해왔던 대표적 의료영리화"라며 "삼성, LG, SK텔레콤 등 원격의료 기기와 통신기업들, 그리고 대형병원 돈벌이 숙원사업이지만 환자에게는 의료수준 향상 없이 의료비만 폭등시킬 제도"라고 지적했다.

코로나19 재유행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원격의료 활성화가 공공의료 확충이 시급하다고 촉구했다.

대책위는 "전국 지자체 4곳 중 1곳이 응급의료 취약지인 현실에서 원격의료가 무슨 소용인가. 오히려 노인과 취약계층에게 원격의료는 기술·정보 접근 장벽으로 의료불평등을 심화시킨다"며 "공공병상과 의료인력이 부족해 대구·경북에서 위기를 맞았던 나라다. 원격의료로 감염병을 진단하고 치료할 수 없다"고 했다.

한편 중기부는 강원 디지털헬스케어특구에서 이달 말부터 원격의료 실증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중기부는 최근 강원 디지털헬스케어특구사업자로 일차병원 7곳, 전문기업 2곳, 대학 4곳 등 13곳을 추가하는 사업계획 변경안을 승인했다.

강원 디지털헬스케어특구는 코로나19로 인한 의사와 환자 간 감염을 차단하고, 의료기관 접근이 어려운 산간벽지 고령·만성질환자 등에 대한 원격의료 실증사업을 실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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