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방역 지침 실천하기 힘든 노동환경...남인순 의원, 국회서 노동·시민단체와 상병수당 도입 축구

[라포르시안] '아프면 3~4일 집에 머물기', '발열 또는 호흡기 증상(기침, 인후통 등)이 있거나 최근 14일 이내 해외여행을 한 경우 출근을 자제하기'

지난 6일부터 시작한 '생활 속 거리 두기(생활방역)' 실천을 위한 지침 중 일부이다. 정부는 개인과 사업장으로 구분해 생활방역 지침을 제시했다.

생활방역을 위한 개인과 사업장 지침에서 가장 먼저 제시한 사항이 아프면 집에 머물거나 노동자는 출근을 자제하기다. 당초 정부가 만든 지침 초안에서는 '발열 등의 증상을 보이면 출근하지 않기'였다.

지침 문구가 바뀐 건 아프면 출근하지 않기를 실천하기 힘들다는 현실적인 측면을 고려한 것이라고 한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개인방역 5대 행동수칙'에 대한 대국민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10대를 제외한 모든 연령대에서 ‘아프면 3∼4일 집에서 쉬기’가 개인, 사회·구조적으로 실천이 가장 어려운 수칙이라고 답했다.

이 수칙을 놓고 ‘쉴 수 없는 상황에서의 대응 방법’을 가장 궁금해했다. 특히 코로나19 확진이나 자가격리, 진단검사 등을 겸험한 응답자들은 휴가 성격, 개인에게 미칠 불이익 보호 여부, 수칙 준수 위반에 대한 제재 여부 등에 대해 구체적인 우려를 나타냈다. 그만큼 한국의 노동환경이 '아프면 출근하지 않고 쉰다'는 당연한 말조차 실행하기 힘든 상황이라는 것을 드러낸다.

정부는 코로나19 감염으로 입원치료나 격리된 사람들에게 생활지원비와 유급휴가비를 지원하기로 했다. 하지만 감염병 유행 같은 특수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예외적으로 지원하는 것보다는 아플 때 소득손실 걱정없이 쉴 수 있는 노동환경을 만드는 게 필요하다는 지적이 높다.

이를 위해 가장 시급한 게 바로 '건강보험 상병수당' 도입이다. 상병수당이란 건강보험 가입자가 업무상 질병 외에 일반적인 질병 및 부상으로 치료를 받는 동안 상실되는 소득 또는 임금을 현금수당으로 보전해 주는 급여다.

현행 국민건강보험법 제50조에는 '공단은 이 법에서 정한 요양급여 외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임신·출산 진료비, 장제비, 상병수당, 그 밖의 급여를 실시할 수 있다'고 규정해 놓았다. 예전부터 법적 근거가 마련돼 있었지만 상병수당은 잊혀진 급여 항목이다. 2015년 메르스 사태를 겪으면서 상병수당 도입 논의가 일었지만 금세 사그라들었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상병수당 도입 논의가 재소환됐다. <관련 기사: "아프면 쉰다"는 그 당연한 말...코로나19가 들춰낸 상병수당 필요성>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과 민주노총, 한국노총, 건강과대안, 보건의료단체연합,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참여연대는 지난 12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상병수당과 유급병가휴가제도 도입'을 촉구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코로나19 감염병 사태는 우리나라의 사회안전망이 얼마나 부실한지를 여실히 드러냈다”면서 “누구나 아플 때 쉴 수 있어야 하며, 상병수당 도입과 유급병가휴가 법제화는 노동자가 아플 때 소득감소 걱정 없이 치료받을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우선적 과제”라고 강조했다.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국회가 나서 상병수당과 유급병가휴가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최근 정부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생활방역으로 전환하면서 첫 번째 수칙으로 ‘아프면 집에서 쉬기’를 제시했지만, 대부분의 노동자는 아파도 쉴 수 없다”며 “쉼은 곧 소득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산업재해뿐만 아니라 질병에 걸린 노동자가 맘편히 치료에 전념할 수 있도록 정부는 즉시 상병수당을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건강보험법 상에 관련 법적근거가 있기 때문에 상병수당을 도입하는 건 정부 의지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질병에 대한 소득보장제도는 상병수당 지급 외에도 회사의 법적 책임 강화를 통해 유급병가를 의무화하는 방법이 있는데, 정부와 국회는 유급병가휴가를 즉시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병수당과 함께 유급병가제도 도입도 촉구했다. 현재 사업장에 업무 외 상병 관련 휴가 혹은 휴직 제도가 있더라도 아픈 기간 동안 직장을 유지한 경우는 매우 드물고 휴직하더라도 대부분 무급이 적용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유급병가를 보장하는 기업은 7.3%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노동자는 본인이나 가족에게 질병이 발생하면 근로기준법상 연차휴가를 사용해 치료를 받았다.

남인순 의원과 노동·시민단체는 "유급병가휴가를 법제화해 노동자가 안정적으로 고용을 유지하며 치료받을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코로나19 재유행이나 또다른 신종 감염병 유행에 대비해서라도 상병수당과 유급휴가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전진한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국장은 “정부가 내놓은 생활방역 제1수칙 ‘아프면 3~4일 집에서 쉰다’는 지키기 어려운 수칙이고, 유급휴가와 상병수당이 도입되지 않으면 코로나19 방역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며 “구로 콜센터 사례에서도 확인했듯이 아파도 쉴 수 없는 환경에서 문제가 커졌다”고 지적했다.

전 정책국장은 “한국에서 경제적 이유로 치료를 포기하는 환자가 많은 이유 중 하나가 아프면 소득보전이 안 되기 때문”이라며 “질병과 감염에 취약한 저소득층·노인·불안정 노동자들이 치료를 포기하고 있는 현실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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