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청과 전공의 부족에 소아혈액종양 전문의 인력 수도권 쏠림
강원 등 일부 지역은 입원진료 불가능...수도권 원정진료 내몰려
소아암 치료 인력·시설 유지 가능하게끔 수가·지원체계 개선해야

[라포르시안]  "(소아암 진료를 할 수 있는) 인프라가 현재는 '빅5' 병원에만 구축돼 있고, 사람들이 그쪽으로 가버리니까 지방병원에서는 전문의 혼자 덩그러니 남겨지게 된다. 그러다 보면 금방 번아웃이 올 수밖에 없다. 지원 인력은 없고, 전문의와 전공의만 있는데 그 전공의도 조만간 없어질 것 같다...” 

한 지방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소아청소년종양혈액과 의료진이 내뱉은 탄식이다. 지방을 중심으로 소아암 진료시스템 붕괴 위기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게끔 하는 한 단면이다.  

국내에서 연간 1,300여명 정도가 백혈병 등 소아암으로 신규 진단을 받는다.  소아암의 5년 상대생존율은 86.3%로, 성인을 포함한 전체암 상대생존율(71.5%)보다 높은 편이다. 소아암 환자는 적절한 치료를 통해 건강한 성인으로 성장하고 사회생활을 이어갈 수 있다. 

그러나 저출산이 심화하면서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이 크게 줄어들고, 소아암 진료를 담당하는 전문의 인력이 크게 부족해지고 있다. 특히 지방의 소아암 진료 인프라가 붕괴되면서 서울과 경기도 등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원정진료를 다니는 소아암 환자가 늘고 있다. 

지난해 대한소아혈액종양학회가 건강보험공단 자료를 바탕으로 소아암 환자의 본인 거주지 이외에서 치료받는 비율을 분석한 결과 서울 이외 지역 소아암 환자 가운데 70% 이상이 관외에서 치료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이외 지역 소아암 환자의 관외 의료이용 비율은 2003년 47%에서 2013년 65%로, 2017년 70%로 높아졌다. 특히 강원도와 충북 지역 소아암 환자는 타 지역에서 치료받는 비율이 80%를 넘었다. 

소아청소년 암환자가 거주지에 있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기 힘든 이유는 전문 의료진과 병원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소아혈액종양학회가 분석한 자료를 보면 2022년 현재 전국 소아혈액종양 전문의는 총 67명이다. 이들의 평균 연령은 50.2세로, 5년내 은퇴 예정자가 14명에 달한다. 

소아혈액종양학회는 "소아혈액종양 전문의 부재로 소아암 환자가 입원할 수 있는 병원이 줄어드는 상황이고, 소아응급실도 문을 닫게 되면서 소아암 환자는 열이 나면 입원이 가능한 병원을 전전하다가 결국 치료 시작이 지연되고 중증 패혈증으로 악화돼 중환자실로 가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나마 성인암은 외래에서 통원 치료가 가능한 환자군이 많은 편이지만 소아암 환자는 대부분 입원치료를 필요로 한다. 전체 암환자 중에서 환자 비율이 적어도 입원치료를 받아야 하는 소아암 환자가 있을 경우 365일 24시간 응급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전문의가 병원별로 최소 2~3명 이상 필요하다. 

문제는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자가 급감하면서 지방 병원에서는 1~2명의 소아혈액종양 전문의가 거의 매일 입원환자와 외래환자를 돌보는 실정이라고 한다.

한 대학병원 소아청소년종양혈액과 교수는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을 볼 때 향후 그 인력이 충원될 가능성이 없다"며 "50대 의료진이 일주일에 3번 당직을 서고 36시간 연속 근무를 하는 상황에서 누가 사명감으로 버틸수 있겠느냐"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런 가운데 보건복지부는 지방에 거주하는 소아암 환자가 서울과 경기도 등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원정진료에 나서는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전국 5개 권역에 소아암 거점병원을 육성하는 정책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지난 20일 밝혔다.  

복지부에 따르면 소아암 진료체계 구축을 위해 서울을 제외한 ▲충남권역(대전・충남・충북・세종) 충남대병원 ▲호남권역(광주・전남・전북・제주) 화순전남대병원 ▲경북권역(대구・경북) 칠곡경북대병원 ▲경남권역(부산・울산・경남) 양산부산대병원 ▲경기권역(경기・강원) 국립암센터 등 전국 5개 권역에 소아암 거점병원을 육성한다.

복지부는 지역암센터 및 어린이 공공전문진료센터 등 기존에 정부가 지정한 공공의료 수행기관 중 소아암 진료를 위한 핵심기능이 유지되고 있는 병원으로 특정해 지역과 병원에 적합하면서 실행 가능한 진료모형을 적용할 계획이다.  

복지부가 수립한 진료모형 활용유형 3가지는 ▲병원 내 전담팀 구성 진료체계 ▲지역 개방형 진료체계 ▲취약지 지원체계 등이다.

전문인력 활용유형 중에서 '병원 내 전담팀 구성 진료체계' 모형은 소아혈액종양 전문의와 입원전담의 또는 촉탁의, 타분과 소아과 전문의가 협력하는 모형으로 거점병원 중 화순전남대, 양산부산대, 충남대병원이 이에 해당한다. 이들 병원은 올해 말 수련이 종료되는 전공의를 촉탁의로 채용하고, 현재 근무 중인 입원전담의 또는 촉탁의 등을 진료전담팀으로 합류시켜 전문인력 이탈을 방지한다.

지역 개방형 진료체계 모형은 지역내 대학병원 소속 소아혈액종양 전문의와 지역 병・의원에 근무 중인 소아암 치료경력이 있는 전문의가 거점병원의 진료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칠곡경북대병원이 이 모형을 적용한다. 

'취약지 지원체계' 모형은 강원도 지역처럼 소아암 진료를 위한 세부 전문의가 없는 취약지로, 국립암센터 소속 소아암 전문의가 강원도 내 대학병원에 주기적으로 방문해 소아암 외래진료를 지원하는 방식이다. 

복지부는 "소아암 점병원별 맞춤형 전문인력 활용모형으로 지역 내 거점병원에서 진단부터 항암치료, 조혈모세포이식 및 후속진료까지 완결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며 "지역 거점병원에서 치료가 어려운 고난이도 중증 외과 수술과 양성자치료기 등 첨단장비를 통한 항암 치료가 필요하면 수술팀을 갖춘 수도권 병원이나 양성자치료기 보유 병원인 국립암센터에서 치료한 후 지역 거점병원으로 회송해 항암 등 후속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연계 체계를 구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의료계에서는 보다 근본적으로 병원이 소아암 환자 치료에 필요한 시설과 인력 유지가 가능하게끔 수가 및 각종 지원체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힜다. 

소아혈액종양학회는 "소아청소년암분야가 고난이도, 고강도, 고위험 직업군으로, 소아청소년과에서도 젊은 의료진들이 기피하는 3-D 업종"이라며 "이런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업무강도와 중증도를 고려한 정당한 보상체계와 의료분쟁 발생 시 환자의 중증도를 고려한 보호장치의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학회는 "병원에서 의사를 더 고용하면 되겠지만, 중증 진료를 할 수록 적자인 우리나라 의료보험수가 구조와 소아청소년암 진료에 대한 국가 지원이 전무한 현실에서 어느 병원도 소아혈액종양 전문의를 더 고용하지 않는다"며 "저출산 시기에 출산율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태어난 소중한 아이들을 한명이라도 더 살릴 수 있도록 소아청소년암 치료에 국가적인 지원이 매우 시급한 상황"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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