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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사태서 비롯된 의료전달체계 개선 논의, 산으로 가나[뉴스&뷰] 2년여 논의 끝 개선 권고문 도출...의료계, 이해득실 따지며 뒤늦게 반발

[라포르시안] 서울과 인천. 경기 등 수도권에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절반이 밀집해 있다. 당연히 의료자원도 수도권에 밀집해 있다.  서울의 대형병원은 2000년대 이후부터 병상 확충 경쟁을 벌였다. 서울에만 1,000병상을 넘는 병원이 수두룩하다. 단일 병원으로 2,000병상이 넘는 규모를 갖춘 곳도 늘고 있다. 심지어 수도권 신도시가 생길 때마다 대형병원의 새 병원이 들어섰다

수도권에 대형병원이 신축되거나 병상 확충이 잇따르면서 의료인력이나 환자도 집중되고 있다. 지방병원은 의사, 간호사 등의 의료인력을 구하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환자의 수도권 대형병원 쏠림 현상도 갈수록 심해진다. '큰 병에 걸리면 서울의 대형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말이 의학적 가이드라인처럼 굳어졌다. 

얼마전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발간한 '2016년 지역별의료이용통계연보'에 따르면 타지역에서 유입된 진료비 규모가 가장 큰 곳은 삼성서울병원과 함께 국내에서 성형외과의원이 가장 많은 강남구였다. 2016년 한 해 동안 타지역에서 이곳으로 유입된 진료비는 1조5,649억원에 달했다.

다음으로 서울아산병원이 있는 서울 송파구가 1조3,986억원, 서울대병원이 있는 서울 종로구가 1조1,792억원, 세브란스병원이 있는 서울 서대문구가 9,901억원, 서울성모병원이 있는 서울 서초구가 8,509억원 순이었다. 수도권, 그 중에서도 '빅5' 병원으로 환자 쏠림이 심하다는 걸 의미한다.

이런 상태에서 의료전달체계가 작동할 리 없다. 의료자원을 효율적으로 운영함으로써 환자들이 필요할 때에 적절한 의료기관에서, 적합한 의료인에게, 적정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의료전달체계가 끼어들 틈이 없었다. 

동네의원과 대학병원이 경증질환 환자 유치 경쟁을 벌이고, 환자들이 큰 병을 치료하러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원정진료를 다니느라 연간 수조원을 지출한다. 대형병원들은 끊임없이 병상을 확충하면서 몸집을 부풀리는 방식의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그러다 2015년 메르스 유행을 겪었다. 메르스 바이러스는 왜곡된 의료전달체계가 감염병 유행에 취약하다는 걸 들춰냈다. 

한 명의 메르스 환자가 여러 병원을 전전하면서 감염을 확산시켰다. 환자들로 붐비는 대형병원 응급실이 메르스 감염의 진원지가 됐다. 서울의 대형병원을 방문한 환자와 보호자가 다른 지역에서 메르스 2차 감염을 일으켰다. 의료전달체계가 부재한 한국의 의료환경은 메르스 바이러스가 퍼지기에 최적의 환경이었다.  

메르스 사태로 호되게 당한 후 뒤늦게 의료전달체계 확립 논의의 물꼬가 터졌다.

보건복지부는 메르스 사태를 겪은 후 전문가, 의료단체, 시민사회단체 등의 의견을 모아 의료관련감염대책 추진 권고문을 마련해 2015년 12월 말에 발표했다.

권고문에는 병문안 문화 개선, 응급실 감염관리 강화, 포괄관호서비스 확대. 감염관리 인프라 확대 등 장단기 과제와 함께 별도 협의체에서 의료전달체계를 개편하는 방안을 담았다.

복지부는 2016년 1월 복지부와 의료공급자와 수요자,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의료전달체계 개선협의체를 구성해 본격적인 논의에 착수했다.

개선협의체는 2016년 7월까지 개선안을 내기로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그러다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면서 일정기간 논의가 중단됐다. 뒤늦게 작년 3월부터 협의체를 재가동하고 의료전달체계 개편 논의를 다시 시작했다.

이를 통해 작년 말 '의료전달체계 개선 권고문(안)'이 나왔다.

개선협의체에서 마련한 권고문은 ▲기능 중심 의료기관 역할 정립 ▲의료기관 기능 강화 ▲환자 중심 의료를 위한 기관 간 협력-정보제공 강화 ▲의료기관 간 기능 정립을 위한 의료자원 관리체계 합리화 ▲의료전달체계 개선을 위한 상시적 추진체계 마련 등 5가지 정책 권고를 담고, 이를 위해 세부과제를 제시했다.

개선협의체가 발족한 후 거의 2년여 만에 마련한 개선 권고문이다.

권고문 내용 중 가장 중요한 게 바로 '기능 중심 의료기관 역할 정립'이다.

'1차의료기관은 지역사회 내에서 간단하고 흔한 질병에 대한 외래진료, 만성질환 등 포괄적 건강관리, 간단한 외과적 수술 등을 담당하고, 2차의료기관은 일반적 입원, 수술진료, 분야별 전문진료 및 취약지역 필수의료 등의 기능을 수행. 그리고 대학병원 등 3차의료기관은 희귀난치질환 및 고도 중증질환의 진료와 함께 의료인의 교육, 연구·개발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해야 한다'는 게 기능 중심의 역할 정립 방안이다.

의료기관의 기능에 따른 적정역할을 수행하면서 운영이 가능하도록 적정수가 체계를 마련한다는 방안도 권고문에 담았다.

이 권고문을 놓고 의료계가 반발하고 있다. 입원실과 수술실을 운영하는 외과계 개원의 단체의 반발이 거세다. 

"의료현장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일차의료기관의 수술실과 입원실을 폐쇄하고 규제하는 불합리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외과의사회 등의 단체는 "일차 의료기관의 수술행위를 제한할 경우 외과계 의사들은 수술이 가능한 2차, 3차 의료기관에 취업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외과계 의사들의 진료영역의 위축을 불러 외과계를 선택하는 전공의가 줄어들게 된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심지어 의료전달체계 개편이 '문재인 케어'를 위한 사전작업이라는 음모론마저 제기되고 있다.

의원과 병원 간 이해득실을 놓고 갈등도 빚고 있다. 외과계 의사회는 "병원의 외래 기능을 단계적으로 축소하면 입원실을 축소할 수 있다"고 주장했고, 병원협회는 국민의 의료선택권과 접근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논리로 이를 거부했다.

여러 가지로 실망스러운 주장들이다.

동네의원에서 입원실과 수술실도 지금처럼 그대로 운영하고, 병원급 의료기관은 외래진료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의료전달체계를 확립하겠다는 모순된 주장을 펴고 있다. 의료전달체계 확립을 위해서 중요한 지역사회의 일차의료 서비스 제공체계 강화는 관심거리에도 끼지 못하고 있다.

의료전달체계 개편 필요성이 제기된 건 수십년 전부터였지만 본격적으로 논의를 시작한 건 메르스 사태를 겪고 나서부터였다. 개선협의체 논의가 지지부진했던 탓에 당초 2016년에 나왔어야 할 개선 권고문 확정이 늦어진 거다. '문재인 케어'를 위한 사전작업이란 주장은 합리적인 의심이 될 수 없다.

대한의사협회는 의료계의 내부의견을 수렴해 의료전달체계 개선 권고문에 반영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대로 가면 권고문 합의에 실패한 채 복지부가 주도적으로 권고문을 확정·발표하거나, 이해단체의 의견을 중구난방으로 반영해 실효성 없는 누더기 권고문이 마련되거나 둘 중 하나가 것으로 보인다.

이런 식이면 다시 메르스 환자가 유입될 경우 2015년의 상황이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 의료전달체계 부재로 환자들은 아플 때마다 이 병원 저 병원을 의료난민처럼 헤매거나 응급실로 달려가는 상황이 별로 나아질 것 같지 않다.

김상기 기자  bus19@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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