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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병 재난이 던진 과제...'건강보험, 아프니까 상병수당'OECD 회원국 중 한국만 아플 때 쉴 권리 보장 부재
"상병수당 재정, 최대치로 잡아도 건보 총지출액 2.3%”

[라포르시안] 코로나19에 대응하는 생활방역 지침 중 가장 중요한 하나가 바로 "아프면 쉬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유급병가나 상병수당 제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아프면 쉬기'를 실천할 수 없는 노동환경이다.

건강보험에 상병수당을 도입하는 게 비현실적인 주장이 아니다. 여러 연구를 근거로 할 때 현행 건강보험 총지출액에서 2% 정도만 활용하면 상병수당 도입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한다. 결국 정부의 정책 의지가 문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원장 조흥식)이 지난 24일 발간한 <보건복지 ISSUE & FOCUS(제388호)>에는 '한국의 상병수당 부재 현황과 상병수당 도입을 위한 제언'이란 보고서가 실렸다.

김기태 포용복지연구단 부연구위원이 작성한 이 보고서는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사회적 위기 상황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속하는 수단으로 유럽 복지국가들이 상병수당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는 점을 소개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발 경제·사회적 위기에 비교적 성공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유럽 복지국가의 주요 정책수단 가운데 하나가 상병수당이다. 스웨덴은 노동자가 업무 외 상병으로 일을 하지 못할 경우 휴가 첫날부터 상병수당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4일
이내 유급병가에 대해서는 병원 진단서 제출 의무를 유예하도록 했다. 덴마크는 3~6월 중 상병수당 수급기간이 끝난 휴직자에게도 6월 말까지 상병수당을 지급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감염병 재난 시기에 상병수당은 두 가지 핵심적인 기능을 한다고 분석했다. 하나는 노동자의 쉴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노동자가 질병을 참고 일터로 나왔을 때 생기는 감염병 확산과 같은 사회적 문제를 예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기태 부연구위원은 "2009년 신종인플루엔자A(H1N1) 유행성 전염병이 퍼졌을 때 미국과 독일의 확산 정도가 매우 달랐던 주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상병수당 유무였다는 해석이 있다"며 "미국에는 유급병가가 없어서 다수의 노동자들이 아픈 몸을 이끌고 일터에 나온 결과, 바이러스가 확산돼 700만명이 감염된 반면 독일에서는 노동자들이 유급병가를 써서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았다는 것으로, 그 차이에 따른 사회적 비용은 막대하다"고 했다.

방역을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 차원에서도 소득보전을 위한 유급병가와 상병급여가 필요하지만 한국은 유급병가나 상병수당 제도를 갖추지 않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공적 재원을 통해 상병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나라는 한국과 이스라엘, 스위스, 미국 4개국뿐이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연방정부 차원의 공적 상병수당제도는 없지만 업무 외 상병으로 인한 무급휴직의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스위스는 국가가 직접 유급병가를 지원하지 않는 대신 기업이 노동자에게 유급병가를 주도록 국가가 강제하는 간접적인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정부가 기업 단위 유급병가의 최소 수준을 정하는 '유급병가법'을 통해 규제를 하고 있다.

이미지 출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건복지 ISSUE & FOCUS』 제388호.

실질적으로 OECD 회원국 가운데 업무 외 상병으로 인한 아픈 노동자의 쉴 권리를 보장해주지 않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고 분석했다.

김 부연구위원은 "한국은 ‘K방역’의 성과가 크게 부각되는 동안 상병수당의 부재는 드러나지 못했다"며 "상병수당이 없기 때문에 불안정 노동자들은 아파도, 감염의 위험이 있어도 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코로나19 감염병을 계기로 방역당국은 ‘아프면 집에서 쉬라’는 권고를 내리고 있지만 많은 이들에게는 여전히 꿈같은 얘기"라고 지적했다.

상병수당 도입을 위한 재원마련도 충분히 가능한 수준이라고 판단했다. 

김 부연구위원은 "상병수당 도입에 따른 소요 재정을 계산한 과거 연구들을 보면 연간 비용을 최소 4520억 원에서 최대 1조 5387억 원까지로 추정하고 있다"며 "2018년 기준 건강보험 총지출액이 약 66조 원인 점을 고려하면, 가장 높은 수준의 추정액을 기준으로 해도 건강보험 총지출액의 2.3%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상병수당 도입을 위한 첫 단계로 노동자의 쉴 권리에 대한 법적인 보장을 꼽았다.

김 부연구위원은 “한국은 근로기준법이나 표준취업규칙에서 노동자가 쉴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지 않고 있다. 최소 수준에서 노동자의 병가에 대한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며 "현재 상병수당은 건강보험법 제50조에 명시돼 있으므로 법적 근거에 따라 시행할 수 있는 편의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상병보험이라는 사회보험이 신설돼서 별도의 보험료가 부과되는 형식으로 갈지, 건강보험료를 인상해서 그 안에서 상병수당이 지급되는 방식으로 갈지에 대해서는 검토 및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김상기 기자  bus19@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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