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 의원, 응급의료법 개정안 발의…수용불가 사전고지제 등 도입
이형민 응급의사회장 “법안 내용 현실적 불가능, 현장 부담만 가중”
“응급의사회·의학회·의협 중심으로 복지부와 협의체 통해 해법 모색”

[라포르시안] 이른 바 ‘응급실 뺑뺑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구급대원의 병원 수용 여부 확인 절차를 없애고, 응급의료기관이 수용불가시 사전 통보토록 하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됐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를 비롯한 의료계는 이 법안이 응급의료 현실을 무시한 탁상 행정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응급실 뺑뺑이를 없애겠다는 명분 아래 실질적 문제는 방치된 채,현장의 부담만 가중시키는 법안이라는 것.
앞서 더불어민주당 김윤 국회의원은 지난 4일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응급환자 이송과 전원 과정에서 병원 간 수용 거부로 발생하는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하고 응급의료체계를 전면적으로 개편하기 위한 취지다.
개정안은 이송·전원·최종치료 개념을 법률에 명확히 정의하고, 진료권별 응급의료계획 수립을 위한 ‘응급의료진료권’을 신설하는 내용을 담았다. 또한 구급대원이 전화로 병원 수용 가능 여부를 일일이 확인하는 현행 절차를 삭제하고, 응급의료기관이 수용 불가 시 중앙응급의료상황센터에 사전 통보하도록 하는 ‘수용불가 사전고지제’를 도입했다.
중앙·권역응급의료상황센터와 119구급상황관리센터가 실시간으로 병원 수용 가능 여부와 진료 기능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도 의무화된다. 이와 함께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응급의료종사자에 대한 심리상담과 폭력 피해 시 보호·법률 지원을 제공하도록 규정했다.
보건복지부장관은 중앙응급의료상황센터와 권역응급의료상황센터를 설치·운영해 전국 단위 전원 조정과 응급의료자원 배분을 총괄하도록 하고, 응급의료기관의 24시간 당직체계 유지를 의무화한다. 특히 권역응급의료센터와 지역응급의료센터에는 응급실 전담 당직전문의 2인 1조 근무체계를 유지하고, 질환군별 전문의를 의무 배치하도록 했다. 응급의료종사자가 응급처치 및 의료행위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책임의 형사처벌 면제 조항을 임의 규정에서 필요적 규정으로 변경해 법적 보호를 강화했다.
법안을 대표발의한 김윤 의원은 “이송-전원-응급실-최종치료가 하나의 연속 체계로 작동할 수 있도록 법적 틀을 재정비하겠다”며 “응급환자가 병원을 전전하지 않고 신속하게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입법 취지”라고 전했다.
그러나 대한응급의학의사회는 해당 법안은 실효성이 없으며, 이 법안을 접한 의료진의 분노가 커지고 있다고 반발했다.

응급의사회 이형민 회장은 지난 5일 라포르시안과의 통화에서 ”법안이 발의된 후 응급의사회 내부를 비롯해 응급실 의사들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고 말했다.
이형민 회장은 “법안 핵심은 119 구급대원이 전화로 병원 수용 여부를 확인하지 않겠다는 것이고, 대신 수용 관련 정보를 중앙에서 총괄하겠다는 내용으로, 실질적인 목적은 응급실 뺑뺑이가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데 있다”며 “이런 방식으로는 절대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정부는 병원이 수용 불가 사유를 사전에 고지하도록 하지만, 이 제도는 실효성이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예를 들어 우리 병원이 소아 환자 불가라고 올리면 나머지는 모두 받아야 한다는 뜻이 되고, 반대로 가능이라고 올리면 외과 수술 수천 가지 중 어떤 수술이든 다 가능하다는 의미가 된다”며 “결국 불가를 올려도, 가능을 올려도 의미가 없는 제도”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제도를 운영하려면 각 병원마다 24시간 정보를 관리할 전담 인력이 최소 3~4명은 필요하다”며 “전국 400개 병원에 이런 인력을 두려면 막대한 비용이 발생한다. 결국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정책”이라고 말했다.
‘응급실 전담전문의 2인 1조 근무’ 의무 조항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전문의는 전국에 약 2,000명 정도인데, 2인 1조로 근무하려면 현재 인력으로는 불가능하다”며 “전국 400개 병원에 상시 대응 인력을 배치하려면 연간 약 500억 원이 소요된다. 외상센터 전체 지원금이 300억 원인 현실에서 이런 구조는 절대 현실적이지 않다”고 비판했다.
법안에서 응급의료기관이 응급환자를 수용할 수 없는 정당한 사유를 복지부령으로 정하도록 한 부분도 문제로 지목했다.
이 회장은 “응급의료기관별로 사례가 너무 다양해 정당한 사유를 일률적으로 규정할 수 없다”며 “2021년에 김성주 의원이 발의한 법안 이후 3년이 지나도록 복지부가 시행규칙을 만들지 못한 것도 같은 이유다. 긍정도, 부정도 명확히 할 수 없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법안이 제시한 방식으로는 응급실 뺑뺑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응급의료진의 부담만 늘어나 오히려 지금보다 더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 의료계 차원에서 복지부와 협의체를 구성해 근본적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회장은 “이번 법안은 응급실 뺑뺑이를 없애겠다거나 이송 시간을 단축하겠다는 성과 중심 접근만 강조하고 있다”며 “의료현장의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일방적 정책 추진”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치권은 응급실 뺑뺑이를 없애겠다고 말하지만, 정작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스스로도 모른다”며 “응급실 뺑뺑이가 없는 나라가 존재하지 않는데 우리나라만 없애겠다고 하는 건 현실을 모르는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무작정 '응급실 뺑뺑이'없애겠다고 할 것이 아니라 '응급실 뺑뺑이' 상황이 왜 발생하는지에 대해서 구조적 원인을 전문가들이 설명하고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이 뜻을 모아 의협과 공동 대응하기로 했다. 우리가 먼저 응급실 뺑뺑이를 줄일 수 있는 실질적 대안을 제시하고, 선제적으로 정책 협의체를 구성할 계획”이라며 “의협, 응급의학의사회, 응급의학회가 중심이 돼 복지부와 중앙응급의료상황센터까지 포함하는 협의체를 제안할 것이다. 법안에 대한 단순 반대가 아니라, 현장의 전문가들이 주도하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응급의사회는 오는 7일 서울 이촌동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현재 입법이 추진되는 응급의료법률 개정안 및 국무총리산하 범부처TF에 대한 문제를 제기할 계획이다. 응급실뺑뺑이 해결을 위한 대안을 제시하고 정부와의 논의체 구성 등을 촉구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