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2)] 누군가의 희생으로 버티는 공공의료, 더는 거부합니다

지난해 윤석열 정부의 의대증원 갈등으로 시작된 전공의 이탈은 우리나라 의료현장을 위기로 내몰았고 그 결과 지역의료는 붕괴되었습니다. 응급환자들은 치료받을 곳을 찾지 못해 구급차에 아픈 몸을 의지한 채 대전에서 수도권으로 목숨을 건 사투를 이어갔습니다. 

전국의 모든 수련병원은 떠나간 전공의의 빈자리를 채울 수가 없어서, 병상 가동률이 곤두박질 쳤고 의료수입은 급감했습니다. 충남대병원의 경우 분원인 세종 충남대병원 건립 부채 때문에 병원 재정이 가장 열악한 국립대병원 중 하나였습니다.

떠나간 전공의, 의사 때문에 지난해 8월부터 응급실도 제한적으로 실시해 왔고, 올 초부터 순차적으로 응급실 운영이 정상화되는 중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급기야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사직으로 소아 전문 응급실은 3월부터 시간제, 요일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세종 지역의 아이들은 이제 아픈 시간조차 응급실 운영과 맞춰야 하는 것이 지금 지역의료의 현실입니다.

지속된 의정갈등으로 모든 국립대병원은 비상경영을 선포하고, 긴축재정에 돌입했습니다. 충남대병원은 센터 내 통폐합 확대, 전 직원 대상 무급휴직, 명예퇴직 신청자 조사 등 인력을 감축하고 시설을 축소했습니다. 또한, 세종 충남대병원의 건립으로 생긴 기존 부채 과다로 인해 추가 은행대출이 제한되어 사실상 도산 위기에 봉착하기도 했습니다. 

충남대병원 5천여명의 보건의료 노동자들은 오로지 환자 진료와 치료에 묵묵히 소임을 다하고 병원의 위기 극복을 위해 온 힘을 다해왔고 많은 희생을 감내해 왔습니다. 1년이 넘는 각고의 노력과 희생으로 그나마 도산의 위기를 피하고 지금은 지난해 국립대병원 중 가장 적은 손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원은 또다시 우리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 사업으로 환자의 중증도는 높아졌으나 인력 감축으로 인해 대체 인력이 제때 충원되지 못하고 업무가 가중되어 현장의 직원들은 삼중고를 겪고 있습니다. 대체 인력이 부족해 맘 편히 휴가 가는 것 조차 사치가 되어 버렸고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전공의 부재로 인한 업무 공백을 대신하기 위해 하루아침에 병동 간호사가 PA간호사라는 이름으로 투입되었고, 불법인지 합법인지도 모르는 업무를 환자에게 행하고 있습니다. 2년 전 공채로 입사를 기다리는 간호학과 졸업생들은 신규 발령을 받지 못한 채 장기간 발령 대기자로 청년 실업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길어진 의료공백으로 최근 지역 환자들의 수도권 상급종합병원으로의 쏠림 현상은 더욱 심화되었고, 이들이 지출하는 교통비, 숙박비, 간병비 등 사회적 비용이 연간 4조원이 넘는다는 추계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는 지역의료가 붕괴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환자들이 지역 상급종합병원을 두고 수도권으로 원정 치료를 가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수도권보다 의료서비스의 질이 떨어진다고 생각하고 지역의료기관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새로운 정부에서는 올바른 의료개혁이 꼭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 시작은 공공의료가 강화되어 지역 어느 곳에서나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는 것입니다. 그 중심에는 지역거점 상급종합병원인 국립대병원의 전문 인력 확보와 응급, 중증질환 진료역량 고도화 등이 해법이 될 수 있습니다. 지역의료의 균등한 발전을 위해 국립대병원 시설과 장비 투자, 연구 중심병원 육성 등 과감한 투자 지원이 절실합니다. 

국립대병원 노동자들은 공공병원의 위상에 걸맞게 지역주민 누구나 제일 먼저 믿고 찾을 수 있는 병원이 되길 희망합니다. 지난 1년반 가까이 의사들의 공백을 메우며 지역에서 공공의료, 지역의료, 필수의료를 책임지고 있다는 사명감으로 희생을 감수하며 헌신해 왔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희생을 강요하는 사회를 거부합니다. 

광장의 힘으로 열린 새로운 세상에서는 공공의료가 제 역할을 다하여 아픈 사람 누구나 돈 걱정 없이 지역 어디에서나 시민의 건강권을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