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184개국 중 유급병가·상병급여 모두 없는 국가는 한국 등 11개국 불과
"유급병가 법제화하고, 건강보험 상병급여 신설해 혼합형 보장체계 구축해야"

[라포르시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너19) 팬데믹으로 전 세계 각국이 경기침체와 실직에 따른 소득감소를 보전해주는 방안으로 유급병가와 상병급여를 확대 실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방역을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 차원에서도 소득보전을 위한 유급병가와 상병급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전 세계 184개국 중 유급병가나 상병급여가 모두 없는 11개국에 포함된다. 방역당국이 "아프면 쉬자"고 권고했지만 이를 지킬 수 없는 노동환경이란 의미이다.

사회공공연구원은 최근 민주노동연구원과 공동으로 '외국의 유급병가, 상병급여 현황과 한국의 도입방향'이란 주제로 보고서를 발행했다.

이번 보고서를 작성한 사회공공연구원 이재훈 연구위원은 국제노동기구(ILO)와 국제사회보장협회(ISSA) 자료를 토대로 세계 184개국의 유급 병가휴가 및 상병급여 제도 현황을 분석하고, 한국에서 업무 외 질병이나 부상에 대한 보장 실태를 살폈다. 이를 기반으로 상병

184개 국가에서 유급휴가 및 상병급여 도입 현황을 파악한 결과, 173개국이 유급병가 또는 상병수당을 도입해 업무 외 질병이나 부상에 대한 위험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반면 한국을 포함해 미국, 가나, 세네갈, 시에라리온, 팔라우 등 11개 국가는 유급병가와 상병급여가 모두 부재했다. 

특히 한국보다 1인당 GDP가 낮은 아프리카와 아시아.태평양 국가 등을 비롯한 153개국이 이미 유급병가 또는 상병급여를 실시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국 중에는 한국과 미국 2개 국가만 유급병가와 상병급여 제도가 없었다.

그나마 미국은 최근 각 주별로 유급병가를 법으로 의무화하는 추세이다. 2018년 뉴저지, 워싱턴, 메릴랜드, 로드아일랜드에 이어 2019년 미시건, 그리고 2020년 네바다 주에서 도입했다. 미국 내 13개 주와 콜롬비아DC, 20개 도시와 3개 카운티에서 유급병가를 법으로 보장하고 있다.

이를 감안하면 OECD 회원국 가운데 유급병가나 상병급여가 없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한 셈이다. 그나마 2015년 메르스에 이어 코로나19 사태를 경험하면서 감염병으로 인해 입원 또는 격리되는 동안 유급휴가를 주고, 국가가 비용을 지원하는 법 규정이 신설됐다.

표 출처: 사회보장연구원 '외국의 유급병가, 상병수당 현황과 한국의 도입방향' 보고서 중에서
표 출처: 사회보장연구원 '외국의 유급병가, 상병수당 현황과 한국의 도입방향' 보고서 중에서

이미 상병급여를 도입한 국가 중에는 코로나19 사태 영향으로 상병급여를 더 강화하는 조치도 이뤄지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오스트리아, 프랑스, 독일, 영국, 베트남, 덴마크, 캐나다 등에서는 치료 격리 또는 예방적 자가격리하는 경우에도 상병급여를 지급한다. 호주, 캐나다, 포르투갈은 기존 상병급여 지급 대기기간을 폐지했다. 독일과 아일랜드, 포르투갈, 싱가포르, 캐나다 등은 기존 상병급여 적용대상이 아닌 자영업자 등에게도 지급을 확대했다.

유급병가나 상병급여가 제도적으로 부재한 우리나라는 산업재해가 아닌 업무 외 질병이나 부상으로 인한 실직과 소득상실 위험을 그대로 방치하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법·제도적 보장 없이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 등에서 임의적으로 병가를 시해하고 있다보니 실제 적용받는 노동자는 극히 적다.

한국노동패널(21차년도, 2018) 자료를 분석한 결과, 유급병가 적용률은 1~4인 미만 사업장 12.3%, 5~10인 15.5%에 그쳤다. 300~1,000인 미만 사업장은 71.1%, 1,000인 이상은 80.6%로 나타났다. 비정규직의 유급병가 적용률은 18.7%로 정규직(59.5%)에 비해 훨씬 낮았다.

노동조합이 조직된 사업장의 유급병가 적용률은  85.3%에 달했지만 노조가 없는 사업장은 36.5%에 불과했다. 사업장 규모가 작고, 고용이 불안정할수록, 노조가 없는 사업장일수록 병가휴가 적용률은 낮았다.
 
현행 국민건강보험법 제50조에는 '공단은 이 법에서 정한 요양급여 외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임신·출산 진료비, 장제비, 상병수당, 그 밖의 급여를 실시할 수 있다'고 규정해 놓았다. 정부는 상병수당 관련 법정 근거를 마련해 놓고도 재정 부담 문제를 이유로 도입을 계속 미루고 있다.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생활방역 지침을 마련하면서 '발열 등의 증상을 보이면 출근하지 않기'라는 문구를 썼다가 유급휴가나 상병급여가 없는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해 '발열 또는 호흡기 증상(기침, 인후통 등)이 있거나 최근 14일 이내 해외여행을 한 경우 출근을 자제하기'라는 모호한 문구로 변경했다.  '아프면 출근하지 않고 쉰다'는 당연한 말조차 실행하기 힘든 노동환경이란 점을 정부 스스로 드러낸 꼴이다.

이재훈 연구위원은 "아프면 충분히 쉬고 회복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중요한 사회적 과제"라며 "저임금 비정규 노동자와 특수고용노동자 그리고 영세자영업자까지 포괄할 수 있도록 유급병가를 법제화하고, 건강보험에서 상병급여를 신설하는 혼합형 포괄 보장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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