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비상진료체계로 의료공백에 장기간 대응 가능"
공공병원서도 전공의 사직...응급·중증환자 대응에 한계
세계 최고 의료접근성 경험한 환자들, 의료이용 혼란에 불안감 증폭

[라포르시안] 의대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집단사직으로 병원을 떠나면서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의료공백이 현실화하고 있다.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가 주요 100개 수련병원을 점검한 결과 20일 22시 기준 소속 전공의의 약 71.2% 수준인 8,816명의 전공의가 사직서를 제출했고, 소속 전공의의 63.1%인 7,813명이 근무지를 이탈한 것으로 확인됐다. 

중앙사고수습본부는 현장점검을 통해 근무지 이탈이 확인된 6,112명 중 이미 업무개시명령을 받은 715명을 제외한 5,397명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발령했다. 특히 수도권 주요 대형병원은 사직서를 제출 및 근무지 이탈 전공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더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수술  취소와 입원 연기, 검사 연기 및 외래진료 축소 등 의료공백이 심화되고 있다. 정부가 운영하는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지원센터에는 일방적 진료예약 취소, 무기한 수술 연기 등 피해사례 신고 건수가 빠르게 늘고 있다. 

보건의료노조가 최근 인턴·레지던트 등 전공의가 있는 의료현장 상황을 파악한 결과에 따르면 △수술 취소와 연기 △응급시술 중단 △수술과 시술건수 축소 △타 병원으로 전원 △입원 연기와 취소 △응급실 내원 환자 축소 △필수검사 미시행 및 연기 △검사 축소 △영상판독 중단 △입원병실 축소 △입원 환자 축소 △외래 신규환자 차단 △예약 차단 △조기퇴원 등이 발생하고 있다.

각 병원에서는 수술을 앞둔 환자와 응급환자, 예약이 취소되거나 연기된 환자와 가족들이 극심한 고통과 피해를 겪고 있다고 보건의료노조는 전했다. 갑작스럽게 수술·진료가 취소·연기되고, 예약 거부와 원치 않는 조기 퇴원조치가 벌어지자 환자·보호자들의 불만과 항의가 벌어지고, 수술·검사·처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자 환자와 가족들의 민원도 쏟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의사 집단행동에 따른 의료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비상진료체계를 수립해 가동하고 있다. 특히 모든 공공병원이 비상진료대책을 수립해 ▲24시간 응급의료체계 운영, ▲중증·응급 등 필수의료 진료 기능 유지 ▲진료시간 확대 ▲복지부 및 관계기관과의 비상연락망 운영에 들어갔다. 

하지만 지방의료원 등 공공병원에서도 사직서를 제출하는 전공의가 나오면서 진료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비상진료체계로 의료공백에 대응해 버틸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지금과 같은 전공의 집단사직과 근무 거부가 길어지면 비상진료체계 가동에도 한계가 올 수밖에 없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지난 21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 브리핑에서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비상진료체계 가동을 통해 의료공백에 충분히 장기간 대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민수 2차관은 "현재 상급종합병원 입원환자의 약 50%는 지역의 종합병원이나 병원급에서도 충분히 진료가 가능한 환자"라며 "정부는 이들을 적극 연계·회송해 전공의 이탈이 심한 상급종합병원이 중증·응급환자 진료에 역량을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차관은 "상급종합병원에 입원 중인 중증도가 높은 나머지 50%의 환자는 병원의 탄력적인 인력과 자원 운영을 지원함으로써 중증·응급진료를 최대한 유지할 계획"이라며 "이를 위해 병원에서 임시 인력도 추가 채용할 수 있도록 중증·응급진료 수가를 대폭 확대했다"고 했다. 

입원전담전문의 권역외상센터와 응급의료센터 인력의 탄력적 운영 등을 위한 규제 완화도 추진하고, 필요 시 인력이 부족한 의료기관과 전문 과목에 대해서는 공중보건의 등 외부 인력을 지원할 방침이다. 

박 차관은 "이를 통해 지역으로 분산된 중등증 이하의 환자를 지역 병원이 집중 진료하고 공공기관도 평일 연장 진료 및 주말 진료를 통해 추가 발생할 수 있는 의료 수요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해 환자 곁을 지키는 의료인의 소진이 일어나지 않도록 정책 지원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정부의 판단처럼 상황이 간단치 않다. 대형병원에서 전공의뿐만 아니라 전임의들도 사직 행렬에 동참할 가능성이 있어 의료공백 확대 우려가 높다.  

전국 82개 수련병원에서 근무 중이거나 근무 예정인 임상강사·전임의들은 지난 20일 입장문을 내고 "전공의 수련을 마치고 전문의 자격증을 취득한 이후로도 수련 병원에 남아 더 나은 임상의·연구자로서의 소양을 쌓고자 했지만, 의료 정책에 대한 진심 어린 제언이 모두 묵살되고, 의사가 국민을 위협하는 세력으로 매도되는 현재의 상황에서는 의업을 이어갈 수 없다"며 사직 대열에 가세할 수 있음을 내비쳤다. 

지방의료원 등 공공병원이 대형병원의 의료공백을 대체할 수 있는데도 한계가 따른다. 

정부와 지자체가 공공병원 운영 시간을 확대하더라도 중증·응급 환자를 치료하기에는 의료인력이나 시설 측면에서 버거운 실정이다. 게다가 지방의료원은 지난 코로나19 유행 때 감염병 전담병원 역할을 수행했지만 엔데믹 이후 환자 감소로 경영난을 겪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전담병상을 운영하던 시기에 의료진 이탈이 크게 늘었고 이후 다시 의사인력을 확충하지 못해 휴진하는 진료과도 많은 상태다.  

이런 가운데 전공의 집단사직으로 인한 의료공백이 이어지면서 환자와 가족이 심리적으로 느끼는 불안감은 시간이 지날수록 증폭될 수밖에 없다. 비상진료체계로 장기간 운영이 가능하다고 해도 환자와 가족이 버틸 수 있는 심리적인 마지노선은 그보다 훨씬 짧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접근성을 경험한 환자들한테 의사 집단행동으로 의료이용에 제한이 따르는 상황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이다. <관련 기사: 의료체계 구조적 문제와 부조리 들춰내는 '전공의 집단행동, 의료대란',  의료전달체계 부재가 빚은 외래진료 횟수 'OECD 1위'>

한국다발골수종환우회·한국루게릭연맹회 등 6개 중증질환 관련 단체는 지난 15일 입장문을 내고 "중증 환자들의 생명을 담보로 강대강으로 대치하고 있는 정부와 의사단체들은 즉각 이 사태를 멈추고 대화와 해결책을 강구하라"며 "정부와 의사단체가 환자 피해의 책임을 서로 상대측으로 전가하며 누구도 환자에게 진정성 있는 양해를 구하거나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성토했다.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참여하는 가입자단체들도 의료계를 향해 집단행동 중단을 촉구했다. 

건정심 가입자단체들은 지난 21일 성명을 내고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방침에 반대하는 의료계 집단행동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며 환자 곁을 떠난 의사들의 주장은 국민들로부터 지지받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이들 단체는 "정부는 의료계 집단행동에 따른 의료공백 최소화를 위해 만전을 기해 주길 바란다"며 "사회적 재난에 준한 한시적 건강보험 비상진료 지원방안을 매뉴얼에 따라 신속하고 투명하게 집행하되 향후 그 책임을 철저하게 물어 국민의 소중한 보험료를 회수할 방안도 함께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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