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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찾을 동네의원·중소병원 없는데...합리적 의료이용만 강요하면 어쩌나복지부 '의료전달체계 개선 단기대책'에 공급자·이용자 모두 우려
"비용통제적 관점서 환자 의료이용 제한해선 안돼"

[라포르시안] 보건복지부가 의료전달체계 개선을 위한 단기대책의 일환으로 상급종합병원의 경증환자 진료를 억제하는 쪽으로 지정기준을 변경하고 수가 보상 체계를 개선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이런 단기대책 방안이 병원계와 시민단체 양쪽 모두로부터 반발을 사고 있다.

이번에 복지부가 마련한 단기대책의 핵심은 상급종합병원의 경증환자 수가는 인하하고 증증환자 진료 수가는 인상해 경증환자 쏠림을 억제하고, 병의원의 진료의뢰·회송 시스템을 내실화 하는 데 맞춰졌다.

이를 위해서 상급종합병원 지정기준에서 중증환자 비율은 올리고 경증환자 비율은 낮추기로 했다. 의료 질수가, 종별가산 등 경증환자 수가는 인하하고 중환자실 등 중증환자 수가는 인상할 방침이다.

경증 100개 질환에 포함되는 경증 외래환자에 대해 의료질평가지원금을 지급하지 않고 상급종합병원에서 외래 경증으로 확인된 환자는 종별가산율(30%) 적용을 배제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상급종합병원에 내원한 경증 환자나 상태가 호전된 환자는 신속히 지역 병·의원으로 돌려보내도록 회송 절차와 기준을 강화하고, 각종 의료기관 평가에도 이를 반영해 의료기관의 참여 유인을 높일 계획이다. 

환자 스스로 적정 의료이용을 유도하는 정책도 마련했다. 경증질환(100개 질환)을 가진 외래환자의 경우 상급종합병원 이용 본인부담률(현재 60%)을 단계적으로 인상하고 본인부담상한제에서도 제외해 의료비 부담을 높이는 방안을 검토할 방침이다.

병협·의협, 단기대책 실효성에 의문 제기

 병원계는 복지부가 마련한 단기대책에 실망감을 표시했다. 무엇보다 상급종합병원이 경증환자가 내원할 경우 진료를 거부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이 없는 상황에서 경증환자를 진료했다고 패널티를 부과하는 건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대한병원협회는 지난 5일 공식 입장을 통해 "의료법상 진료거부권이 없고 환자를 유인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단순히 경증환자를 진료했다고 의료공급자인 상급종합병원에 종별가산과 의료질평가지원금을 주지 않는 패널티를 적용하는 것에 절대 수용할 수 없다"며 "우리나라 의료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다 해온 상급종합병원의 헌신과 노력은 인정하기는 커녕 보장성강화 등 정부의 정책에서 비롯된 환자쏠림의 문제에 대한 책임을 상급종합병원에 전가하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고 반발했다.

상급종합병원의 경증환자 진료를 억제하기 전에 환자들이 지역 중소 병의원을 신뢰하고 찾을 수 있도록 기능과 역할을 강화하는 게 우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병협은 "경증환자들이 지역 및 중소 병·의원을 믿고 찾을 수 있도록 지원책을 마련하고 기능과 역할을 강화하는 정책을 편 후 이같은 제도를 시행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며 "의료전달체계가 명확히 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의료전달체계 개선 단기대책의 실효성을 확신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병협은 "때문에 진료 의뢰 및 회송체계에서 상급종합병원을 제외한 나머지 의료기관들의 역할을 명확히 하고 참여가 보장되어야할 것"이라며 "이를 위해 정부는 종별·규모·지역적 특성을 감안한 중소 병·의원 활성화 방안을 제시해야한다"고 촉구했다.

내년에 실시하는 제4기 상급종합병원 지정을 앞두고 새로운 지정기준을 제시할 경우 큰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병협은 "상급종합병원 지정기준에서 규정하고 있는 단순진료질병군을 적용하여 의료현장에서의 혼란을 최소화해 줄 것을 요구한다"며 "이번 의료전달체계 개편안은 비용통제적 관점에서 판단돼 환자에게 의학적 불이익이나 기회를 박탈해서는 안되며 더욱이 의료기관에게 일방적으로 책임을 감내하라고 하는 식으로 제도가 설계되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대한의사협회는 복지부의 단기대책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의료현장의 문제점에 대한 구체적 해결방안 마련이 없이 성급하게 시행할 경우 실효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의협은 지난 6일 성명을 내고 "정부가 제시한 금번 개선안의 취지에는 공감함을 밝힌다. 하지만 환자가 전화나 인터넷으로 상급종합병원을 사전에 예약한 후 형식적인 진료의뢰서의 발급을 위해 1차 의료기관을 내원하는 일이 만연하는 등 의료전달체계는 이미 엉망이 되어버렸다"며 "작금의 현실에서 현장의 문제점에 대한 적극적인 의견수렴, 이에 대한 구체적 해결방안 마련이 없는 제도의 성급한 시행은 개선안의 정착 및 실효적 운용으로 연결될 수 없다"고 내다봤다. 

의료전달체계가 지금과 같이 붕괴된 원인은 정부가 의료현장의 실정을 반영하지 못한 제도를 설계하고, 문재인 케어를 통해 상급종합병원 이용 문턱이 크게 낮아졌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의협은 "현행 의료전달체계가 상급종합병원 진료를 위한 형식적인 절차로 전락하고 각 종별 의료기관이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게 된 이유는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못한 의료전달체계의 설계, 의료전달체계의 붕괴를 가속화한 문재인케어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며 "수십 년 동안 고착된 고질적인 문제를 바로잡는 과정에서의 현실적 어려움과 부담을 의료기관의 책임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왜곡된 공급체계서 의료이용 합리성 기대하는 게 비합리적"

시민단체에서도 복지부의 의료전달체계 개선 단기대책에 우려를 표명했다. 환자가 신뢰할 수 있는 주치의사나 지역 중소 병의원이 부재한 상태에서 대형병원 진료를 선호하는 의료이용 행태를 문제삼고, 비용부담을 높여 이를 억제하도록 유도하는 것은 잘못된 정책 방향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건강세상네트워크는 10일 논평을 내고 상급종합병원의 경증환자 쏠림을 억제하기 위한 정책 추진에 앞서 의료공급체계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담보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건강세상은 "국민 입장에서는 믿고 신뢰할 만한 적합한 의료기관을 이용하는 것이 중요하나 환자를 대리하여 이를 안내하고 보장해 주는 구조나 체계는 존재하지 않고, 병·의원과 대형병원은 각자의 기능과 역할과는 무관하게 무분별하게 환자 유치를 해왔다"며 "이 같은 고비용과 비효율로 점철된 왜곡된 공급체계 안에서 국민들에게 의료이용의 합리성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비합리적"이라고 지적했다.

건강세상은 "국민의 입장에서 볼 때 증상 발생 시에 적합한 의료기관 어느 곳을 가야 할지 알지 못하며, 동일한 증상으로 가까운 지역의 병의원에 방문하더라도 의료기관간의 진단 및 처치가 상이 하고 비용 발생도 제각각인 상황이 발생한다"며 "의료쇼핑을 일탈 행위처럼 규정할 것이 아니라 이 같은 현상 이면에 자리잡고 있는 의료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성 저하 문제를 보다 심각하게 인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소 병원을 이용하지 않는 이유> 표 출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미래 보건의료 정책 수요 분석 및 정책 반영 방안' 보고서

무엇보다 지역사회에서 건강상의 문제를 상담하고 지속적으로 포괄적인 건강관리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일차의료기관이나 주치의가 없는 상태에서 최초 증상이 발생했을 때 합리적인 의료이용을 강요하는 건 모순이다.

이미 의료공급체계에서 중소병원은 존재감 자체를 잃었고, 동네의원은 접근성이 좋긴 하지만 의료서비스 질에 대한 신뢰도를 많이 잃은 상황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최근 펴낸 '미래 보건의료 정책 수요 분석 및 정책 반영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성인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중소병원 이용 여부를 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47.4%는 중소병원을 거의 이용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중소병원을 잘 이용하지 않는 이유로는 ‘큰 병이면 대학병원을, 일상적인 병이면 동네병원을 가는 게 나아서’라는 응답이 54.9%로 가장 많았다.

응답자 4명 중 1명은 동네의원 이용 후 1개월 이내에 동일 질환으로 대학병원, 상급종합병원 등 대형병원을 이용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이유로는 '보다 전문적인 검사·치료를 위해 동네의원에서 대형병원으로 의뢰’가 47.4%로 가장 많았다. ‘보다 신뢰할 수있는 검사 결과를 얻기 위해서 본인 선택 또는 진료의뢰서 요청’(29.0%), ‘상급종합병원 이용을 위해 동네의원에서 진료의뢰서만 발급’(12.6%), ‘최신 의료장비와 의료시설이 더 좋아서’(6.5%)라는 응답 순이었다.

이런 조사결과는 중소병원과 동네의원 의료서비스에 대한 만족도와 신뢰도가 상당히 낮다는 것을 보여준다. 복지부의 단기대책은 이같은 문제를 방치한 채 환자 스스로 알아서 합리적인 의료이용을 하라고 강요하면서 경증으로 대형병원을 방문했을 때 본인부담률을 인상하는 방식으로 의료이용 문턱을 높이겠다는 셈이다. 

건강세상은 "단순히 상급종합병원 집중을 방지하고자 국민들의 비용부담을 높인 것이라면 이러한 제도운영은 절대로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며 "공급자나 정부관료의 관점이 아니라 ‘환자경험’을 근거로 의료기관의 신뢰성을 저해하는 요인들을 찾아내야 하며, 일차의료 영역에서는 환자를 대리하는 문지기 역할도 분명히 있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상기 기자  bus19@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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