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민 응급의학의사회장 “작년 2월 이전 수준 돌아가려면 최소 10년 걸려”

[라포르시안] “지금 우리는 최선을 다해 막고 있지만, 물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새고 있다. 그것을 그것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그 물을 필요로 하는 환자들 뿐이다.”
최근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학술대회에서 만난 현장 응급의학과 의사들은 그들이 지금 마주하고 있는 응급의료 상황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현재 응급의료 현실이 통계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실질적인 붕괴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
김찬규 대한응급의학의사회 대변인은 전라북도의 2차 병원 응급의학과에서 근무하고 있다. 김 대변인은 “정부나 정치권 인사들은 작년의 초과 입원률이 크게 차이가 없었으며, 의정 갈등이 유의미한 사망자 수를 유발할 정도는 아니었다고 말하고 있다”며 “이는 현장의 의료진들이 노력했기 때문이다. 사망에 준하는 긴급한 문제들의 해결이 그전과 비슷하게 잘 이뤄졌기에 그런 수치로 나타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응급의료체계의 건전함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의료진 개인의 헌신과 부담으로 간신히 유지되고 있는 것이란 의미다. 그는 “현장에서는 장기적인 관리가 필요한 질환이나, 혹은 당장 수술이나 처치를 하지 않더라도 생명에는 큰 지장이 없지만 조금 더 신속히, 보다 나은 의료 자원이 투입됐을 경우 더 좋은 예후를 기대할 수 있는 환자들이 그렇지 못한 경우를 자주 목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이런 사례들은 통계상의 수치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현장에서 직접 대면하고 있는 의료진과 환자들은 분명히 다양한 의료의 질 저하 및 환경 악화를 체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 대변인은 “현재 응급의료 상황을 묻는 질문들이 많다. 의료진들은 최선을 다해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으나, 실상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물이 계속 새고 있다”며 “이를 실제로 체감할 수 있는 이들은 그 물을 필요로 하는 환자들뿐임을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국민의 지난해 의료사태에 비해 경각심이 약해지면서 응급의료 이용이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대변인은 “작년 의료 사태가 커지던 시점에 정부는 언론 등을 통해 응급실 이용 자제 메시지를 전달했고, 실제로 환자 수는 크게 줄었지만 지금은 경각심이 약해지면서 응급실 환자 수가 점차 다시 증가하고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 현장의 인력이나 자원은 작년과 다름없는 상태에 머물러 있어 의료진의 피로도와 부담은 점점 누적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환자가 이동할 병원이 없다. 상급병원도, 중환자실도 기능을 멈췄다”
전남 동부권에서 가장 큰 의료기관의 권역응급의료센터장을 맡고 있는 김재혁 대한응급의학의사회 정책이사는 응급의료체계가 기능을 상실해가고 있는 지역 의료 현실을 고발했다.
김재혁 정책이사는 “닥터헬기 도입 초기에 헬기를 탈 인력이 없었던 시절 전남으로 내려갔다”며 “내가 여전히 지역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너무 안타깝고 어려운 현실이 많고, 환자들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정책이사는 “하지만 근무 환경은 매우 열악하고 힘들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의료 환경의 급격한 변화가 진행되며, 입원 환자를 응급실에서 진료하고 중증환자는 중환자실 또는 일반 병실로 입원시켜야 하는데 그 시점부터 배후 진료과가 눈에 띄게 무너지는 것을 목격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응급의학과 의사인 내가 병원에 상주하며 퇴근하지 못한 채 진료를 이어가고 있다”며 “작년 한 해 동안 병원 밖을 나간 횟수가 10번도 되지 않았다. 현재도 이런 상황은 별다른 변화 없이 지속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특히 응급환자를 받아줄 병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김 정책이사는 “적절한 의료전달체계, 즉 응급의료 전달 체계가 정상 작동해야 하며, 병원의 수용 범위를 넘어서는 중증 환자들은 그에 맞는 병원으로 전원돼야 하고 해당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며 “그러나 상급종합병원들이 전공의를 중심으로 운영됐던 만큼, 이들이 이탈하면서 환자 수용력이 현저히 저하된 상태”라고 진단했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은 현재 국내 응급의료체계가 낙제점이라고 지적하며, 지난 2월 이전으로 되돌리기 위해선 최소 10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이형민 회장은 “누구나 언제든지, 어느 응급실을 방문하더라도 질 높은 응급 진료를 받고, 최적의 최종 치료까지 이어지는 상황을 100점으로 본다면, 작년 2월 이전 우리나라의 응급의료체계는 60~70점 수준이었다”며 “현재는 40~50점 수준에 불과하며, 이는 사실상 낙제 점수”라고 했다.
이 회장은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 이후 상급종합병원들은 본래 수행해야 할 중증 응급환자 치료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으며, 실제 상급종합병원의 환자 수는 절반 가까이 줄어든 상태”라며 “그 중증 환자들은 사라진 게 아니라 모두 2차급 병원으로 내려가고 있다. 이로 인해 전체 의료 질이 하향 평준화되고 있다. 하향 고착화라는 표현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응급의료 정상화란 지난해 2월 이전 수준인 60~70점 수준으로 복원되는 것을 의미한다”며 “그러나 그 과정은 결코 단기간에 이뤄질 수 없으며, 향후 최소 10년은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