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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의료시스템, 메르스 감당할 만한 수준 아니다”‘메르스 사태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토론회 열려…감염관리·의료전달체계 등 전반적 시스템 개편 필요

[라포르시안] "우리의 의료시스템이 메르스를 감당할 수준이 안됐다"이달 25일 현재까지 180명의 감염자와 29명의 사망자를 낸 메르스 사태로 인해 한국의료의 민낯을 드러냈다. 의료전달체계 붕괴와 대형병원 환자쏠림, 부실한 병원내 감염관리, 3분진료와 의료쇼핑 등의 고질적인 문제가 메르스 바이러스의 숙주가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의학회 공동 주최로 지난 25일 '메르스 사태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를 주제로 한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서는초기 단계의 역학조사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에서부터 동네의원 진료체계를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다양한 분석과 해법이 제시됐다. 

기모란 대한예방의학회 메르스위원장(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 교수)은 "감염병 발생 초기 단계에서 역학조사를 강화하려면 훈련된 정규 역학조사관을 100명 이상(인구 50만명 당 1명) 양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문 역학조사관이 2명에 불과한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제대로 된 역학조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기 위원장은 "역학조사관에게는 질병력과 환자 동선 확인을 위해 CCTV 확인, 휴대전환 위치추적, 신용카드 이용 내역 조회 등 역학조사에 필요한 다양한 개인정보 활용 권한을 주어야 한다"며 "초기 단계 역학조사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이런 법적인 보장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천병철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환자와의 접촉자 관리에 대한 세부 지침 개발을 주장했다.

천 교수는 "접촉자 관리에서 자가격리, 시설격리, 코호트격리 등에 대한 기준과 수행과정, 지침, 예상 가능한 문제점에 대한 대비가 총체적으로 부재한 상황"이라며 "유행자료 분석을 통한 접촉자 관리 지침과 격리자에 대한 지원체계와 세부지침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감염관리 시스템을 혁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이번 메르스 사태는 우리나라 감염관리의 현주소를 그대로 드러낸 사건"이라며 "의료진과 병원은 감염관리 실패에 대해 반성과 혁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감염관리 시스템 개편 방향으로 ▲규격화된 음압격리 병실 보급을 위한 국가적인 지원 ▲호흡기 관련 감염병의 1인 병실 입원에 대안 보험수가 인정 ▲보호자 없는 병동 확대 ▲대형병원 쏠림 현상 개선 ▲응급실 내 감염병과 비감염병 별도 진료구역 설정 ▲1, 2인 병실 확대 등을 제시했다.

이 교수는 "중소병원의 감염관리 역량을 높여야 한다. 감염관리 전담 인력의 인건비와 감염관리 관련 인센티브 지급, 담당자 교육 강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한림대 강남성심병원의 사례를 예로 들며 "7~8년가량 집중적인 노력을 하면 감염 관련 지표들이 개선되기 시작했다"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속성"이라고 강조했다.

김윤 서울대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는 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일차의료 강화의 당위성이 재확인됐다고 봤다. 

김윤 교수는 "이번에 메르스에 감염된 환자의 사례만 봐도 환자 한 명이 여러 병원을 거쳐 오는 사례가 많았다"면서 "중증과 경증, 대형병원과 동네의원 간 진료비 가감 등을 통해 일차의료를 살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 교수는 또 "이번 메르스 환자 유형을 보면 환자의 가족 등 간병자 비율이 전체 감염자의 40%를 차지하고 있다"며 "포괄간호서비스를 상급종합병원까지 확대해 가족 간병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적한 것처럼 병문안 문화 개선 등의 필요성도 제기했다.

김 교수는 "일가친척 5명이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고 이 가운데 1명이 사망하는 문병 문화의 비극이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 빚어졌다. 문병문화 선진화 등 병원이용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면서 "또한 중환자실과 응급실은 전체 병상의 50%를 격리실로 전환하고, 감염자의 1~2인실 병실 이용에 대해 건강보험을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근태 개원내과의사회 총무이사는 일반진료에 치중하고 있는 보건소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박 이사는 "복지부는 지난 16일 전국 보건소장 회의에서 기존에 시행하던 일반진료 등의 업무를 인근 민간의료기관에 인계하고 메르스 대응 업무에 중점을 두라고 했는데 4곳만 그 지침을 따랐다"면서 "국가적인 위기 상황에도 정부의 관리 감독 범위를 벗어났다"고 말했다.

박 이사는 "보건소를 복지부 산하기관으로 편입시켜 진료기능을 없애고 본연의 업무인 전염병 및 질병 예방 업무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태형 순천향대 서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우리나라 병원의 감염병 대응체계는 결핵을 차단하는데 효과를 발휘했지만 메르스에는 무력했다"면서 "이는 결국 개별병원의 감염관리로는 차단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으로 보건소와 지역 보건당국은 바이러스의 병원 유입 차단을 위해 선별진료 기능에 집중하고, 지자체와 공공병원은 음압병실과 상당 수준의 전문 의료진을 확보해 환자 치료를 담당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 교수는 "민간 대학병원과 상급종합병원은 중증도가 있는 중환자 일부를 선별진료 할 수 있도록 시설과 장비 지원 업무를 맡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찬병 전 천안의료원장은 공중보건 대응체계를 제대로 갖추려면 1년 계약직이 대부분인 공공병원 의사인력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전 의료원장은 "33개 지역거점 공공병원 가운데 감염내과 의사가 있는 곳은 2곳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며 "전문 의사가 부족해 내과계 의사 외에도 모든 의사가 교대로 격리병동 환자를 진료하는 곳도 있고, 심지어 진료 전담의사를 정하지 못해 혼란을 겪은 병원도 있다. 정규직화 등 의사인력의 안정적 운용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응급실 운영과 환자 이송체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강현 연세대원주의대 응급의학과 교수는 "삼성서울병원은 최근 100억 원을 투자해 응급실 환경을 개선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상황이 발생했다"면서 "우리가 앞으로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응급실 과밀화와 체류 시간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위해 응급의료 전달체계 구축과 응급환자 우선 입원체계로의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 또한 응급실 감염방지 시설 보완과 감염 정보공유 체계 구축, 응급실 내 음압실 설치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감염병 재난과 같은 상황에서 정부의 위기관리 소통 기능이 더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최재욱 의협 의료정책연구소장은 "메르스 사태 초기에 정부는 국민을 안심시키기보다 오히려 유언비어 유포자를 엄중 처벌하겠다고 엄포를 놨다"면서 "이 때문에 감염자와 격리자에 대한 낙인효과가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최 소장은 "위기 상황에서는 적절한 사과 전략도 필요하다. 문제점을 인정하고 국민과 정보를 공유하면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위기관리 소통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의학회는 공중보건 위기대응체계의 진단과 해법을 모색하는 토론회를 1~2차례 더 개최한 후 그 결과를 모아 '메르스 백서'를 내기로 했다.

이윤성 의학회장은 "지금은 누구의 잘잘못을 따질 때가 아니라 의학적으로 메르스 사태의 과정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일이 중요하다"면서 "이번 토론회를 시작으로 같은 주제, 또는 다른 주제의 토론회를 열어 사실을 확인하고 논란이 있는 부분도 그대로 담아 백서 또는 제안서를 만들 예정"이라고 말했다.

박진규 기자  hope11@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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