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공공병원 신·증축 예산 전무
"의료산업 육성 예산 7천억이면 지방의료원 6개 신축 가능"

보건의료단체연합, 참여연대 등 173개 단체가 참여하는 '공공의료 강화를 위한 노동시민사회단체'는 지난 3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공의료 확충 예산 편성을 요구했다. 사진 제공: 보건의료단체연합
보건의료단체연합, 참여연대 등 173개 단체가 참여하는 '공공의료 강화를 위한 노동시민사회단체'는 지난 3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공의료 확충 예산 편성을 요구했다. 사진 제공: 보건의료단체연합

[라포르시안] 코로나19 사태로 공공의료 확충 필요성이 부각됐지만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는 관련 예산이 전무한 실정이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의과대학 입학정원 증원을 통한 공공의료 인력 증원을 추진하면서 정작 부족한 공공병원 확충을 추진하지 않는 것은 모순이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보건의료단체연합, 참여연대 등 173개 단체가 참여하는 '공공의료 강화를 위한 노동시민사회단체'는 지난 3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내년도 예산안에 공공병원 신·증축 예산은 0원”이라고 지적하며 공공의료 예산을 확대 편성하라고 요구했다.

앞서 보건복지부는 2021년 예산(안) 90조1536억원을 편성하면서 보건의료 분야 예산으로 14조219억원을 배정했다. 그러나 보건의료 분야 예산안 중 공공병원  신·증축 예산은 '0'원이다. 심지어 공공의료 관련예산은 2020년 대비 감액됐으며, 지방의료원과 적십자병원 기능강화에 쓰일 지역거점병원 공공성강화 예산도 작년에 비해 삭감됐다.

공공의료 강화를 위한 노동시민사회단체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지난 28일 예산안 시정연설은 우리에게 참담함을 느끼게 했다. 시정연설에는 ‘공공의료’라는 단어는 언급조차 없었다"며 "반면 비대면 의료산업을 육성하고, 바이오헬스에 수 조원을 투자하겠다는 의료산업화 선언만 난무했다"고 지적했다.

시민사회단체는 국회가 내년도 예산안 심의에서 공공병원 확충을 비롯한 공공의료 예산 증액을 정부에 요구해야 한다고 장했다.

이들 단체는 "코로나19 사태에서 지방의료원을 중심으로 공공병원만이 사실상 제 역할을 하며 환자들을 전담 치료했고, 지역거점 공공병원이 없거나 부족한 많은 지역에서 코로나19 대응에 어려움을 겪어왔다는 사실이 잘 알려졌다"며 "공공병원을 신설·증설하고 민간병원을 매입해 인구 1000명 당 공공병원 최소 2개까지 확보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실제로 지방의료원이 없는 대전은 6월과 8월, 코로나19 하루 확진자가 불과 10명 안팎일 때 감염병 전담병상이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진주의료원이 폐쇄된 서부경남 지역 코로나19 확진자들은 타 지역 공공병원으로 원정치료를 갈 수밖에 없었다.
 
대구·경북에서는 적십자병원이 적자를 이유로 문을 닫은 후 대구의료원을 중심으로 공공병원이 확진자 78%를 감당하며 버텼지만, 3월 초 2300명이 집에서 대기했고 3월 중순까지 확진자 중 23%가 입원도 못하고 사망한 바 있다. 수도권 지역에서도 8월 중순 하루 200여명의 환자가 발생했을 때 전담병상이 부족해 자택 대기환자가 발생했다.

복지부가 펴낸 '2019 공공보건의료 통계집'에 따르면 2018년 기준으로 국내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 중 공공의료기관 비중은 5.7%로 OECD 국가 중 최하위에 속한다. 공공의료기관 병상 수 비중은 10.0%로 역시 OECD 국가 대비 최하위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또다시 대구에서 대유행 사태 때처럼 환자를 제때 치료하지 못하는 상황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정부는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공공의료인력 부족 문제를 실감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지역의사제'를 골자로 하는 의대정원 확대를 추진하면서 공공병원 확충에는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공공의료인력 확대와 동시에 공공병원 신증축이 동시에 추진해야 할 정책이다. 

따라서 공공병상 절대수를 늘리는 노력이 필요하다. OECD 회원국은 인구 1000명당 공공병상 수가 3개 수준이지만 우리나라는 인구 1000명 당 공공병상이 1.3개로 최하위에 해당한다. 최소한 공공병상을 인구 1000명당 2.0개 수준으로 확충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4만 개의 공공병상을 확충하는 것이 필요하다.

시민사회단체는 "70개 중진료권마다 지역책임의료기관을 공공의료기관 중심으로 신증축하거나 민간병원을 인수해야 한다"며 "광역지자체에 500병상 이상, 기초지자체에 300병상 이상으로 신증축하고, 지역거점병원의 위상을 가지면서도 부실의료를 자행하는 청도대남병원 같은 민간병원을 매입해 공공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 단체는 "약 4만개 공공병상을 확충하는데 드는 예산은 연간 2조6,000억원 수준으로, 5년만 투자하면 할 수 있는 일"이라며 "2021년 의료산업 육성 예산 약 7000억원만 공공의료에 써도 300병상 이상 지방의료원 6개를 지을 수 있다. 오로지 정부와 국회의 의지 문제"라고 지적했다.

공공병원 확충에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시민사회단체는 "공공의료기관 확충은 시민의 생명과 건강을 위한 것이고, 팬데믹 위기 속 필수적인 것이다. 공공의료 확충을 비용 대비 수입이 1을 넘어야 한다는 수익성 중심의 예비타당성 조사 대상으로 삼는 것 자체가 문제"라며 "이미 국가재정법 상 정부가 의지만 있다면 국무회의를 거쳐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하고 공공병원을 확충할 수 있다. 따라서 정부가 예비타당성 조사 핑계를 대는 것은 시민 모두를 기만하고 국가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들은 "국회는 당장 이번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공공의료 확충 예산을 요구해야 한다. 정부는 이에 따라 예산을 책정해야 한다"며 "나아가 국회는 국가재정법을 개정해 공공병원 확충에 있어서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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