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의료정책
질병의 고통보다 아파서 가난해질까봐 더 불안한 한국인한국사회 내재된 '건강 불안정성' 들여다봐야..."건강영역서 불안정성 해소할 정책적 접근 시급"

[라포르시안] 한국은 해외 선진국이 보건의료 분야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룩한 성과를 단 수십 년 만에 압축적으로 완성했다.

의료보험을 도입한 지 12년 만인 1989년 전국민 건강보험제도를 갖췄다. 속도만 빨랐던 게 아니다. 의료의 질적인 면에서도 눈부신 성장을 했다.

OECD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의료비를 지출하면서도 건강지표는 선진국 수준에 도달했다. 

'OECD 헬스데이터 2015' 보고서에 따르면 건강상태를 나타내는 지표 중에서 출생시 기대수명은 81.8세로 OECD 평균(80.5세)를 뛰어 넘었다. 영아사망률은 출생아 1,000명당 3.0명으로 OECD 평균(4.1명)보다 더 낮다. 암과 심뇌혈관질환에 의한 사망률은 OECD 평균과 비슷하거나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지표는 한국이 전 세계에서 유례없는 건강보험제도 도입과 선진 의료기술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게끔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은 자신의 주관적인 건강상태에 대한 인식은 상당히 낮은 편이다. 객관적 건강 지표인 기대수명은 OECD 평균보다는 높지만 주관적 건강상태는 OECD 국가 중 거의 최하위에 속한다.

보건복지부의 '국민건강영양조사' 자료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주관적 건강상태가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비율은 32.0%에 그쳤다. 같은 기간 한국보다 기대수명이 약 7세가 적은 멕시코(65.5%)와 비교해도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심지어 전국민 건강보험제도가 구축됐음에도 불구하고 민간보험 가입률은 2005년 50%대에서 2013년 61%로 급격히 상승했다.

"질병 때문에 겪는 고통보다 질병으로 인해 오는 경제적인 타격이 더 불안" 

왜 이런 현상이 빚어질까. 그 원인을 '건강 불안정성(precariousness)'에 기반해 분석한 연구결과가 나왔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보건사회연구'(제37권 제4호)에 '한국인의 건강불안정성 요인에 대한 탐색적 연구'라는 제목의 논문이 게재됐다.

이 논문은 건강영역에서 나타나는 국민의 불만족과 불안, 제도의 실효성 부족 현상을 '건강 불안정성'으로 지칭하고 그 원인을 탐색했다.

한국 사회는 고용 부문만큼이나 건강영역의 불안정성이 높은 편이다. 갈수록 커지는 소득계층간 건강불평등, 의료정보의 비대칭성, 낮은 건강보험 보장률과 부실한 사회안전망 등이 겹쳐지면서 건강영역의 불안을 증폭시킨다.

연구진은 한국 사회의 건강 불안정성을 구성하는 주요 요인을 분석하고, 다양한 인구집단이 참여하는 그룹 인터뷰를 통해 주관적으로 느끼는 건강 불안정성의 실체에 접근했다. 

이번 연구를 위해 유사한 특징을 가진 6~9명의 참여자로 구성된 복수의 그룹을 대상으로 특정 주제에 집중해 토론을 전개하며 조사하는 '포커스 그룹 인터뷰'를 실시했다.

인터뷰 참여자는 총 61명으로, 남성 30명과 여성 31명으로 구성했다. 남성 30명 중 20세에서 39세까지인 청년그룹에 포함된 참여자는 17명이었고, 13명은 40세에서 59세까지인 중년그룹에 포함됐다. 여성 31명 중 청년그룹은 11명, 중년그룹은 20명이었다. 모든 참여자는 경제
활동인구로 정규직이 31명, 비정규직이 30명이었다. 이들을 대상으로 2016년 8월부터 9월까지 인터뷰가 진행됐다.

표 출처: '한국인의 건강불안정성 요인에 대한 탐색적 연구'(배그린, 문정화, 강민아)

연구 결과 건강 불안정성을 갖게 된 원인으로 ▲노화, 사고, 건강보장 제도 지속에 대한 예측불가능성 ▲질병예방과 건강유지를 위한 도구나 권한의 부재 ▲안정되어 보이는 건강보장 제도의 허구성 등 세 가지로 지목됐다.

논문에 따르면 모든 참여자 그룹은 노화 및 가족력 등 예측불가능하게 찾아오는 질병에 대한 불확실성과 향후 발생하게 될 건강문제에 대응할 경제력과 시간적 여유에 대한 불확실성에 대해 공감했다.

특히 청년그룹은 국가 상황에 따른 사회보장제도의 예측불가능성에 대한 불확실성을, 남성 비정규직 그룹은 갑작스런 사고발생이나 환경적 여건에 따른 질병발생의 불확실성 문제를 토로했다. <관련 기사: ‘열악한 노동환경’ 들춰낸 메르스>

인터뷰에 참여한 많은 사람들이 질병이 나에게 언제 어떤 형태로 발현될지 모르는 것을 두려워했다.  직종과 관련된 안전사고나 교통사고를 비롯하여, 최근 뉴스에서 자주 보도되는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각종 화학물질에 대한 두려움도 불안정성을 가중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불확실한 질병의 문제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고, 적절한 치료시기, 의료기관, 치료방법을 선택해야하는 많은 과정에 대한 두려움도 컸다.

“야근을 엄청 자주 해야 되고 아니면 집에서도 늦게까지 일해서 아침에 도저히 못 일어나겠는데 출근을 해야 된다거나 너무 아파서 며칠 쉬었으면 좋겠는데 병원 갈 시간도 없이 출근을 해야 된다거나 하면 그런 면에서는 좀 리스키한 게 있죠.” <'포커스 그룹 인터뷰' 중에서>

“저는 아픔으로써 일어나는 고통과 삶의 제약 보다는, 아픔으로써 오는 경제적인 타격, 이런게 더 불안하거든요 ... 일단은 중요한게 직업을 잃게 되니까.” <'포커스 그룹 인터뷰' 중에서>

이미지 출처: SBS뉴스 보도화면 갈무리.

모든 그룹의 참여자들이 공통적으로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근로환경에서 야기되는 통제권한의 부재에 깊은 우려를 표명했고, 주로 여성그룹에서 의료서비스 특유의 정보격차로 인한 신뢰할 만한 정보의 불충분성과 경제적 부담으로 인한 통제권한의 부재를 호소했다.

제약사항이 많은 근무여건과 경제적 자원이나 시간의 부족, 정확한 정보의 부족 등으로 인해 자신이나 가족의 건강을 보호하고 질병을 예방하기위한 자원이나 통제권한이 없다는 문제를 토로했다. <관련 기사: 예방 가능했거나 피할 수 있었던 죽음, 사는 곳 따라 큰 차이 난다>

국민건강보험제도의 지속가능성이나 충분한 보장성에 대한 불신도 건강 불안정성을 초래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꼽혔다.

“좋은 직장이냐 아니냐에 따라서도 건강검진의 등급이 달라지더라구요. 왜냐하면 제가 다니던 직장은 소규모다보니까 거의 그 직장인 건강검진 1년에 한 번씩 받는 것도 정말 기본검사였거든요. 그런데 대기업에 다니는 제 친구는 보니까 건강검진 받을 때 그 큰 병원에 가서, 본인이 돈을 더 많이 내지 않았음에도 더 많은 검사를 받는 걸 보니까 확실히 건강관리하고 이럴 때도, 예방적인 측면에서도 돈이 있으면 아무래도..." <'포커스 그룹 인터뷰' 중에서>

“만약에 큰 병에 걸렸을 때는 일단 얼마나 커버될지 모르니까 사보험이 하나 있으면, 입원비라든지 그런 게 나오진 않잖아요. 수술비라든지 그런 특약과 관련된 걸 위해서는 사보험이 같이 있어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포커스 그룹 인터뷰' 중에서>

표면적으로는 안정되어 있고 잘 갖추어진 건강보험제도와 잘 발달된 의료기술이 실제적으로 경험하는 제도와 자원에 대한 접근성의 불충분성, 그리고 사회경제적 격차가 건강격차로 이어질 수 있는 현실에 대해 건강 불안정성을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60%대 수준에서 정체된 낮은 건강보험 보장률 때문에 건강보장시스템이 사회안전망으로 작동하지 못하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국민들이 별도의 비용을 부담해 민간보험에 가입하는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다.

상병수당이란 업무상 질병 이외에 일반적인 질병 및 부상으로 치료를 받는 동안 상실되는 소득 또는 임금을 현금수당으로 보전해 주는 급여다. 현재 국민건강보험법 제50조에 상병수당을 '부가급여'로 지급할 수 있다고 규정해 놓았지만 거의 사문화된 상태다.

뿐만 아니라 질병 발생시 의료비 부담과 동시에 노동력 상실로 인한 소득감소로 이어져 빈곤계층으로 추락하는 것에 대한 불안감도 상당히 컸다. <관련 기사: 한국의 건강보험이 '진료비 할인제도'에 불과한 이유>

이 같은 인터뷰 결과는 건강보장의 정책적 목표를 정할 때 보장률 수치만이 아니라 건강영역에서의 불안정성을 해소하는 정책적 접근이 시급하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연구진은 지적했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도출된 건강 불안정성을 구성하는 세 차원에 대해 다차원적으로 정책적 접근을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예측불가능성에 기인한 불안정성을 줄이기 위해서는 건강에 내재된 본성인 유전과 노화는 불가항력적이라고 하더라도 환경에 대한 정부차원의 노력과 안전사고에 대한 더 철저한 예방대책은 국가 차원에서 반드시 논의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인의 건강유지에 대한 통제권한에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하다.

연구진은 "환자의 의사결정 능력과 권한을 고취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충분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가 제공되어야 한다"며 "기존의 의료전문가들과 환자 사이에 존재하는 정보 비대칭은 건강보험제도 하에서 과잉진료나 의료쇼핑과 같은 부작용을 야기하는데 일조하기도 했다. 정부차원에서 제도적인 보완으로 충분하고 신뢰할 수 있는 의료정보의 구축과 제공을 고민한다면 국민의 건강결정권을 확대하며 동시에 효율적인 의료이용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와 동시에 보다 유연한 근로환경 조성도 시급하다.

연구진은 "과도한 경쟁과 비효율적인 업무형태를 강조하는 현재의 근로문화에서는 건강을 위한 관리도, 치료를 위한 물리적 접근도 어렵기만 하다"며 "보다 유연한 근로문화가 정착돼야 개인별 건강 통제권한이 높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안전망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는 보편적 건강보장을 위한 정책적 접근방식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연구진은 "포커스 그룹 인터뷰를 통해 드러난 건강보장의 가장 큰 불안정성인 생계유지 곤란에 대비한 질병수당에 대해서도 충분히 고민해볼 여지가 있다"며 "건강보험의 치료적인 보장도 아직 미흡한 부분이 있지만, 그 보다도 더 두려운 것은 질병으로 인한 생계곤란이라는 참여자들의 응답이 많았다. 질병으로 인한 고용의 중단과 생계곤란은 치료에 대한 의욕과 삶의 의욕을 상실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건강보험에서 상병수당을 제공하는 등 실질적이고 다층적인 건강보장 정책 접근을 시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상기 기자  bus19@rapportian.com

<저작권자 © 라포르시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상기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1
전체보기
  • sbdfgbp 2018-01-14 21:58:14

    암 수술 받고. 또 항암이라든지 방사선 치료 할 땐 보험에서 계속 대주지 않기 때문에 나중에 치료비하고, 만약에 일을 못하게 되면 그 돈으로 생활도 하게 되고 이래서 민간보험이 필요하다...건강보험에서 질병으로 인해 소득상실을 보전해 주는 것도 아니고,   삭제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