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사연, 과로 인한 질병부담 분석..."연구 한계 고려하면 사회적 비용부담 이보다 훨씬 클 것"

[라포르시안] 2017년 기준으로 한국 노동자의 연간 평균 노동시간은 총 2024시간에 달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759시간보다 265시간이 많았다. OECD 회원국 가운데 멕시코(2257시간)와 코스타리카(2179시간)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한국은 고도의 압축성장을 통해 산업화에 성공하면서 과로는 근면과 성실함으로 인식됐고, 적정 노동시간을 보장하기보다 적은 인력으로 노동력을 쥐어짜는 방식의 근무환경이 산업체 전반에 일반화됐다.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으로 인해 각종 질병에 시달리거나 죽음으로 내몰린다. 심지어 환자를 치료하는 병원이 되레 과로로 인해 환자를 만들어낼 지경이다.

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 전공의 등의 장시간 노동은 악명이 높다. 주당 100시간이 넘는 장시간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한 전공의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몇 차례 있었다. 간호사들도 만성적인 인력부족 상태에서 연장근무가 일상화 돼 있고 직장내 괴롭힘으로 인한 자살 사건도 잇따르고 있다.

'과로사회'로 불리는 한국에서 장시간 노동체제로 인해 발생하는 연간 질병부담이 최대 7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최근 '과로로 인한 한국 사회 질병부담과 대응 방안'(책임연구자 정연 보사연 부연구위원)이라는 연구보고서를 펴냈다.

이 연구는 과로와 건강 간의 관련성, 과로로 인한 한국 사회의 질병부담을 파악하고, 과로 관련 사회보장제도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개선방안을 찾기 위해 진행했다.

연구진은 2016년 한 해 동안 과로로 인해 발생한 한국 사회의 경제적 손실을 사회적 관점에 근거해 추계했다. 과로는 60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과 비표준적 근무시간 노동(교대근무)의 두 가지 방식으로 각각 정의하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질병의 범위는 심뇌혈관계질환과 정신질환으로 한정했다.

이를 위해 1990년 이후 발표된 연구 대상 메타분석 결과를 비롯해 2016년 국민건강영양조사자료, 2016년 건강보험 진료통계, 통계청 사망원인통계 2016 등의 자료를 분석했다.

과로로 인한  심뇌혈관계질환 및 정신질환 유병 및 사망의 상대위험도(RR)는 관련 연구 메타분석을 통해 추정하고, 건강보험 진료통계 자료와 통계청 사망원인통계 자료를 활용해 유병자 수 및 사망자 산출했다.

심뇌혈관계질환 및 정신질환의 의료비는 2016년 한 해 동안 우리나라 20~69세 인구 중 심뇌혈관질환 혹은 정신질환으로 인해 의료이용을 한 적이 있는 환자 수에 해당 질병에 대한 과로의 인구기여위험도를 곱해 총환자 수를 산출했다. 

여기에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소요되는 연평균 진료비를 곱하는 식으로 과로로 인해 발생한 연간 질병비담을 추계했다. 산재보험급여자료에서 파악한 질환별 평균 휴업일수를 활용해 과로에 따른 질병 이환으로 인한 작업손실비용을 추정했다.

분석 결과, 전체 심뇌혈관질환 유병 중 장시간 노동(주당 60시간 이상)으로 인한 유병 비율은 연령대별로 남성의 경우 1.4%~10.9%까지 분포했고, 여성은 0.5%~3.3%의 분포를 보였다. 60시간 이상 장시간 노동으로 한정할 경우 유병 비율은 남성은 2.1~16.1%, 여성은 2.9~16.8%로 훨씬 커졌다.

정신질환의 경우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유병 비율을 보면 남성이 0.7~6.2%, 여성은 0.4~2.3%에 분포했다. 사망의 경우 남성은 0.2~2.1%, 여성은 0.5~3.4%로 나타났다.

이를 경제적 비용으로 환산한 결과,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경제적 비용은 장시간 노동에 따른 질병 발생의 상대위험도 산출 방식에 따라 남성이 최소 약 2조 5500억원에서 최대 4조1100억원, 여성은 최소 8000억원에서 최대 1조 4700억원 정도로 추계됐다.

과로를 교대근무 여부로 정의해 분석한 결과에서는 전체 심뇌혈관질환 유병자 중 교대근무로 인한 유병 비율이 남성은 0.6~1.4%, 여성은 2.5~5.1%로 나타났다.

정신질환 유병자 중 교대근무로 인한 유병 비율은 남성 1.7~3.9%, 여성 2.8~5.7%였다. 사망의 경우 남성은 0.1~0.3%, 여성은 1.9~4.0%로 교대근무가 여성에게 미치는 질병부담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교대근무에 따른 질병부담을 경제적 비용으로 환산하면 남성은 5300억원, 여성은 1조 5900억원 정도로 추계됐다. 장시간 노동과 교대근무 등의 과로로 인한 질병부담을 합치면 연간 5조~7조원가량의 막대한 비용을 초래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노동위원회 등 30개 노동, 시민사회단체가 2017년 9월 12일 오전 프란체스코 회관에서 과로사 OUT 공동 대책위원회 발족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제공: 참여연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노동위원회 등 30개 노동, 시민사회단체가 2017년 9월 12일 오전 프란체스코 회관에서 과로사 OUT 공동 대책위원회 발족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제공: 참여연대

"근본적인 대안은 과로 자체 줄이는 것"

연구진은 과로로 인한 인한 사회 전체의 질병부담이 이번 연구에서 추계한 것보다 실제로는 훨씬 더 클 것으로 추정했다.

이번 연구에서 장시간 노동의 기준으로 적용된 '주당 60시간'은 산재보험에서 과로의 당연인정기준으로 활용하는 기준이다. 하지만 국제노동기구(ILO)는 장시간 노동의 기준으로 주 48시간을 제시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주당 근무시간이 52시간을 초과하지 않도록 법을 개정한 점을 고려하면 주당 60시간이라는 수치는 과로를 다소 보수적으로 정의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과로에 따른 질병의 범위로 심뇌혈관계질환과 정신질환만을 포함했는데 선행 연구를 보면 과로가 수면, 대사성 질환, 암, 근골격계질환 등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됐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에서 심뇌혈관계질환과 정신질환에 대한 의료비를 추정하는 과정에서 의료이용을 위해 지출한 교통비나 간병비 등의 내용도 반영하지 못했다"며 "아픔에도 불구하고 참고 출근하는 소위 프리젠티즘이나 조기 퇴직 혹은 이직에 따른 생산성 손실 등의 비용은 자료의 한계로 분석하지 못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과로로 인해 우리 사회가 지불하고 있는 사회적 비용의 크기는 이번 연구에서 추정한 것보다 훨씬 클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과로로 인한 건강 문제를 막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대안은 과로 자체를 줄이는 것이다. 그러나 불가피하게 이러한 노동이 필요한 경우라면 노동자의 건강을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로서 의학적 관리와 함께 법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연구진은 지적했다.

연구진은 보고서를 통해 "과로로 인한 건강 문제가 발생했다면 노동자들의 적절한 치료와 재활, 직장 복귀를 도울 수 있도록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 우선 과로에 대한 산재보험 인정기준을 완화하고 산재보험 급여의 보장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비급여 부문을 축소하고 휴업급여의 수준을 점진적으로 높임으로써 산재보험의 안전망 기능을 보다 강화해야한다"고 제안했다.

또한 "효과적인 재활 서비스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질병 발생에서 직업 복귀에 이르기까지 연속적이고 통합적인 재활 서비스 전달체계를 확립해야 한다"며 "질병 발생의 원인과 관계없이 아픈 노동자에 대해서는 공적제도를 통해 동일하게 보장해 줄 수 있도록 상병수당제도 도입에 대한 논의가 더욱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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