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민 응급의학의사회장 “법적 위험 줄이지 않으면 응급실 붕괴 불가피
”목표·현황·원인 파악 없이 ‘응급실 뺑뺑이’ 해법 요원해"
“응급실 의사들, 교도소 담장 위 아닌 이미 감방 안에 있는 셈”

[라포르시안] “엊그제 24시간 근무 동안 혼자 80명을 진료하면서 160여개의 검사 결과와 수백 장의 영상을 해독해야 했다. 이 중 단 하나의 실수하도 하면 법적 문제로 이어진다. 응급의학과 의사들은 이런 환경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게 아니라 이미 교도소 안에 들어가서 앉아 있는 셈이다. 문만 닫으면 갇히는 것이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 이형민 회장은 지난 1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응급의료체계 소생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이같이 토로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이형민 회장은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우리나라 응급의료가 의정 갈등 이전엔 100점 만점에 70점 정도였다면 지금은 40~50점대로 떨어졌다”며 “겉으로는 응급의료 시스템이 버티는 것처럼 보였지만 내부적으로는 이미 붕괴 조건에 들어갔다”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코로나19를 거치며 응급의학과 전공의의 수련 포기가 10%를 넘었고, 응급실을 떠나 개원하는 응급의학과 전문의 비율도 10%를 넘었다”며 “이후 2년간의 의정 갈등을 겪으며 상황은 더 악화됐다. 더는 버티지 못해 현장을 빠져나가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전공의 이탈로 상급종합 응급실의 진료가 축소됐고, 그 반사효과로 일부 지역 응급의료기관은 환자 수가 30~50% 증가했다. 상급종합병원으로 가야 할 환자가 2차 의료기관으로 밀려났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지난 2년 동안 지역 응급의료기관의 전문의들이 전공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수도권·대도시로 이동했다”며 “작년에 배출된 전문의가 약 30명, 올해도 40명 안팎이라 지역 내 응급의학과 구인난은 최소 내년 상반기까지 더 심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응급실을 '최종치료'를 제공하는 곳으로 바로보는 인식이 응급의료 현장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응급실은 응급처치 공간이지 최종치료를 모두 끝내는 곳이 아니다. 응급의료센터에 최종치료 책임을 씌우면 환자를 안 받는 문제가 더 심해진다”라며 “국민이 경증에서 요구하는 최종치료는 안과·이비인후과·피부과·성형외과 등 다과(多科)의 즉시 진료인데, 지역 응급의료기관이 이를 상시 수행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응급의료법 제48조의2의 응급환자 수용 거부 금지 실효성도 문제로 지목했다. 이 회장은 “법을 만들고 정당한 예회 사유 기준을 4년째 못 만들고 있다. ‘인력·시설·장비 부족’을 정당한 사유로 본다는 지침도 구체 기준이 없어 적용하기 어렵다”며 “결국 있으나 마나 한 조항이 돼 현장을 더 어렵게 만든다”고 말했다.

대한응급의사회 이형민 회장.
대한응급의사회 이형민 회장.

응급의료 현장의 법적 위험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이 회장은 “응급처치를 ‘정의된 기준’대로 제공했을 때 그에 참여한 의료진을 면책해야 한다”며 “미국은 1990년대부터 EMTALA(응급진료법)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기준을 지키면 면책이 된다. 우리도 10년 걸리더라도 합리적 기준을 세워야 한다. 복지부 인사가 바뀔 때마다 EMTALA 얘기를 해왔지만 15년 가까이 매번 흐지부지됐다”고 토로했다.

응급실 과밀에 대해선 자리 부족의 문제가 아니다. 경증 환자의 상급병원 응급실 이용을 어떻게 조절할지의 문제로 규정했다.

그는 “서울권 대학병원의 경우 새벽 2~3시면 응급실 베드가 비어 있다. 환자를 못 보는 것은 구조 문제”라며 “환자 본인이 경증인 줄 알고 작은 병원에 갈 의향이 있어도 문 연 의료기관이 없으면 응급실로 올 수밖에 없다. 과밀을 초래하는 경증의 상급병원 이용을 어떻게 줄일지부터 설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증 환자가 119를 통해 응급실을 찾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119 유료화를 제안했다. 이 회장은 “작년 보건의료연구원 과제 결과를 보면 서울·경기에서 119가 데려오는 환자의 60%가 경증”이라며 “현장에서 병원 구간을 무료로 두면 도덕적 해이가 발생한다. 119 유료화가 답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반대로 병원 간 전원은 119가 공공책임으로 무료 수행해야 한다. 진정한 응급이면 사후 환급하면 된다”며 “공짜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도덕적 해이를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응급의료 정책 추진의 리더십 강화를 위한 콘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그 일환으로 중앙응급의료센터의 ‘청’급 격상을 주장했다.

그는 “전국 415개 응급의료기관을 대표하는 중앙응급의료센터가 국립의료원 산하 공공의료본부의 분과로 묶여 있다. 이렇게 해선 리더십이 설 수 없다”며 “중앙응급의료센터의 독립·격상이 필요하다. 이해관계자가 너무 많기 때문에 강력한 리더십 없이는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응급의료청’으로 격상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며 “아울러 현장의 의견이 정책에 상시 전달될 수 있는 실무 단위를 별도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법적 위험성 감소라고 밝혔다. 이 회장은 올 한 해만 해도 응급의학과 전문의 동료 수십 명이 개원했다. 더 이상 응급실에 못 있겠다고 한다“며 ”자신들이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게 아니라 이미 교도소 문을 열고 들어가서 앉아 있는 것과 다름없고, 밖에서 문만 닫으면 갇히는 것이라고 하소연한다“고 전했다.

그는 ”하룻밤에 수십명의 환자를 대하며 수백개의 검사 결과와 사진을 보고 단 하나의 실수라도 하면 법적으로 문제되는 현실을 누가 감당할 수 있겠나“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결국 응급처치와 최종치료를 분리하고, 면책 기준을 사회적 합의로 법제화하며, 취약지와 최종치료 인프라를 각기 다른 성격에 맞게 확충하고, 선진국형 이송체계를 확립해야 한다”며 “구체적 정책 개발을 위해 현장의 의견이 상시 전달되는 실무 단위를 만들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라포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