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포르시안] 을지재단 산하 을지대병원과 을지대학교 을지병원의 파업이 오늘(21일)로 44일째에 접어들었다.

병원 노사 양측은 파업 이후 어렵사리 자율교섭을 이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임금인상 등의 핵심 쟁점안을 놓고 이견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파업사태가 장기화 하는 가운데 최근 을지대병원과 을지병원에서 직원들을 상대로 각종 부당노동행위와 갑질을 했다는 주장이 잇따르고 있다.

양 병원 노조가 조합원을 대상으로 인권유린과 갑질문화 실태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직원 인권유린, 모성보호 위반, 근로기준법 위반 등을 증언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을지재단 소속 을지대병원과 을지대학교 을지병원에서도 각종 갑질과 부당노동행위가 벌어지고 있다는 증언도 나왔다.

지난 20일 보건의료노조와 서형수 민주당 의원, 윤소하 정의당 의원 공동 주최로 열린 병원내 갑질문화 근절을 위한 토론회에서는 을지병원 소속 간호사가 직접 참석해 관련 증언을 하기도 했다. <관련 기사: 인권침해와 갑질, 성심병원·을지대 병원만의 문제가 아니다>

을지병원 간호사는 "인력부족으로 간호사가 근무 중 식사시간은 물론 화장실조차 갈 수 없을 만큼 기본적인 권리를 침해받고 있으며, 몸이 아파도 병가를 쓰기 힘든 정도"라고 열악한 노동환경 문제를 전했다.

을지병원 측은 노조가 근거없는 주장을 한다는 입장이다.

물품구입 등에서 병원이 부담해야 할 비용을 직원 개인에게 부담시킨 일부 행위가 자체 실태조사를 통해 확인됐을 뿐 나머지는 모두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을지병원은 지난 16일 해명자료를 통해 “노조가 국회의원 정치기부금 강제납부 등의 사실과 다른 내용을 유포한 것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시하며 향후 법적 대응에 나설 것"이라며 "병원과 아무런 상관없는 사항까지 을지병원의 갑질문화인 양 둔갑시키는 등 무책임한 폭로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노명우 교수 강사로 초청... "직원들과 지역 주민들의 공동체 의식 회복" 

이런 가운데 을지병원이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여는 인문학 특강 행사가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을지병원은 지난 21일 보도자료를 통해 오는 12월 5일 아주대학교 노명우 교수(사회학과)를 초청해 인문학 특강을 연다고 밝혔다.

을지병원에 따르면 이번 특강은 ‘세상물정의 사회학’이라는 주제로 진행될 예정이다. 특강 주제인 '세상물정의 사회학'은 노명우 교수의 저서 제목이기도 하다.

을지병원은 "이번 강연을 시작으로 직원들과 지역 주민들의 공동체 의식 회복과 자치역량 강화를 위해 앞으로 다양한 주제를 갖고 강의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하지만 성심병원과 함께 병원내 갑질 문화로 논란이 되고 있으며, 노사대립으로 장기파업 사태를 겪고 있는 을지병원에서 직원과 지역 주민의 공동체 의식 회복을 위한 특강을 연다는 건 어폐가 있어 보인다.

게다가 평소 저서와 신문 기고글을 통해 노동자에게 '노동에 대한 강박'을 강요하는 자본주의식 노동윤리의 문제점을 경고해 왔던 노명우 교수를 강사로 초청한 점은 더욱 이해하기 힘들다.

노 교수는 '세상물정의 사회학'이란 책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임금노동자가 생계를 볼모로 한 노동의 운명에 사로잡혀 있음을 통찰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임금노동자들의 연대를 제안했다. 또한 노동시간 축소를 통해 양질의 삶을 도모하자는 제안도 했다.

경향신문에 연재하는 칼럼에선 노동자의 과로사 문제도 다뤘다. <관련 기사 바로 가기 >

"...아프면 결근해야 한다. 이론적으로는 결근이 상식이다. 아프다고 마음 편하게 직장에 결근을 통보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피곤해서 오늘만은 야근 못하겠다고 누가 쉽게 말할 수 있겠는가? 아프거나 피곤해도 대부분의 사람이 출근하고 추가 노동을 한다. 이 역설을 학문에서는 ‘프레젠티즘(Presenteeism)’이라 설명한다. 우리 일상의 언어로 번역하면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억지 출근과 인내하는 과잉노동이라 해도 무방하다." <경향신문 연재 [노명우의 인물조각보] 영어사전 등재 머지않은 ‘kwarosa’ - 중에서>

그런데 을지대병원과 을지병원은 노명우 교수가 평소 글을 통해서 지적해온 '노동에 대한 강박' 문제가 상당히 심한 곳이다.

인력부족으로 한 명의 간호사가 너무 많은 환자를 돌봐야 하는 데 따른 극심한 업무부담, 식사나 휴게시간은 물론 화장실 갈 시간조차 없다는 간호사들의 증언이 나오고 있다. 동료 간호사에게 업무부담을 줄까봐 심하게 아파도 병가조차 내지 못하고 계속 근무를 할 수밖에 없었다는 증언도 나왔다.

을지대병원과 을지병원 노동자들은 열악한 근무환경을 참다 참다가 지난 2015년 11월 노동조합을 재건했다. 이후 노사교섭에서 다른 사립대병원과 비교해 터무니없이 낮은 임금과 열악한 처우를 개선해 줄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올해 임단협 교섭에선 타 사립대병원과의 임금격차 해소를 적극 요구했지만 사측과 의견차를 좁히지 못했다. 결국 지난달 10일 파업에 돌입해 40일 넘는 장기파업 사태로 이어지고 있다.  

지역 시민사회는 양 병원 노조의 주장에 공감을 표시하며 을지대병원과 을지병원이 '환자안전과 직원존중'을 실천하는 병원으로 거듭나기를 요구하고 있다.

실제로 최는 노원지역 시민사회가 참여한 '성실교섭촉구를 위한 을지병원 규탄 노원지역대책위'는 을지병원 측에 "노동자들의 처우개선 뿐만 아니라 다시금 노원지역 주민들의 건강을 책임질 수 있는 믿을 수 있는 병원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그렇지 않는다면 주민들은 영영 을지병원을 뒤로 할 것"이라는 항의서한을 전달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에 대한 강박'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임금노동자의 연대'를 제안한 사회학자를 초청해 직원들과 지역 주민들의 공동체 의식 회복을 위한 인문학 특강을 연다는 건 모순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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