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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 상병수당' 도입, 29년째 검토만 하는 복지부질병으로 인한 소득상실 보전 없는 건강보험은 '진료비 할인제도' 불과
공단서 도입 논의 기초연구 실시..."중장기적으로 검토"

[라포르시안] 국제노동기구(ILO)는 1952년 열린 국제 노동회의에서 '사회보장에의 최저기준에 관한 조약'(제102호조약)을 채택했다.

이 조약은 의료·질병·실업·노령·산업재해·가족·출산· 장애·유족 등 9개 부문에 있어서 적용될 사고의 종류와 피보험자의 범위 등에 관한 최저기준을 정해 놓고 있다. 특히 '모든 질병에 대해 그 원인을 묻지 않고 (급여를) 지급하도록' 규정했다.

사회보장최저기준조약에 따라 독일과 영국, 프랑스, 일본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대다수 회원국은 업무상 질병 이외에 일반적인 질병 및 부상으로 치료를 받는 동안 상실되는 소득 또는 임금을 현금수당으로 보전해 주는 '상병수당'을 지급한다.

독일과 프랑스의 경우 최고 36개월까지, 일본은 사회보험인 피용자보험 가입자가 질병 발생으로 근로가 불가능할 경우 최장 18개월까지 상병수당을 제공한다. OECD 회원국이 아닌 대만도 상병급여를 도입해 운영 중이다.

한국은 1991년 12월 ILO에 가입했다. 이후 28년이 지났지만 사회보장최저기준조약에서 규정한 상병수당을 도입하지 않고 있다. 그나마 사회보장최저기준조약에서 제시하고 있는 가족급여(노동자의 아동에 대한 현금 지원) 관련해 2018년 9월부터 '아동수당'을 도입해 지급하고 있다.

그러나 상병수당 도입은 감감무소식이다. 

국민건강보험법에 상병수당 지급 근거규정이 생긴 지 30년 가까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우선, 재원 마련 어려움 등의 이유로 도입 논의에 나서지 않고 있다.

현행 국민건강보험법 제50조(부가급여)에 따르면 건강보험공단은 이 법에서 정한 요양급여 외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임신·출산 진료비, 장제비, 상병수당, 그 밖의 급여를 실시할 수 있다. 임신·출산 진료비, 장제비는 이미 현물급여 방식으로 지원하고 있지만 상병수당 도입은 맨날 뒷전이다.  

시민사회와 환자단체, 노동계에서 정부를 상대로 상병수당 도입을 지속적으로 촉구해왔다.

이들 단체는 "OECD 국가 중 스위스, 미국을 제외하면 모든 나라에서 질병으로 인한 소득감소를 보전하는 상병수당을 지급하고 있다"며 "상병수당의 조속한 도입은 질병으로 인한 생활임금을 국가가 보장함으로서 질병으로 인한 가계 파탄과 가족 붕괴를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이라고 지적하며 상병수당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상병수당이 도입되지 않는다면 한국의 건강보험제도는 사회보장제도가 아니라 '진료비 할인제도'에 불과할 것이라 지적도 나오고 있다. 

앞서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2006년 작성한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 권고안'을 통해 상병수당 의무 급여화를 통한 건강보험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인권위는 권고안에서 "건강보험법 제45조에 상병수당을 임의급여로 규정하고 있으나 그 시행령에 임의급여를 장제비와 본인부담보상금 두 종류로만 한정해 사실상 상병수당 지급이 제외돼 있다"며 "상병수당의 의무급여화 등을 통한 건강보험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인권위 권고에도 불구하고 이후 관련 논의는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복지부 "상병수당 도입보다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가 우선"

이런 가운데 최근 복건복지부가 상병수당 도입을 중장기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보여 주목된다.

복지부는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이 최근 국정감사에서 '상병수당 도입 검토현황' 질의의 서면답변을 통해 "상병수당 도입보다는 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를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사료된다"는 내용의 답변을 제출했다.

복지부는 서면답변에서 "의료비 부담이 큰 고액질환 및 필수의료 서비스 등의 보장성 강화를 충실히 추진하도록 하겠다"며 "필수의료에 대한 충분한 보장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상병수당의 상당 부분이 의료비에 지출될 가능성이 크므로 제도 도입의 실효성이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다만 건강보험공단에서 진행 중인 상병수당 도입 관련 연구결과가 나오면 이를 근거로 도입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복지부는 "건보공단에서 '상병수당 도입 논의를 위한 기초연구'를 올해 3월부터 11월까지 진행할 예정"이라며 "앞으로 공단 연구 결과를 참고해 상병수당 도입을 중장기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건강보험공단이 2005년과 2015년에 실시한 '상병수당' 도입 관련 연구보고서.

그러나 여러 국가에서 상병수당을 도입해 운영 중이고, 국내에서도 지속적으로 도입 논의와 함께 제도 운영방안에 대한 연구가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이제와서 상병수당 도입 논의를 위한 '기초연구'를 수행하는 건 적극적인 도입 의지가 없음을 보여주는 게 아닌지 의심이 든다.  

실제로 건보공단은 지난 2005년과 2015년에 각각 '주요국의 상병수당제도 운영현황 및 제도도입의 타당성 검토', '주요국의 상병수당제도 현황 고찰 및 시사점'이란 연구를 실시한 바 있다. 

보건의료 전문가들은 "질병 치료비만 보장하는 현행 건강보험제도에서 업무상 질병 이외에 일반적인 질병 및 부상으로 치료를 받는 동안 상실되는 소득 또는 임금을 현금수당으로 보전해 주는 '상병수당' 도입은 절실하다"며 "사회보장제도가 취약한 한국에서 중증질환으로 노동력을 상실하고 직장을 잃으면 빈곤층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상병수당 도입은 더욱 그렇다"고 강조했다.

김상기 기자  bus19@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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