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뷰] 공공병원 절대 부족 상태서 '공공의료 종합대책'에 적극적 확충 대책 빠져
朴정부 때처럼 민간의료기관에 역할 부여..."모순된 정책"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10월 1일 공공보건의료 발전 종합대책을 브리핑 하고 있다. 사진 제공: 보건복지부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10월 1일 공공보건의료 발전 종합대책을 브리핑 하고 있다. 사진 제공: 보건복지부

[라포르시안]보건복지부가 최근 필수의료 서비스의 지역 격차 해소를 위해 공공보건의료 영역의 국가책임 강화를 골자로 하는 ‘공공보건의료 발전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복지부는 이번 종합대책에서 생명과 밀접한 필수중증의료 분야의 접근성이 전국 어느 지역에서도 보장되고, 취약계층과 관련된 의료서비스의 미충족을 해소하는 것을 목표로 제시했다.

이를 위해 ▲지역격차 해소를 위한 공공보건의료 책임성 강화 ▲필수의료 전 국민 보장 강화 ▲공공보건의료 인력 양성 및 역량 제고 ▲공공보건의료 거버넌스 구축 등 4개 추진과제를 세웠다.

지금까지 취약지, 취약계층, 시장실패 등 잔여적 접근 형태로 운영되거나 미충족된 분야를 보완하는 수준에 머물던 공공보건의료의 역할과 기능을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지역·계층·분야에 관계없이 보편적인 의료이용을 보장하는 쪽으로 그 기능과 역할을 확대한다는 대목은 주목할 만하다. 

이런 방향과 목표로의 공공의료 발전 종합대책은 바람직하다. 문제는 그 방법과 세부적인 추진 방안에 있다.

복지부는 전국민을 대상으로 필수의료 분야에서 선제적이고 보편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공의료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공공병원 간 협력적 전달체계를 구축하고, 민간의료기관에도 적극적 역할을 부여하는 계획을 세웠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공공보건의료 발전 종합대책' 내용 중에서.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공공보건의료 발전 종합대책' 내용 중에서.

전국을 70여개 진료권으로 구분해 각 진료권별로 필수의료를 위한 급성기 진료가 가능한 종합병원급 공공병원이나 민간병원을 책임의료기관을 지정하고, 필요한 시설과 인력을 갖추도록 지원하기로 했다.

공공의료기관 간 협력체계를 구축해 개별 공공의료기관을 중심으로 분절적으로 실시하던 공공의료사업을 권역-지역-기초 공공의료기관 간 연계·협력해 통합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시스템도 구축할 계획이다.

농어촌 등 의료취약지역 주민의 의료 접근성과 건강권 보장을 위한 ‘의료 취약지 건강보험 수가 가산체계’ 도입 방안도 수립했다. 공공보건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국립공공의료대학원을 설립하는 방안도 담았다.

안타깝게도 이런 계획은 앞서부터 계속 시도해온 방안으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공공보건의료 발전 종합대책에 '공공의료 확충'이라는 근본적인 대책이 빠졌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공공보건의료 분야의 근본적인 문제는 공공의료기관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데서 비롯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알맹이 없는 종합대책이다. 

OECD 국가별로 전체 의료기관 수 대비 공공의료기관 수 비중. 표출처: 2017년 공공보건의료 통계집
OECD 국가별로 전체 의료기관 수 대비 공공의료기관 수 비중. 표출처: 2017년 공공보건의료 통계집

복지부가 작년 말 펴낸 '2017 공공보건의료 통계집'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전체 의료기관 수 대비 공공의료기관 수 비중은 5.8%에 불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서 최하위 수준이다. OECD 국가의 공공의료기관 수 비중은 평균 53.5%로 한국과 비교하면 9.2배 가량 높다.

전체 병상 수 대비 공공의료기관 병상 수 비중도 낮다. 2015년 기준으로 전체 병상 수 대비 공공의료기관 병상 수 비중은 10.5%로, OECD 국가(평균 74.6%) 중 역시 최하위 수준이다.

전체 의료공급체계의 95%를 민간의료기관이 맡고 있는 상태에서 공공보건의료의 발전 방향을 모색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지경이다.

게다가 이번에 발표한 종합대책은 앞서 박근혜 정부 때 수립한 공공보건의료 기본계획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3월 복지부가 발표한 '제1차 공공보건의료 기본계획(2016-2020)'을 보면 ▲지역간 균형잡힌 공공보건의료 제공체계 구축 ▲필수 분야에 보건의료서비스 적정 공급 ▲취약계층에 대한 의료안전망 강화 ▲공공보건의료지원기반 확충 및 서비스 질 제고 ▲공공의료기관 운영 효율성 제고 등 5개 추진전략을 제시한다.

주요 추진전략의 방향이나 구체적인 실행과제를 보면 이번에 발표한 종합 발전대책에 포함된 것과 비슷한 내용이 적지 않다.

특히 공공보건의료 기본계획을 보면 공공의료 개념을 '소유주체' 중심에서 '기능' 중심으로 전환한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민간의료기관이 90%에 이르는 보건의료 환경에서 소유주체에 기반한 이분법적인 접근으로는 실효성 있는 공공보건의료 정책 수행이 곤란하다는 이유로 공공의료 개념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공공의료 개념의 전환'이라거나 '민간의료기관에 적극적인 공공의료 역할 부여'라는 그럴 듯한 논리를 덧칠하고 있지만 절대적으로 공공의료기관이 부족해서 생긴 문제를 공공병원 확충이 아니라 민간의료기관에 공공의료 역할을 위탁하는 방식으로 풀겠다는 의미다.

보건복지부가 2016년 3월 발표한 '제1차 공공보건의료 기본계획'에 포함된 추진전략별 세부과제 및 실행과제.
보건복지부가 2016년 3월 발표한 '제1차 공공보건의료 기본계획'에 포함된 추진전략별 세부과제 및 실행과제.

공공병원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태에서 기존 국공립병원을 권역책임의료기관과 지역책임의료기관으로 지정해 필수의료 보장과 보편적 의료보장을 위한 기능을 강화하는 건 '공공의료 돌려막기'다.

근본적으로는 공공의료 인프라는 확충해야 한다. 정부는 이번에 발표한 종합대책에서 '공공병원이 없고 역량 있는 민간병원도 없는 지역은 공공병원을 신축해 육성'한다는 소극적인 대책만 제시했다.

공공보건의료 정책이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최소한 전체 의료공급체계에서 공공병원의 비중이 25~30% 정도는 차지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기껏 5%에 불과한 공공병원 인프라를 활용해 지역간 의료이용 격차를 해소하고 보편적 의료보장이 가능한 공공보건의료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공공의료 기능을 하는 민간의료기관을 지정하고 지원하더라도 결국에는 시장의 경영논리를 따를 수밖에 없어 공공의료 체계의 지속가능을 담보하기 힘들다.

2013년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가 강제 폐업한 진주의료원.
2013년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가 강제 폐업한 진주의료원.

공공병원 없는 공공의료는 없어 

이 때문에 의료취약지에 공공병원을 신축하거나 경영이 어려운 민간병원을 인수해 공공병원으로 전환하는 보다 적극적인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전국보건의료노조는 지난 1일 성명을 내고 "공공보건의료 발전 종합계획에 공공병원 확충 계획은 없고 진료권별 책임의료기관 지정 계획만 있다"며 "공공병원이 없는 지역에 공공병원 신축, 민간의료법인을 공공의료법인으로 전환, 부도·폐업·파산 상황의 민간의료기관 공공인수, 민간의료기관을 공공의료정책 수행 특화병원으로 전환 등 공공의료기관을 30% 수준으로 확충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공공의료기관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지역거점 공공병원 역할을 하는 지방의료원이나 적십자병원 중 상당수는 의료인력난과 낙후된 시설 등으로 의료 질 수준이 떨어지는 곳이 적지 않다.

이런 곳을 책임의료기관으로 지정하더라도 제대로 된 역할을 수행하기 힘들다. 복지부는 책임의료기관으로 지정된 곳에 필수의료 진료기능 강화에 필요한 시설과 인력 지원을 추진한다고 밝혔지만 기존에도 계속 해오던 사업에서 예산만 일부 증액했을 뿐이다. 

결국은 앞서 다른 정부와 마찬가지로 공공의료 강화 계획을 수립할 때마다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공공병원을 활용해 여기저기 '돌려막기'를 하는 땜질식 처방만 남발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2015년 메르스 사태 때는 공공병원이 메르스 격리병원으로 지정되면서 기존에 입원해 있던 결핵환자나 에이즈 환자 등이 다른 곳으로 강제로 옮겨지거나 쫓겨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게다가 이번 종합대책에 포함된 내용 중 공공보건의료 협력체계 구축이나 지역공동체 기반 지속적·예방적 건강관리 확대 추진과제는 단순히 공공의료 분야에 국한된 게 아니라 전반적인 의료전달체계 개선과 의료체계 개혁과도 직접 연관된 것이다.

공공의료 발전 종합대책을 수립하기 전에 '보건의료기본법'에 따른 보건의료발전계획을 먼저 수립하고, 그에 따른 공공의료 발전 대책을 수립하는 것이 제대로 된 순서다.

보건의료발전계획에는 ▲보건의료 발전의 기본 목표 및 그 추진 방향 ▲주요 보건의료사업계획 및 그 추진 방법 ▲보건의료자원의 조달 및 관리 방안 ▲지역별 병상 총량의 관리에 관한 시책 ▲보건의료의 제공 및 이용체계 등 보건의료의 효율화에 관한 시책 ▲중앙행정기관 간의 보건의료 관련 업무의 종합·조정 ▲노인·장애인 등 보건의료 취약계층에 대한 보건의료사업계획 등을 포함토록 하고 있다.

이를 통해 국가 차원의 종합적인 보건의료 부문의 발전 목표와 추진 방향, 의료자원의 적정 분배와 공급, 의료이용체계 효율화 방안 등을 마련하고, 여기에 맞춰 각종 의료정책을 추진토록 함으로써 국민의 건강권을 보장할 수 있는 의료체계를 갖추자는 취지다.

복지부는 올해 말까지 보건의료발전계획을 위한 연구를 수행하고,  공청회 등 의견수렴을 거쳐 2019년 열리는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 회원에서 최종 발전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다.

당연히 보건의료발전계획에 보건의료 발전 기본 목표 및 추진 방향을 세우고, 보건의료의 제공 및 이용체계, 보건의료자원의 조달 및 관리 방안 등이 확정된 이후 그에 따른 공공보건의료 발전 종합대책을 수립하는 게 옳은 순서다.

한 공공병원 원장은 "정부의 공공보건의료 발전 종합대책은 과거 정부에서 발표한 내용과 크게 다를 바 없다"며 "'공공병원 없는 공공의료는 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공공의료 인프라가 열악해서 생기는 문제는 민간의료기관을 이용해 보완하겠다는 것은 모순된 정책이며, 공공병원을 보다 적극적으로 확충해 국민들이 쉽게 접근하도록 하는 것을 가장 우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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