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병 재난 사태서 공공병원 역할 뚜렷이 부각
정부, 내년도 예산안에 공공병원 설립 예산은 전무
"국회 예산 심의 과정서 공공병원 확충 예산 반드시 포함해야"

[라포르시안]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공공병원 존재 이유가 뚜렷이 부각됐다.

국내 첫 코로나19 확진자를 치료한 인천의료원을 비롯해 서울의료원와 국립중앙의료원, 대구·경북지역 등의 공공병원이 감염병 재난 초기부터 코로나19 전담병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정부는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코로나19 신규 환자가 급증하기 시작한 2월 말부터 경증환자 치료를 위한 전담병원지정을 위해서 지방의료원 등 43개 공공병원의 전체 환자를 타 기관으로 전원조치하는 소개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이들 공공병원은 기존 입원환자를 전원하거나 퇴원 조치한 후 병원 전체를 코로나19 경증환자 치료 공간으로 발빠르게 전환해 감염병 유행으로 인한 건강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복지부가 펴낸 '2019 공공보건의료 통계집'에 따르면 2018년 기준으로 국내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 중 공공의료기관 비중은 5.7%로 OECD 국가 중 최하위에 속한다. 공공의료기관 병상 수 비중은 10.0%로 역시 OECD 국가 대비 최하위 수준이다.

이 때문에 코로나19 재유행과 또다른 감염병 유행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전국적으로 공공병원을 확충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다.

그러나 정부가 편성한 내년도 예산안에는 공공의료 신규 설립 관련 예산이 전무하다.

앞서 보건복지부는 2021년 예산(안) 90조1536억원을 편성하면서 보건 분야 예산으로 14조219억원을 배정했다. 보건 예산안 14조219억원 가운데 건강보험 가입자 지원 예산 10조7,988억을 뺀 순수 보건의료예산은 3조2,231억원에 불과하다. 그나마 공공의료 인프라 확충을 위한 예산은 쥐꼬리만한 수준이다.

당장 내년도 보건의료 예산에 공공병원 설립 비용을 반영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공공의료 강화를 위한 노동시민사회단체’는 10월 29일 오전 참여연대 2층 아름드리홀에서 '2021년 보건의료 예산 분석 및 확충 요구안 발표 기자설명회'를 열었다. 사진 출처: 참여연대
‘공공의료 강화를 위한 노동시민사회단체’는 10월 29일 오전 참여연대 2층 아름드리홀에서 '2021년 보건의료 예산 분석 및 확충 요구안 발표 기자설명회'를 열었다. 사진 출처: 참여연대

참여연대와 보건의료단체연합, 울산건강연대, 대전시립병원설립추진시민운동본부 등이 참여하는 '공공의료 강화를 위한 노동시민사회단체'는 지난 29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코로나19 상황에서 공공병원 설립 예산이 전무하다"고 지적하고 충분한 공공병원 설립(확충) 예산을 내년도 정부 예산에 반영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참여연대가 2021년 공공보건의료 관련 예산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코로나19라는 감염병 상황을 겪고 있음에도 공공병원 확충 예산은 전무하다. 기존 감염병 전문병원으로 채택된 3곳의 공사비만 편성했을 뿐이다.

이경민 참여연대 사회경제2팀장은 "정부가 정한 70개 의료생활권 중 적정 규모의 종합병원이 없는 지역이 25곳이고, 전국에 지방의료원은 단 35곳에 불과하다"며 "코로나19가 장기화 된다는 전망이 우세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며, 국회 예산 심의 과정에서 공공병원 확충 예산을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팀장은 "제한적인 의사인력 양성 제도 때문에 지방 의료기관은 의사 구인의 어려움이 심각하다"며 "유럽 국가처럼 국가가 책임지고 의료인을 양성해 공공의료기관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하고, 공공의과대학을 권역별로 설립해 양성한 공공의사가 공공의료기관에 충분한 기간 동안 의무 복무하도록 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현재 OECD 회원국은 인구 1000명당 공공병상 수가 3개 수준이다. 우리나라는 인구 1000명 당 공공병상이 1.3개로 최하위에 해당한다.

OECD 수준에는 못 미치더라도 인구 1000명당 최소한 2.0개 수준의 공공병상을 확충하기 위해 5개년 계획으로 추진할 때 매년 2조6000억원의 공공병상 인프라 확충 예산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제시됐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전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당장 OECD 평균인 인구 1000명 당 3.0개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제대로 된 일차보건의료 체계를 확립하고 있으면서 최소한의 공공병상을 운영하고 있는 스페인과 이탈리아 수준인 인구 1000명 당 공공병상 2.0개 수준으로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특히 감염병 위기국면과 생명을 살리기 위한 필수·응급의료 공백을 줄이기 위해서는 급성기병상 확보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급성기 공공병상 확보 방법으로 70개 중진료권마다 지역책임의료기관을 공공의료기관 중심으로 신증축하거나 운영이 부실한 민간병원을 인수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앞서 문재인 정부는 2018년 발표한 ‘공공보건의료 발전 종합대책’을 통해 70여개 지역책임의료기관을 지정하거나 공공병원을 신축해 필수의료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관련 기사: '공공(空空)의료 돌려막기' 언제까지...>

전진한 정책국장은 "지방의료원은 대부분 300병상 미만 규모로 운영되고 있어 지역거점 의료기관으로서 적절한 역할을 수행하기 곤란한 조건에 놓여 있다"며 "기존 공공병원을 300병상 이상, 대도시는 500병상 이상으로 증축해 응급진료와 지역 필수진료기능을 갖추도록 하고, 충분한 의료인력을 고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구 1000명당 2.0개 수준으로 공공병상을 확충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4만여 개를 늘려야 한다.

국립중앙의료원이 실시한 '공공병원 신·증축 병상 소요비용' 연구 결과에 따르면 병상 당 소요비용은 신축시 병상 당 약 4억원, 증축은 병상 당 약 3억원, 민간병상 인수·리모델링은 병상당 1.5억원이 든다.

전 국장은 "이를 기준으로 4만여 병상 중 2만5,000병상은 신설하고 5,000병상을 증축하며, 1만병상은 민간병원을 인수·리모델링한다고 보면 종합적으로 약 13조원이 소요된다"며 "5년 계획으로 추진한다면 매년 2.6조원 정도가 최소한의 공공병상 인프라 확충 예산으로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그는 "2021년 정부 예산안은 2020년 본예산 대비 43.5조원이 늘어난 555.8조원에 달한다. 이 중 2.6조원은 많지 않은 액수"라며 "국회는 당장 공공병원 확충 예산증액을 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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